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3일 토요일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친구들과 모임. 수많은 얘기들. 음식과 술, 산책...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와 깨끗한 공기, 온화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분히 공격적이라 느꼈다. 아니, 당시에는 그도 나도 공격하거나 공격받지 않았을지도...
지나고 보니, 내 기준에서는 공격이었다.
난 수비적이었고, 막아내기 바빴으며, 완전히 막아내지도 못했다.
아마도 변명 투성이었을 것이며, 그건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었다.
'오케이, 그럴께' 혹은 '그렇게 해보지'라는 말로...하지만 거짓말을 하긴 싫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요구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의 대사처럼 '인간에게 인간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아라'고 말해 줬어야 하는걸까?

과연 어찌해야 할까?

결국은 이렇게 멀어지고 다시 각자의 삶을 보면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며 살것인가?
아니면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다시 만나면 미소짓고 예전처럼...하지만 속마음은 예전같을 수 없는...?
그의 지적처럼 나는 결국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이며, 결코 달라지지도 발전하지도 않을 것인가?

어쩌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을 상황이지만, 내 마음 속에선 어지러이 회오리 돌풍이 풀고 있는 느낌이다.


얼핏...만 2번 본 영화가 생각이 났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그 두번 모두 후반부부터 보게되었던 것 같다.
비노쉬와 스튜어트가 어느 한가로운 시골 주택에서 함께 생활하며 대본 연습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논쟁하고...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 이 영황에 대해 잠시 살펴보니 과거와 현재에 맡은 역할의 변화와 그에 따라 운명처럼 맞이하게 되는 미묘한 상황들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에 있었나보다. 그리고 제목의 실스마리아는 지명으로, 그것이 상징하는 것 또한 영황의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영황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해도,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비노쉬 크리스틴 모레츠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상황들, 그리고 그것들이 뿜어내는 힘이 사람들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언제 드러날지 지켜보는 초조함. 그리고 비열해 보이지만, 상대방은 모르게 자신만의 복수를 하는 듯한 모습들...
(비노쉬는 모레츠에 대해 굴욕감 같은 걸 가지고 있어 보였고, 그런 상황을 만든 연출가에게도 일정 정도의 반감이 있었던 듯 하다. 후에 연출가가 검토를 부탁한 원고는 일부러 보지도 않으며, 자신의 손상된 자존심을 세워줄지도 모를 무명의 감독이 제안하는 배역에는 대단한 호의를 보인다.)

왜 이 영화가 생각이 났을까?

내 마음속에 움직이고 있는 혼란스러움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데, 이 영화가 그걸 보여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걸까?
아니면 그 영화에서도 지금 내가 느낀 것같은 그런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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