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0일 수요일

타인에게 부탁하기 /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과정을 곱씹어 보는 일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이지만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보는 시야도 얻게 된 거 같습니다.

얼마전엔 집안에 선산과 관련되어, 지분을 누군가에게 일부 양도해 주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법률적인 의무/권리를 떠나서 한 집안 사람으로서 해 주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해타산이 횡행하고 물질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야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모든 법률적인 절차와 비용에 관한 부분은 수혜자인 양수인 측에서 책임을 지는 것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양수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로는 비용도 얼마 들지 않으며 간단하게 처리가 될 것이라고 하여 안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구체적인 행위에 들어가자 여러모로 번거로운 상황이 발생을 했습니다.

양수인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며, 양도인들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데, 양도인들이 지방에 직접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평일에 지방에 내려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양도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도 해 보지 않고는 법무사가 그랬다며 직접 내려와야 한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는 양수인이 참 야속하고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적어도
- 평일 공공기관 근무시간에만 가능하냐 주말에도 가능하냐
- 양도인들이 모두 시간을 맞춰서 동시에 가야하느냐, 따로 와도 되느냐
이 정도는 확인해 보고 연락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① 타인에게 불편을 감수하기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라면 무척 조심스러울 거 같습니다. 가능하면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될 방법들을 최대한 찾아 볼 것이며, 그것이 불가할 경우에는 최대한 상대방의 편의를 제공하려고 노략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양수인은 너무나 쉽게 타인에게 불편을 요구하는군요. 이게 너무 화가 납니다.

양수인에게 왜 직접 내려가야 하는지, 내려가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시간 제약이 어떠한지 등등을 물으니 하나도 답을 하진 못하고 법무사가 그리 말해서 전하는 것 뿐이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양수인도 답답한지 법무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저에게 직접 전화를 해 보라고 하더군요. (번거로움이나 전달과정의 오류를 생각하면 좋긴 하지만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법무사와 통화해서 모두 이야기를 듣고 결국엔 지방에 내려가는 방법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양도인에게 연락해서 설명하고 시간 약속 정하고, 다시 법무사와 시간 약속 정하고, 다시 양수인과도 시간 약속 정하고...다행히 모두가 한번에 OK를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짜증 제대로 날 일이었습니다. (이걸 왜 제가 해야 하는건가요?)


지방에 내려가서 법무사와 모두가 함께 어떻게 진행을 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지난지 않아서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예상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도 양수인 측이 부담할 비용이 적을 뿐이지 양도인 측이 부담할 비용은 매우 크다는 얘기를 듣고 적쟎이 실망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비용은 양수인이 부담하는 것을 묵시적으로 동의한 바이나, 양수인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고려했기에 이렇게 예상과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도의적인 의무로써 선산의 지분을 양도한다고는 하나,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양수할 수는 있으나, 최소한의 성의나 감사한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난감한 상황의 내내 양수인은 자신의 불찰에 대한 태도는 전혀 보이질 않더군요. 물론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나서 이걸 걱정하느라 겨를이 없을 수도 있고, 워낙에 법률과 관련된 문제들이 복잡하기에 미리 꼼꼼하게 챙긴다는게 불가능할 수 있으니 크게 마음에 담지는 않아야겠습니다.

긴 이야기를 나누고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부수적으로 필요한 법률적 절차때문에 법정대리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촌수가 가까운 제가 법정대리인을 맡았으나 한명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제 누이를 법정대리인으로 하자고 부탁하더군요. 약간 깨름칙하지만 마침 누이의 주민번호등이 있었기에 알려 주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양수인은 이 사실을 모르겠죠.


시간이 며칠 지난 후에, 양수인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제 누이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하더군요. 주민등록 초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번호는 알려주면서,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면 다른 양도인을 법정 대리인으로 세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누이에게 부탁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양도인을 법정대리인으로 세우라 권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와 다른 양도인은 주민등록초본과 인감증명을 법무사에게 제출하고 왔습니다.
양수인과 촌수가 좀 멀긴 하나 그래도 같은 집안의 사람입니다.
양수인이 저에게 주민등록초본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 번에 내려가서 주었던 것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생각했고, 그러면 다른 양도인의 주민등록초본도 있으니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수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굳이 서울에 사는 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의 설명도 없이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서 부치라고 부탁했습니다.
(나중에 누이에게 전화로 확인하니 설명따윈 없었습니다.)

③ 누이에게 제가 미리 설명을 해 두긴 했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양수인은, 먼저 자초지종을 설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단지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부탁을 하는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인지, 애초에 이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누이에게 아무 거리낌도 없고 아무 전후 설명도 없이 부탁을 한 양수인을 생각하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이래 저래 걱정도 많이 되고, 화도 나고,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그리곤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한 걸까?
양수인은 정말 몰염치에 철면피라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일부는 양수인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 안에 있는 모순과 마주하게 됩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대명제에서 파생되어 온 의식은
[남이 싫어하거나 불편할 일을 부탁하는 것 또한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통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혹은 이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매우 선량해서 피해를 끼치지는 못하면서도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저 명제에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합니다.
따라서 내가 남에게 무리한 부탁을 못하면서 동시에 남이 내게 무리한 부탁을 하면 거절함은 물론이고 화를 내게 되나 봅니다.

어찌 보면 나와 타인을 동등하게 대하므로 좋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실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상황은, 저 대명제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것]과 [남이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는 데서 발생하곤 합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요.
모두가 일정한 교육을 받고 같은 시대 같은 문화권 내에 살고 있다면 이러한 대명제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는 있는데,
그럼에도 문제들이 불거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개인적인 호불호에 기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불호라 해서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될리 없겠지만, 가령 큰소리에 민감한지 여부, 덥거나 추운 기온의 차이, 등을 생각하면 어떨까요? 또 누군가는 명예를 중시하고 누군가는 실리를 중시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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