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1일 목요일

타인과 비교하기 / 비교당하기

대인관계의 피로함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떼어버릴 수 없는 관계들도 있습니다.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혈연관계입니다.
그리고 이 혈연관계의 연장선상에는 무수히 많은 친척들이 존재합니다.

이 친척들과의 관계는 좋다고 유지하고 싫다고 끊을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하거나 끈질기게 소식을 접하고 전해야 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친척간이라고 모두 사이가 좋지만은 않으며, 사이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섞여 있으면서 미묘한 역학 관계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종종 이런 친척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그 원인을 찾아보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 A가 많은 돈을 벌었다/A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A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
→ [ 이러한 A의 소식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지 않음에도 질투/시기를 하게 된다 ]
→ [ A가 비열한 방법을 썼다/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의심하거나 단점을 찾아 위안한다 ]
→ [ 잠시 나 자신을 기만할 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
→ [ A에 대한 소식이 반복되면 기분이 좋지 않고 화를 내게 되며 심지어 A를 미워한다 ]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심리적 배경에는 "비교"당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비교당할 거라는 두려움
어떤 가치를 획득한 타인을 질투하고 것은 타인과 자신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타인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함으로써 비교우위에 올라었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서 자신이 비교 열세에 처했다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가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경우, 또는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무한정의 가치인 경우에는 확실히 비교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라캉의 타자의 시선, 타자 의식, 타자의 욕망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작 이런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저 한가지 화제거리일 수도 있으며, 지속적인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듣는 사람은 화자(話者)가 나와 그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우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비교당하며 자라왔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닐까요?
비교당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질책을 받고 반성과 각성을 강제당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비교당하는 것 자체를 매우 불쾌하고 나쁜 것으로 느끼며, 회피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아도 크고 작은 흥망성쇠는 반복하며 운이 좋거나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은 숨기기 마련이고 성과는 뽐내고 싶어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나의 소식은 좋은 것 뿐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나를 질투하고 시기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누군가는 대놓고 평가절하를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의심할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면전에서라도 잘되었다 칭찬해주는 사람이나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이런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어떠할 것이며, 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게 될까요?
과연 누가 소인배이고 대인배인가요?
누가 심성이 맑고 선한 사람이며, 누가 옹졸하고 겁에 질려있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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