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면서 나에게 일어난 큰 변화는, 자신에 대한 시각이 보다 객관화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늘어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객관화의 정도야 사람마다 천양지차이겠지만...
그리고 이런 변화는 축복이며 저주와도 같았다.
자신이 객관화 될수록 자신을 평가하는 일도 잦아지며 이 평가는 냉정해진다. 또한 냉정한 시각으로 과거의 자신을 되짚는 일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인식이 보다 타당성을 가지게 된다는 느낌,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진실에 가까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기쁨이다.
자신에 대한 인식을 거듭하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욕망과 두려움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완전한 근원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고 안으로 들어가 그 기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과 두려움이 정녕 내가 스스로 원한것이었는지, 내가 겪었던 고통에 기인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후에 좀 더 근원적인 실체에 접근하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욕망과 두려움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람에 의해 심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도 내게 이런 욕망과 두려움을 심어준 사람은 부모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무저항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욕망과 두려움 혹은 욕망을 유발할 무엇과 두려움을 가지게 될 무엇을 심어준 사람으로는 가장 큰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한 영향력을 지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할 것이다.
하나의 인간이 걸어가는 인생 길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이끄는 길, 그리고 두려움으로 막혀진 길의 사이라고 생각한다.
우연처럼 인생을 좌우할 큰 사건들이 인간에게 벌어지지만 그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반응은 각자가 가진 욕망과 두려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인간이 가진 욕망과 두려움은 인생을 좌우할 열쇠인 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욕망과 두려움을 후세에 전달하는 일은, 그 후세들이 갈 인생의 폭을 크게 제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크게 열려 있음에도 욕망과 두려움으로 아주 제한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틀림없이 슬픈 일이다.
인간이 태어나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열망할 때에 순순하게 그 자신이 될 것이다.
타자의 욕망은 그 원동력이 약하기에 쉽게 좌절될 수 있으며 이루고 난 후에도 자신이 아닌 타자가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스스로가 겪은 아픔과 고통만으로도 두려워서 피하게 되는 선택은 있게 마련인데, 거기에 타자의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선택이 폭이 좁아진다면, 가보지 못한 길은 너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보니 내가 살아온 길이 나의 길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서글프다.
모쪼록 후세에게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투영시켜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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