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독하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뭔가 야릇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글의 내용인 즉, 글쓴이 자신이 종사하는 컴퓨터 보안의 업무에 적합한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인지에 대한 것이었으며, 글의 의도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미리 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해 줌으로써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목적도 순수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작성한 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든 건...
그건 마치 그 글이, <자신과 어울리는 배우자를 고르기 위한 조건들>처럼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 외에도 이와 유사한 부류의 글들이 많습니다.
<성공하기 위한 n가지 조건>과 같은 것들로 제목은 다양하지만
[ X하기 위한 조건 Y ]를 나열하는 식의 글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글들이 제시하는 조건 Y는 X를 성취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 아닙니다.
어쩌면 충분 조건인 글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글은 외면받곤 합니다.
(충분 조건은 그 범위가 너무나도 넓어서 조건을 충족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그나마 필요조건이라 하더라도 너무 지엽적이거나 극히 일부분인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조건까지도 마구잡이로 끼어 넣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자신의 개인적인 성공사례 하나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며, 좀 더 넓혀 봐야 이런 사례 몇가지 정도를 모은 것이기에, 특정한 경우일 뿐 일반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인지하는 조건만이 기술되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조건은 무시되며, 간혹 잘못된 조건을 필요조건으로 오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너무 추상적으로 기술했나요?
구체적인 블로그 글 하나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처세/성공/사례/비법에 관한 글을 싸그리 비난하자니 어이 없는 논리의 비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시 원래의 글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아마도 글쓴이는 저기에 네모친 4가지 특성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컴퓨터 보안의 업무에도 적합할 거라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오랜 시간 업무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 저런 특성을 도출해 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저 특성들이 너무나도 어렵고, 자신이 저런 특성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 보입니다.
글쓴이는 현재의 업무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성격이 저기에 부합한다는 걸 알고 시작했을까요?
아니...처음 사회에 발을 내 딛을 때, 면접관이 저 4가지 특성에 대해 본인의 성격과 부합하는지 질문했다면 한치의 흔들림 없이 또렸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어쩌면 글쓴이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래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에, 힘들었던 부분을 골라낸 것일 수도 있겠죠.
혹은, 오랜 세월 업무를 하다보니 자신의 성격이 거기에 맞추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작정 생겨나는 마음이 아닐까요?
다른 일엔 시큰둥 하다가도 갑지기 호기심이 생기는 무언가가 있다면,
다른 일은 시켜야만 하고, 감시해야만 하지만, 틈날 때마다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일이라면요?
수많은 구인 업체 가운데에서 특별히 지정하는 업종이 있다면, 혹은 무심코 앉은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이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닐까요?
저런 조건은 그 다음에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율과 같은 것으로써...
그리고 대부분의 일들은 입으로 떠들고 글로 설명을 해도,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입니다.
A4 용지에 빽빽하게 배우자의 조건을 나열해 두었다가도, 그와 정반대 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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