뭔가를 하려고 할 때, 이런 저런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더 많은 준비를 하게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첫 시작을 더디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아버지는 참 철저하신 분이었다.
너무 철저해서 진저리가 날 때도 있었으니까.
난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가끔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내 주위의 동급생들이 영수증을 요구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뭐라할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모든 방면에서 그리 철저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그렇지는 못하리라.
아버지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세대는 아니셨다.
하지만 첨단기술과 첨단제품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시고 늘 배우려고 애쓰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또래보다는 이런 기기들의 사용에 조금은 수월하신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은,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 무언가를 물어보시고, 다시 똑같은 걸 물어 보시는 일이 잦아졌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해결해 드리고자 하지만, 멀리 떨어져있을 때에는 전화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걸 자주 느낀다.
사실 아버지께서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시고 열심히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시는 건 항상 쓰는 몇가지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이상의 범위는 거의 모르시는 것 같았다.
때때로, 무슨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얼 배워야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대부분은 강의를 듣고 배우는 것이 다였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비슷한데, 제품 하나를 사시면 몇백페이지에 이르는 매뉴얼을 다 인쇄하고 제본하신다. 매뉴얼을 다 본 이후에나 사용하실 것처럼...
하지만 당장 전화를 걸고 받으며,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빠르게 배우고, 몇번 시도하고 실수하고 한 후에 그냥 쓰신다. 몇가지 자주 쓰는 기능들을 물어물어 배우시고 쓰시며, 계속 사용하니 잊지 않고 잘 사용하신다.
아마도 그 출력했던 매뉴얼의 10%는 보셨을지 궁금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또 무슨 동기가 있으셨는지,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컴퓨터의 스프레드쉬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걸 배우려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배우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하지만, 짐작컨대, 아버지께서 익숙해지고 계속 사용하실 기능들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리라 생각하며, 그건 인터넷을 쉽게 검색만 해 봐도 배울 수 있는 거라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진 선뜻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셨다.
그 날, 문득 아버진 너무나 원천을 찾으려 애쓰시는게 아닌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선뜻 발을 내딛고, 몇걸음 걸어보고, 잘되면 뛰고, 잘 안되면 기어보거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나 한다.
그런데 아버진,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인체의 뼈와 근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이며, 그건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아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아마, 그만큼 두려우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혹은 방면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런 무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성도 있지 않나 싶었다.
최근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월이 지나서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은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에 꺼려지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정이 들어서 새걸 사도 선뜻 버리기가 꺼려지고, 잘 쓰던 것이 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난걸까 싶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막막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따위를 전공과목으로 배우긴 했어도, 단지 학점을 위해 공부한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해온 터라, 지식이 쌓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던 지식마저도 휘발되어 날아간 듯 했다.
어떤 책을 봐야, 내가 원하는걸 할 수 있는지 모르니, 아무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는, 이거 아냐 휙~,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뭐라 ~카더라만 믿고 해보고는, 이것도 아냐...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누군가의 실전을 겸한 설명을 보니, 설명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 분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장 내가 써먹을 그런건 아니었고, 하나씩 배우기에 좋다는 정도...
결국 나도 몇번 듣고 잊어버릴 그런것에 집중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실력이 아닌걸까?
기본이 중요하기는 한데, 언제나 기본만 다지고 있다가는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과감하게 레벨업에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못보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 수 있다.
기본의 위치에서는 기본이 잘 안보이는 법이니까.
가끔은 기본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기본을 잡지 않으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불가능을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기본이 있어야만 하지는 않다.
문제가 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 자꾸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결론만 말하자면, 가끔은 그냥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며, 그것도 아주 많이 좋을 수 있다.
아마 시도해보면 기본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기본이든 뭐든 문제의 해법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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