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일요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의도하지 않았던 것, 궁금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창조와 진화

앞선 포스팅에선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생각을 찌끄려 봤다.

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의문들이 따라 올라왔다.

과연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누군가, 혹은 인류가, 아니 어떤 존재가 이런 방법을 고안해 낸다면, 그 존재는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나 연극 영화와 같은 가공의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떠면 작가의 의도는 그 자신의 정체성임과 동시에 그 자신의 한계일 수 있는데,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일일지 모른다.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가는 새와 같이...


우리는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은 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발전해 왔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답은 언젠가는 나오는 것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
문제는 질문이었다.
어떤 사람의 미래는,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과연 인간이 지금껏 가지지 않았던 질문을 할 수 있느냐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창조"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로 예술의 방면에서 종종 이런 창조성의 천재들을 접하게 되지만, 과연 "완벽한 창조"라는 것을 했던 예술가가 있는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 "창조의 방법" 혹은 "창조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전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결국은 이 "창조"가 "진화"의 열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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