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묻는 흔한 질문이지만, 명확한 대답은 없다.
어린 시절의 많은 책과 미디어를 통해 얻은 어렴풋한 짐작으로는 가슴 한 가운데에 하트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의 대답은 "가슴" 혹은 "심장"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커서 알게된 사실은, 만화 영화등을 통해서 표현된 그 '마음'은, 사실은 심장의 형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마음인것 처럼 상징화시킨 것이었다는 것.
또 다른 대답은 "머리" 혹은 "두뇌"였는데,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나 그 현상이 주로 감정적인 것이었고, 의학적인 연구 결과에 의해 두뇌는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추론 외에도 감정적인 반응에도 관여한다고 알려지면서 이런 대답이 많아진 것 같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두뇌에 대한 연구는 너무도 느리고 불명확해서 전적으로 믿기 힘든 구석이 있기는 하다.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두뇌에서도 특이한 반응이 검출된다는 정도로, 두뇌가 감정을 유발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도 성급한 판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더 명확한 증거로 제시되는 사례도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극히 소수의 사례라서...
이런 대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나 스스로가 느낀 바로는, 마음은 "호르몬"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의 변화를 급격히 겪고 있다.
신체적인 변화 뿐 아니라 감정적인 변화도 크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 원인은 "호르몬"이라고들 한다. 특히나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의 비중에 따른 감정의 변화는 가히 드라마틱하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연민이나 동정심이 특히 그렇고 두려움과 섬세함도 변화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마음의 변화는 틀림없이 호르몬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변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하기에 더 신뢰성이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여러가지이고, 시기심이나 질투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마음, 욕망이라는 강력한 마음도 있다.
아마도 대단히 사회화되고 문명화된 마음들이 어떻게 원시적인 호르몬에 의해서 유발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욕구들이 대표적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면에는 원시적인 기본 욕구가 사회적인 가치 체계와 결합해서 파생된 것일 뿐이지 근원적인 욕구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음이 존재하는 곳은 "호르몬"이라는 답변 또한 여러 답변들 중 하나일 뿐이며, 나 개인의 답변일 뿐이다.
지금은 이게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쩐지 이게 맞는 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이 마음이 "호르몬"에 좌우 된다는 점은 뭔가 매우 허탈해지는 기분이다.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2019년 1월 13일 일요일
[도서]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얼마 전에도 잠깐 언급했던 도서인데, 이제야 다 읽고 느낌을 남겨보려 한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범우사에서 출간한 <멋진 신세계,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이며,
이성규, 허정애 번역으로 1989년 초판 발행 후, 2006년에 발행된 3판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제목과는 다르게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면을 다룬 소설이며, 결말마저도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기분은 꽤 우울하다.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은 두번 정도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첫번째는 버나드가 새비지 존에게 야만인 보존지역을 벗어나 존의 어머니인 린다가 항상 그리며 말하던 런던의 문명 세계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새비지 존이 했던 말이었다.
두번째는 새비지 존이 어머니 린다의 임종을 지키는 중에 마주친 델타 쌍둥이들에게 진저리를 치게된다. 한번은 델타 쌍둥이 꼬마들에게, 또 한번은 일을 마치고 소마라는 약을 배급받기 위해 줄서있는 성인 쌍둥이들에게.
그리고 이 델타 계급의 성인 쌍둥이들(162명?)은 배급받을 소마를 고대하며 신세계를 반복하며 감탄하는 장면이었다.
두 장면에서 말하는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책의 구성이 다를 수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18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작품의 핵심은 16장이었다.
소위 세계 회장의 한명인 무스타파 몬드와 새비지 존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며, 여기에 올더스 헉슬리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이 나와 있다.
문명 사회를 이끌고 있으며 그 모든 조작과 통제를 다 알고 있는 무스타파 몬드와 문명의 바깥에서 이를 보는 새비지 존의 논쟁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이들의 논쟁에서 종교에 대한 부분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의 올더스 헉슬리조차도 모태 신앙처럼 전승되는 서양에서의 기독교에 대해서 자유롭기는 어려웠을거라는 추측과 내가 비종교인이라서 갖게 되는 저항감(?)이 더해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소위 가족제도마저 무너뜨린 파격적인 문명의 지배자(무스타파 몬드)가 종교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초반의 헨리 포스터와 레니나 크로운이 아주 전형적인 문명의 인물로 나타나고, 이어서 버나드 막스와 헬름홀츠 왓슨은 갈등의 인물로써 나온다.
하지만 곧 이어 등장하는 새비지 존은 더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부각되면서 중심 인물이 되고 문명을 대표하는 세계 회장과 균형을 맞추고 있는 정도로 부각이 된다.
하지만, 나만의 느낌(?)이라면, 아니 어쩌면 작가의 의도일지 모르지만, 새비지 존은 단지 문명의 반대를 위한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작품이라면, 획일화되고 몰개성화된 문명에 맞서는 새비지 존은 본능적이면서 자유롭고 인간적인어야 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도 또한 야만인 지역에서의 전통에 잘 길들여져있는, 또 다른 문명의 노예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새비지 존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들 중에는 현재의 우리가 가지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과 유사한 면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새비지 존을 통해서 우리들의 현재 삶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포드 기원의 문명은 야만인 보존지역과 같았던 세상을 개선한 것이니, 그 개선책에 문제가 있다한들 야만인의 세상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면에서 새비지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논쟁은 자연스레 무스타파 몬드에게 기울어진다.
정작 새비지 존은 고통과 불편함, 더러움과 질병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감정, 신과 자연에 대한 본능을 선택하지만, 과연 그런 선택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행복이 인간의 최고 선인가?
개개인의 최고 선은 개개인이 각자 선택해야 하는가?
자유를 뺏고 행복을 주는 문명, 고통까지도 짊어져야 하는 야만의 완전한 자유,
과연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범우사에서 출간한 <멋진 신세계,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이며,
이성규, 허정애 번역으로 1989년 초판 발행 후, 2006년에 발행된 3판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제목과는 다르게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면을 다룬 소설이며, 결말마저도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기분은 꽤 우울하다.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은 두번 정도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첫번째는 버나드가 새비지 존에게 야만인 보존지역을 벗어나 존의 어머니인 린다가 항상 그리며 말하던 런던의 문명 세계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새비지 존이 했던 말이었다.
두번째는 새비지 존이 어머니 린다의 임종을 지키는 중에 마주친 델타 쌍둥이들에게 진저리를 치게된다. 한번은 델타 쌍둥이 꼬마들에게, 또 한번은 일을 마치고 소마라는 약을 배급받기 위해 줄서있는 성인 쌍둥이들에게.
그리고 이 델타 계급의 성인 쌍둥이들(162명?)은 배급받을 소마를 고대하며 신세계를 반복하며 감탄하는 장면이었다.
두 장면에서 말하는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책의 구성이 다를 수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18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작품의 핵심은 16장이었다.
소위 세계 회장의 한명인 무스타파 몬드와 새비지 존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며, 여기에 올더스 헉슬리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이 나와 있다.
문명 사회를 이끌고 있으며 그 모든 조작과 통제를 다 알고 있는 무스타파 몬드와 문명의 바깥에서 이를 보는 새비지 존의 논쟁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이들의 논쟁에서 종교에 대한 부분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의 올더스 헉슬리조차도 모태 신앙처럼 전승되는 서양에서의 기독교에 대해서 자유롭기는 어려웠을거라는 추측과 내가 비종교인이라서 갖게 되는 저항감(?)이 더해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소위 가족제도마저 무너뜨린 파격적인 문명의 지배자(무스타파 몬드)가 종교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초반의 헨리 포스터와 레니나 크로운이 아주 전형적인 문명의 인물로 나타나고, 이어서 버나드 막스와 헬름홀츠 왓슨은 갈등의 인물로써 나온다.
하지만 곧 이어 등장하는 새비지 존은 더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부각되면서 중심 인물이 되고 문명을 대표하는 세계 회장과 균형을 맞추고 있는 정도로 부각이 된다.
하지만, 나만의 느낌(?)이라면, 아니 어쩌면 작가의 의도일지 모르지만, 새비지 존은 단지 문명의 반대를 위한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작품이라면, 획일화되고 몰개성화된 문명에 맞서는 새비지 존은 본능적이면서 자유롭고 인간적인어야 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도 또한 야만인 지역에서의 전통에 잘 길들여져있는, 또 다른 문명의 노예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새비지 존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들 중에는 현재의 우리가 가지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과 유사한 면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새비지 존을 통해서 우리들의 현재 삶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포드 기원의 문명은 야만인 보존지역과 같았던 세상을 개선한 것이니, 그 개선책에 문제가 있다한들 야만인의 세상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면에서 새비지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논쟁은 자연스레 무스타파 몬드에게 기울어진다.
정작 새비지 존은 고통과 불편함, 더러움과 질병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감정, 신과 자연에 대한 본능을 선택하지만, 과연 그런 선택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행복이 인간의 최고 선인가?
개개인의 최고 선은 개개인이 각자 선택해야 하는가?
자유를 뺏고 행복을 주는 문명, 고통까지도 짊어져야 하는 야만의 완전한 자유,
과연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2019년 1월 7일 월요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딜레마
북한의 핵무기와 ICBM 개발로 극한의 상황까지 갔던 미국과 북한의 대립,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기, 일본과 중국의 긴장.
지나고 나서의 얘기이긴 하지만, 만약에라도...라는 생각을 하면 참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도 설마 "생각"이란걸 한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도 싶지만, 그러면 1차 2차 세계대전은 왜 발발했으며,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 이르는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들을 보면 꼭 불가능하지만도 않은 가설이리라.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한동안은 대화의 분위기였는데, 현재는 대화와 타협이 벽에 부딪혀 막혀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 세기의 대화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를 통해, 또 실무진들의 회의를 통해 어떤 방식의 진행과 검토, 보상과 대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관심도 없었지만(알아서들 하겠지...)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해 주는 언론도 없었던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벽에 부딪힌 듯이 꽉 막힌 게, 핵 개발의 포기와 그 검증 및 그에 상응하는 댓가에서 의견 차이인지는 궁금했다.
어쩌면 조금은 더 본질적인, 노골적인 부분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먼저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만약 이 모든 현상이 잘 진행이 된다면, 과연 미국이 얻게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잃게 되는 건 없을까? 그 이익과 손실을 계산해 보면 무엇이 더 이익일 것인가?
이익이라면, 미국과 미국인의 안전이 그 만큼 잘 보장된다는 것,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투자권의 선순위 확보, 동아시아에서의 반미 세력의 감소로 인해 중국에 대한 견제가 조금은 더 용이해진다는 점.
손실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인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감소하게 되어 발생할 일련의 어려움들 - 한미연합군의 감축과 그에 따른 대한민국의 분담금 감소, THAAD를 비롯한 무기 및 감시 시스템의 당위성의 감소로 인한 축소 및 철폐,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무기 수출의 감소.
사실, 미국내 총기 소지에 대한 문제는,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미국의 후진성이지만, 역대 정치인들이 전혀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기인한, 그래서 개별 국민들의 정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지만,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정경유착의 나쁜 연결고리 때문이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미국의 군수 산업 무기 산업의 압력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어쩌면 미국 내에서는, 우리가 모르게 정치인들에 대한 군수 산업자들의 로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도 상원에 포진한 공화당 의원들과 트럼프의 측근들에게까지도...
아주 단순한 "돈"의 논리이지만, 그것만큼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먹히는 욕구도 드물지 않은가.
과연 무엇이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인는 더 강한 동기가 될 것인가?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표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공산당(과 그 간부들)과 김정은 사이의 긴장은 아직도 진행 중이 아닐까 싶다.
집권 초기에 많은 세력의 숙청을 통해서 자신에게 호의적인 세력의 비중을 높이긴 했지만, 아직도 김정은의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으리라 본다.
사실상 북한의 엘리트 층의 탈북도 그러한 숙청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편이 헙리적이지 않을까.
아직 남아 있는 김정은의 심리적 불안감은, 향후에 진행될 막중한 사안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무언가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공산당의 눈치를 살필 지도 모른다.
사실상은 적과의 동침일 수도 있는데, 긴 시간이 지나면 이런 불안감은 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의 기다림을 대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나타난 것이다.
그 동안 북한에게는 적대적이었고 견제했고 긴장했던 대한민국과 미국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만약에 미국과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고, 남한과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그 세력들의 힘을 빌어서 북한 내부적에서 김정은의 권력을 더욱 굳게하는 데 이용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 보장, 북한 인민의 안전 보장 등을 내세우겠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이 북한에서의 세력을 확실하게 보장받으려는 욕구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중국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을 보면서 기대하는 바, 두려워 하는 바가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른 계산과 대책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 경제 발전 등의 문제는 주변 관련국과 당사국의 두려움과 바램들 사이의 줄타기를 하면서 묘한 균형이 존재하는 길을 따라가는 외발 자전거와 같지 않겠는가?
지나고 나서의 얘기이긴 하지만, 만약에라도...라는 생각을 하면 참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도 설마 "생각"이란걸 한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도 싶지만, 그러면 1차 2차 세계대전은 왜 발발했으며,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 이르는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들을 보면 꼭 불가능하지만도 않은 가설이리라.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한동안은 대화의 분위기였는데, 현재는 대화와 타협이 벽에 부딪혀 막혀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 세기의 대화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를 통해, 또 실무진들의 회의를 통해 어떤 방식의 진행과 검토, 보상과 대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관심도 없었지만(알아서들 하겠지...)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해 주는 언론도 없었던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벽에 부딪힌 듯이 꽉 막힌 게, 핵 개발의 포기와 그 검증 및 그에 상응하는 댓가에서 의견 차이인지는 궁금했다.
어쩌면 조금은 더 본질적인, 노골적인 부분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먼저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만약 이 모든 현상이 잘 진행이 된다면, 과연 미국이 얻게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잃게 되는 건 없을까? 그 이익과 손실을 계산해 보면 무엇이 더 이익일 것인가?
이익이라면, 미국과 미국인의 안전이 그 만큼 잘 보장된다는 것,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투자권의 선순위 확보, 동아시아에서의 반미 세력의 감소로 인해 중국에 대한 견제가 조금은 더 용이해진다는 점.
손실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인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감소하게 되어 발생할 일련의 어려움들 - 한미연합군의 감축과 그에 따른 대한민국의 분담금 감소, THAAD를 비롯한 무기 및 감시 시스템의 당위성의 감소로 인한 축소 및 철폐,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무기 수출의 감소.
사실, 미국내 총기 소지에 대한 문제는,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미국의 후진성이지만, 역대 정치인들이 전혀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기인한, 그래서 개별 국민들의 정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지만,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정경유착의 나쁜 연결고리 때문이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미국의 군수 산업 무기 산업의 압력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안된다.
어쩌면 미국 내에서는, 우리가 모르게 정치인들에 대한 군수 산업자들의 로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도 상원에 포진한 공화당 의원들과 트럼프의 측근들에게까지도...
아주 단순한 "돈"의 논리이지만, 그것만큼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먹히는 욕구도 드물지 않은가.
과연 무엇이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인는 더 강한 동기가 될 것인가?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표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공산당(과 그 간부들)과 김정은 사이의 긴장은 아직도 진행 중이 아닐까 싶다.
집권 초기에 많은 세력의 숙청을 통해서 자신에게 호의적인 세력의 비중을 높이긴 했지만, 아직도 김정은의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으리라 본다.
사실상 북한의 엘리트 층의 탈북도 그러한 숙청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편이 헙리적이지 않을까.
아직 남아 있는 김정은의 심리적 불안감은, 향후에 진행될 막중한 사안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무언가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공산당의 눈치를 살필 지도 모른다.
사실상은 적과의 동침일 수도 있는데, 긴 시간이 지나면 이런 불안감은 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의 기다림을 대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나타난 것이다.
그 동안 북한에게는 적대적이었고 견제했고 긴장했던 대한민국과 미국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만약에 미국과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고, 남한과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그 세력들의 힘을 빌어서 북한 내부적에서 김정은의 권력을 더욱 굳게하는 데 이용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 보장, 북한 인민의 안전 보장 등을 내세우겠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이 북한에서의 세력을 확실하게 보장받으려는 욕구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중국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을 보면서 기대하는 바, 두려워 하는 바가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른 계산과 대책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 경제 발전 등의 문제는 주변 관련국과 당사국의 두려움과 바램들 사이의 줄타기를 하면서 묘한 균형이 존재하는 길을 따라가는 외발 자전거와 같지 않겠는가?
2019년 1월 4일 금요일
주식 시장의 선물 옵션 - 시간의 상품
주식 시장의 파생상품으로 알려진 선물과 옵션.
이 상품들은 그 위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하고 있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장 선물이나 옵션은 최소 거래 금액이 꽤 높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선물의 경우에는 ETF로, 옵션의 경우에는 ELW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매수만 할 수 있고 매도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 대체상품이다.
이 상품들을 소개하거나 투자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니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_-);;
한때 옵션 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데,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꽤 많은 손실을 보고 옵션 투자를 접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가끔은 꽤 수익을 봤던 적도 있는데, 그 때에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과연 이 수익은 무엇일까?"
내가 이 수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1) 위험을 감수한 댓가
2) 이만큼이라도 시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한 걸과)
3) 그냥 재수
1)은 아닌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마다 위험을 감수했다. 진입을 하는 순간부터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온통 위험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익보다 손실을 봤다.
2)도 어쩌면 맞을지 모르지만 위의 1)과 마찬가지로 그 공부와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지니 수익도 더 높아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적어도 그 기간동안은 그래 보였다.)
3)만 남았으니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의 시장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때 처럼 공포스러운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락하는 시장에서 마구 떨어지는 평가액을 그냥 바라보기 보다는 파생상품으로 약간의 보상을 받아보려하고 있다.
딱히 더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니 지식이나 실력이 더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한번의 경험이 더 쌓여서인지 조금은 차분하게 보이기도 한다.(그게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지만....ㅠ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저 때의 고민했던 답이 보였다.
답은 1) 위험을 감수한 댓가였다.
특히나 옵션은 그랬다.
옵션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매매가 체결되는 순간부터 위험이 뛰어든 것이고, 거래의 쌍방의 수익은 정확하게 손실과 일치한다.
즉, 한사람이 손실을 봐야 반대편이 수익을 얻는다.
두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내기를 걸었고, 이제 그걸 판결해 주는 사람은 시장이다.
시장의 판결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난다.
누군가 수익이 났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손실이 났고, 그걸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양쪽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양측의 승부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 유효하다.
사실 옵션의 실체는 "시간"을 상품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옵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간다.
아마 대부분의 옵션 매수자들은 만기가 1개월 이내인 상품을 매매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번쯤은 당일 매매를 넘기는 오버나잇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멘붕에 빠질 것이다.
단지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 -30%를 기록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대부분의 좋은 수익 모델은, 시간이 돈이 벌어주는 모델이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은 틀림없이 시간이 돈을 벌어주는 모델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항상 돈을 벌어주지는 못하지만, 길게 보면 언제가는 벌어주며, 그게 결국은 시간이 벌어주는 셈이다.
더 좋은 것은, 건물주가 되어 꼬박꼬박 월세를 받거나, 온전히 시간으로 이루어진 '옵션'을 판매하는 것이다.
단, 급격한 쏠림으로 인해 흔들리는 심리를 붙잡을 수 있다면...
이 상품들은 그 위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하고 있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장 선물이나 옵션은 최소 거래 금액이 꽤 높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선물의 경우에는 ETF로, 옵션의 경우에는 ELW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매수만 할 수 있고 매도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 대체상품이다.
이 상품들을 소개하거나 투자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니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_-);;
한때 옵션 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데,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꽤 많은 손실을 보고 옵션 투자를 접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가끔은 꽤 수익을 봤던 적도 있는데, 그 때에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과연 이 수익은 무엇일까?"
내가 이 수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1) 위험을 감수한 댓가
2) 이만큼이라도 시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한 걸과)
3) 그냥 재수
1)은 아닌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마다 위험을 감수했다. 진입을 하는 순간부터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온통 위험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익보다 손실을 봤다.
2)도 어쩌면 맞을지 모르지만 위의 1)과 마찬가지로 그 공부와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지니 수익도 더 높아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적어도 그 기간동안은 그래 보였다.)
3)만 남았으니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의 시장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때 처럼 공포스러운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락하는 시장에서 마구 떨어지는 평가액을 그냥 바라보기 보다는 파생상품으로 약간의 보상을 받아보려하고 있다.
딱히 더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니 지식이나 실력이 더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한번의 경험이 더 쌓여서인지 조금은 차분하게 보이기도 한다.(그게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지만....ㅠ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저 때의 고민했던 답이 보였다.
답은 1) 위험을 감수한 댓가였다.
특히나 옵션은 그랬다.
옵션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매매가 체결되는 순간부터 위험이 뛰어든 것이고, 거래의 쌍방의 수익은 정확하게 손실과 일치한다.
즉, 한사람이 손실을 봐야 반대편이 수익을 얻는다.
두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내기를 걸었고, 이제 그걸 판결해 주는 사람은 시장이다.
시장의 판결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난다.
누군가 수익이 났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손실이 났고, 그걸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양쪽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양측의 승부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 유효하다.
사실 옵션의 실체는 "시간"을 상품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옵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간다.
아마 대부분의 옵션 매수자들은 만기가 1개월 이내인 상품을 매매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번쯤은 당일 매매를 넘기는 오버나잇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멘붕에 빠질 것이다.
단지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 -30%를 기록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대부분의 좋은 수익 모델은, 시간이 돈이 벌어주는 모델이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은 틀림없이 시간이 돈을 벌어주는 모델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항상 돈을 벌어주지는 못하지만, 길게 보면 언제가는 벌어주며, 그게 결국은 시간이 벌어주는 셈이다.
더 좋은 것은, 건물주가 되어 꼬박꼬박 월세를 받거나, 온전히 시간으로 이루어진 '옵션'을 판매하는 것이다.
단, 급격한 쏠림으로 인해 흔들리는 심리를 붙잡을 수 있다면...
고정비용과 유동비용 - 원인과 결과의 비대칭
문득 떠 오른 생각.
장사를 하는 사람. 개인 자영업자, 특히 많은 음식료 서비스업의 예를 들면,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에 대한 대략적인 예측이 있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자본금으로 투자를 하고, 원자재를 매입하고, 가공하여, 판매하고,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영업을 할 텐데, 정신없이 하다보면 과연 이게 남는 장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적절한 시점에 경영에 필요한 판단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먼저 크게 비용을 고정비용과 유동비용으로 분류해보자.
(이게 경영, 회계 이런 학문에 있는 용어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난 그런 학문은 배운 적 없다, 고등학교 사회나 중학교 상업이 전부였다.)
고정 비용은 매출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다.
매장이나 사무실의 임대료, 보험이나 세금 따위.
유동 비용은 매출과 연관된 비용이다.
원자재 매입, 가공비용(전기, 수도, 가스 등등)
그러면 이 사이에서도 벌써 문제에 부딪힌다.
인건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가공에 필요한 설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이 부분은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 같다.
만약에 매출이 100일 때 필요한 사람과 설비가 1이라고 하면, 매출이 101~200인 경우에 필요한 사람과 설비는 2가 되어야 한다.
매출이 100에서 101로 늘어날 경우에 인건비와 설비는 유동비용이 되지만, 일단 101 이상이 되면 200이 될때 까지는 고정비용이 된다.
이제 좀 더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매장(사무실)을 늘려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무실의 임대료는 유동비용이 되는 셈이다.
이런 비용의 증가와 매출의 증가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면, 투자가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관계... 매출과 비용의 관계...처럼 딱 비례하지 않는 상관관계는 현실에서 꽤 자주 접하게 된다.
공부하는 시간과 성적과의 관계, 성적과 입학하는 대학과의 관계, 졸업하는 대학과 취직하는 직장과의 관계, 직장과 연봉의 관계, 연봉과 승진과의 관계 등등....
장사를 하는 사람. 개인 자영업자, 특히 많은 음식료 서비스업의 예를 들면,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에 대한 대략적인 예측이 있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자본금으로 투자를 하고, 원자재를 매입하고, 가공하여, 판매하고,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영업을 할 텐데, 정신없이 하다보면 과연 이게 남는 장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적절한 시점에 경영에 필요한 판단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먼저 크게 비용을 고정비용과 유동비용으로 분류해보자.
(이게 경영, 회계 이런 학문에 있는 용어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난 그런 학문은 배운 적 없다, 고등학교 사회나 중학교 상업이 전부였다.)
고정 비용은 매출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다.
매장이나 사무실의 임대료, 보험이나 세금 따위.
유동 비용은 매출과 연관된 비용이다.
원자재 매입, 가공비용(전기, 수도, 가스 등등)
그러면 이 사이에서도 벌써 문제에 부딪힌다.
인건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가공에 필요한 설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이 부분은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 같다.
만약에 매출이 100일 때 필요한 사람과 설비가 1이라고 하면, 매출이 101~200인 경우에 필요한 사람과 설비는 2가 되어야 한다.
매출이 100에서 101로 늘어날 경우에 인건비와 설비는 유동비용이 되지만, 일단 101 이상이 되면 200이 될때 까지는 고정비용이 된다.
이제 좀 더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매장(사무실)을 늘려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무실의 임대료는 유동비용이 되는 셈이다.
이런 비용의 증가와 매출의 증가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면, 투자가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관계... 매출과 비용의 관계...처럼 딱 비례하지 않는 상관관계는 현실에서 꽤 자주 접하게 된다.
공부하는 시간과 성적과의 관계, 성적과 입학하는 대학과의 관계, 졸업하는 대학과 취직하는 직장과의 관계, 직장과 연봉의 관계, 연봉과 승진과의 관계 등등....
바닥을 다지려는 습관의 고질병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이런 저런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더 많은 준비를 하게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첫 시작을 더디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아버지는 참 철저하신 분이었다.
너무 철저해서 진저리가 날 때도 있었으니까.
난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가끔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내 주위의 동급생들이 영수증을 요구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뭐라할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모든 방면에서 그리 철저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그렇지는 못하리라.
아버지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세대는 아니셨다.
하지만 첨단기술과 첨단제품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시고 늘 배우려고 애쓰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또래보다는 이런 기기들의 사용에 조금은 수월하신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은,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 무언가를 물어보시고, 다시 똑같은 걸 물어 보시는 일이 잦아졌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해결해 드리고자 하지만, 멀리 떨어져있을 때에는 전화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걸 자주 느낀다.
사실 아버지께서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시고 열심히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시는 건 항상 쓰는 몇가지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이상의 범위는 거의 모르시는 것 같았다.
때때로, 무슨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얼 배워야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대부분은 강의를 듣고 배우는 것이 다였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비슷한데, 제품 하나를 사시면 몇백페이지에 이르는 매뉴얼을 다 인쇄하고 제본하신다. 매뉴얼을 다 본 이후에나 사용하실 것처럼...
하지만 당장 전화를 걸고 받으며,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빠르게 배우고, 몇번 시도하고 실수하고 한 후에 그냥 쓰신다. 몇가지 자주 쓰는 기능들을 물어물어 배우시고 쓰시며, 계속 사용하니 잊지 않고 잘 사용하신다.
아마도 그 출력했던 매뉴얼의 10%는 보셨을지 궁금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또 무슨 동기가 있으셨는지,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컴퓨터의 스프레드쉬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걸 배우려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배우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하지만, 짐작컨대, 아버지께서 익숙해지고 계속 사용하실 기능들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리라 생각하며, 그건 인터넷을 쉽게 검색만 해 봐도 배울 수 있는 거라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진 선뜻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셨다.
그 날, 문득 아버진 너무나 원천을 찾으려 애쓰시는게 아닌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선뜻 발을 내딛고, 몇걸음 걸어보고, 잘되면 뛰고, 잘 안되면 기어보거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나 한다.
그런데 아버진,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인체의 뼈와 근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이며, 그건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아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아마, 그만큼 두려우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혹은 방면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런 무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성도 있지 않나 싶었다.
최근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월이 지나서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은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에 꺼려지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정이 들어서 새걸 사도 선뜻 버리기가 꺼려지고, 잘 쓰던 것이 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난걸까 싶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막막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따위를 전공과목으로 배우긴 했어도, 단지 학점을 위해 공부한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해온 터라, 지식이 쌓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던 지식마저도 휘발되어 날아간 듯 했다.
어떤 책을 봐야, 내가 원하는걸 할 수 있는지 모르니, 아무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는, 이거 아냐 휙~,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뭐라 ~카더라만 믿고 해보고는, 이것도 아냐...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누군가의 실전을 겸한 설명을 보니, 설명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 분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장 내가 써먹을 그런건 아니었고, 하나씩 배우기에 좋다는 정도...
결국 나도 몇번 듣고 잊어버릴 그런것에 집중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실력이 아닌걸까?
기본이 중요하기는 한데, 언제나 기본만 다지고 있다가는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과감하게 레벨업에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못보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 수 있다.
기본의 위치에서는 기본이 잘 안보이는 법이니까.
가끔은 기본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기본을 잡지 않으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불가능을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기본이 있어야만 하지는 않다.
문제가 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 자꾸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결론만 말하자면, 가끔은 그냥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며, 그것도 아주 많이 좋을 수 있다.
아마 시도해보면 기본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기본이든 뭐든 문제의 해법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 보자.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첫 시작을 더디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아버지는 참 철저하신 분이었다.
너무 철저해서 진저리가 날 때도 있었으니까.
난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가끔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내 주위의 동급생들이 영수증을 요구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뭐라할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모든 방면에서 그리 철저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그렇지는 못하리라.
아버지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세대는 아니셨다.
하지만 첨단기술과 첨단제품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시고 늘 배우려고 애쓰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또래보다는 이런 기기들의 사용에 조금은 수월하신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은,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 무언가를 물어보시고, 다시 똑같은 걸 물어 보시는 일이 잦아졌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해결해 드리고자 하지만, 멀리 떨어져있을 때에는 전화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걸 자주 느낀다.
사실 아버지께서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시고 열심히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시는 건 항상 쓰는 몇가지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이상의 범위는 거의 모르시는 것 같았다.
때때로, 무슨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얼 배워야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대부분은 강의를 듣고 배우는 것이 다였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비슷한데, 제품 하나를 사시면 몇백페이지에 이르는 매뉴얼을 다 인쇄하고 제본하신다. 매뉴얼을 다 본 이후에나 사용하실 것처럼...
하지만 당장 전화를 걸고 받으며,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빠르게 배우고, 몇번 시도하고 실수하고 한 후에 그냥 쓰신다. 몇가지 자주 쓰는 기능들을 물어물어 배우시고 쓰시며, 계속 사용하니 잊지 않고 잘 사용하신다.
아마도 그 출력했던 매뉴얼의 10%는 보셨을지 궁금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또 무슨 동기가 있으셨는지,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컴퓨터의 스프레드쉬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걸 배우려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배우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하지만, 짐작컨대, 아버지께서 익숙해지고 계속 사용하실 기능들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리라 생각하며, 그건 인터넷을 쉽게 검색만 해 봐도 배울 수 있는 거라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진 선뜻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셨다.
그 날, 문득 아버진 너무나 원천을 찾으려 애쓰시는게 아닌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선뜻 발을 내딛고, 몇걸음 걸어보고, 잘되면 뛰고, 잘 안되면 기어보거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나 한다.
그런데 아버진,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인체의 뼈와 근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이며, 그건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아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아마, 그만큼 두려우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혹은 방면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런 무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성도 있지 않나 싶었다.
최근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월이 지나서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은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에 꺼려지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정이 들어서 새걸 사도 선뜻 버리기가 꺼려지고, 잘 쓰던 것이 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난걸까 싶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막막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따위를 전공과목으로 배우긴 했어도, 단지 학점을 위해 공부한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해온 터라, 지식이 쌓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던 지식마저도 휘발되어 날아간 듯 했다.
어떤 책을 봐야, 내가 원하는걸 할 수 있는지 모르니, 아무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는, 이거 아냐 휙~,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뭐라 ~카더라만 믿고 해보고는, 이것도 아냐...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누군가의 실전을 겸한 설명을 보니, 설명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 분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장 내가 써먹을 그런건 아니었고, 하나씩 배우기에 좋다는 정도...
결국 나도 몇번 듣고 잊어버릴 그런것에 집중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실력이 아닌걸까?
기본이 중요하기는 한데, 언제나 기본만 다지고 있다가는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과감하게 레벨업에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못보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 수 있다.
기본의 위치에서는 기본이 잘 안보이는 법이니까.
가끔은 기본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기본을 잡지 않으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불가능을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기본이 있어야만 하지는 않다.
문제가 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 자꾸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결론만 말하자면, 가끔은 그냥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며, 그것도 아주 많이 좋을 수 있다.
아마 시도해보면 기본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기본이든 뭐든 문제의 해법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 보자.
2019년 1월 2일 수요일
역지사지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최근에 좀 유별나다 싶게 청와대와 관련된 폭로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청와대의 특별 감찰관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청와대에서 민간인을 사찰했었다고 폭로한데 이어서, 기획재정부의 사무관으로 재직했던 신재민 전(前) 사무관이 청와대가 적자 국채발행을 원했다, KT&G와 서울신문사의 사장을 교체하려고 했다는 등의 비위(?)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서 여당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등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아주 시끄럽고 당혹한 눈치이다.
야당으로써는 기세를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적극적인 모습보다는 오히려 신중해 보이는 상황.
오히려 언론과 정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들이 더 시끌시끌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들을 봤을 때는 뭔가 2%...아니 20%는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뭔가 대단한 비위를 알고 있다는 듯이 폭로를 했지만, 그 모든 비위가 결국은 불발로 끝났기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것도 아니어서 국민적인 의혹을 이끌어내기엔 좀 모자르고, 설령 확실한 증거를 내 놓는다 한들, 청와대나 정부가 반박할 논리는 충분해 보였다. "결국 청와대나 정부 내부적으로 상호 견제와 보완이 잘 작동한다는 반증아니냐...."는 식으로.
따라서, 한동안의 신재민이라는 사람이 왜 힘들게 고시공부 해서 들어간 기재부의 사무관을 박차고 나와서까지 저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진짜 의도는 뭘까?
아마도 진짜 그의 목적이나 의도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의심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까지 가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그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반대했던 사람들이 펼쳤던 자기 논리와 심리 상태.
아마도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졌고, 수많은 카더라가 범람했다. 탄핵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그 모든 의혹과 소문을 진실처럼 생각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서 가짜 뉴스와 소문들은 다 잊어버린 듯 행동했다. 그리고 사실로 밝혀진 것만으로도 탄핵감이라 주장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세력들은 헛소문으로 드러난 것들에 분개하면서 이렇게 악랄하게 몰아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초 고발자의 역할을 한 고영태의 의도가 무엇인지,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진짜인지를 밝히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은 외면하거나 부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두가지 사건을 같다고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명백한 행위의 결과가 있었는가 아닌가, 불법한 시도가 있었는가 아닌가, 국민들에게 막대한 위해를 끼쳤는가 아닌가, 법률과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있는가 아닌가 등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아직까지는...)
하지만, 두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갈라선 양측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심리 상태는 매우 흡사해 보인다는 것이다.
방어하고 변론하고 옹호하는 측, 공격하고 의심하고 피해를 주려는 측.
어쩌면 신재민 전 사무관의 진짜 의도는 이것이었을까?
- 내가 폭로한 것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 그런데 그렇게 따지만, 사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최초의 폭로들도 별것 아니지 않았던가
- 우리는 진실의 가치/무게를 평가하기보다는 그냥 미워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짧은 시간에 크다면 큰 변화가 이어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족한 지혜로는 긴 시간에 걸친 경험을 망각하기 쉽지만, 최근의 경험은 짧은 시간동안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서 상대방의 사정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P.S.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한 후에 좀 더 우울해졌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객관적인 사실과 의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특별한 이유없이 미워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보편적인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내가 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청와대의 특별 감찰관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청와대에서 민간인을 사찰했었다고 폭로한데 이어서, 기획재정부의 사무관으로 재직했던 신재민 전(前) 사무관이 청와대가 적자 국채발행을 원했다, KT&G와 서울신문사의 사장을 교체하려고 했다는 등의 비위(?)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서 여당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등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아주 시끄럽고 당혹한 눈치이다.
야당으로써는 기세를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적극적인 모습보다는 오히려 신중해 보이는 상황.
오히려 언론과 정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들이 더 시끌시끌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들을 봤을 때는 뭔가 2%...아니 20%는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뭔가 대단한 비위를 알고 있다는 듯이 폭로를 했지만, 그 모든 비위가 결국은 불발로 끝났기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것도 아니어서 국민적인 의혹을 이끌어내기엔 좀 모자르고, 설령 확실한 증거를 내 놓는다 한들, 청와대나 정부가 반박할 논리는 충분해 보였다. "결국 청와대나 정부 내부적으로 상호 견제와 보완이 잘 작동한다는 반증아니냐...."는 식으로.
따라서, 한동안의 신재민이라는 사람이 왜 힘들게 고시공부 해서 들어간 기재부의 사무관을 박차고 나와서까지 저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진짜 의도는 뭘까?
아마도 진짜 그의 목적이나 의도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의심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까지 가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그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반대했던 사람들이 펼쳤던 자기 논리와 심리 상태.
아마도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졌고, 수많은 카더라가 범람했다. 탄핵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그 모든 의혹과 소문을 진실처럼 생각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서 가짜 뉴스와 소문들은 다 잊어버린 듯 행동했다. 그리고 사실로 밝혀진 것만으로도 탄핵감이라 주장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세력들은 헛소문으로 드러난 것들에 분개하면서 이렇게 악랄하게 몰아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초 고발자의 역할을 한 고영태의 의도가 무엇인지,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진짜인지를 밝히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은 외면하거나 부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두가지 사건을 같다고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명백한 행위의 결과가 있었는가 아닌가, 불법한 시도가 있었는가 아닌가, 국민들에게 막대한 위해를 끼쳤는가 아닌가, 법률과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있는가 아닌가 등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아직까지는...)
하지만, 두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갈라선 양측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심리 상태는 매우 흡사해 보인다는 것이다.
방어하고 변론하고 옹호하는 측, 공격하고 의심하고 피해를 주려는 측.
어쩌면 신재민 전 사무관의 진짜 의도는 이것이었을까?
- 내가 폭로한 것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 그런데 그렇게 따지만, 사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최초의 폭로들도 별것 아니지 않았던가
- 우리는 진실의 가치/무게를 평가하기보다는 그냥 미워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짧은 시간에 크다면 큰 변화가 이어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족한 지혜로는 긴 시간에 걸친 경험을 망각하기 쉽지만, 최근의 경험은 짧은 시간동안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서 상대방의 사정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P.S.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한 후에 좀 더 우울해졌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객관적인 사실과 의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특별한 이유없이 미워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보편적인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내가 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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