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이유

아마 6개월 가량된 것 같다.
지난 여름에 마지막으로 만났으니까, 전 직장의 입사 동기들과의 만남이...

모든 대인관계를 끊는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좀 꺼려지면 가급적 연락을 받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또, 그 중의 한 녀석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의 할 일이 있으니 시간되면 연락 줘'
문득 갈등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길래 나와 상의를 하려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와 상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일에 척척인 녀석이다.
그저 나로 하여금 연락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짐작될 뿐.

며칠전에 다른 한녀석이 메일을 보내왔다.
오랫동안 모임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녀석인데, 우리 모두에게 안부 겸 메일을 보냈다.
옛날 메일 주소라 몇명이나 받았을지 궁금키도 하지만,
더 깨름칙한 건, 그 녀석이 보낸 메일은 무려 6년전에 내가 보낸 메일에 답장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6년 전의 메일엔, 잔뜩 지치고 절망적인 상태였던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랬었지.
그 당시에 너무 암울하고 분하고 답답했지.
그리고 그 얼마 후에 퇴직을 한 일도 함께 기억이 났다.

어쩌면 오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친구는 이 메일의 내용을 보고,
뭔가 궁금증이 생긴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아무튼, 내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은 아닐거라 자위를 해 본다.


그리고 잠시, 변명이라도 그럴 듯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


난 너희들을 보면, 내가 보인다. 
그리고 난 나를 바라보는게 무섭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겁이 났다.

내가 제일 겁냈던 것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 아닐까?

꿈과 희망이 사라진 나,

힘을 잃어버린 나,

모든 치장과 거짓을 벗겨낸 후에 남겨진, 벌거벗은 나를 겁냈나 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어째서 이발사는 임금님 귀의 비밀을 지키기가 그리도 힘들었던 것일까?
그거이 과연 사람의 본성이란 말인가?

나 또한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없기에 이곳을 대나무 숲이라 여기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어찌 그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지....

18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그 동안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대표직을 지내며 보여준 끈기에 대한 보상이었을지 모르겠다.

박근혜 후보는 당선 후, 며칠이 지난 12월 25일에 인수위원회의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발표하였다. 다른 사람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으나 수석대변인으로 발탁된 윤창중이라는 인물 때문에 너무 큰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17대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기간을 빗대는 말 중에 "형님 정치" 혹은 "멘토 정치"라는 말이 있다. "형님 정치"는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의원이 실세 역할을 하면서 국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며, "멘토 정치"는 이대통령이 그의 정치 멘토로 삼았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권력이 막강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아직 이대통령의 임기가 남아 있지만, '형님'과 '멘토'는 모두 구속수감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최시중 전 방송통신 위원장은 이대통령의 임기 초부터 언론을 강하게 장악했으며, 먼 훗날을 위해 보수언론 및 재벌언론의 권익을 위해 힘쓰셨다. 그리하여 새로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을 만들어야 함을 역설하고 재벌들이 언론에 진출하는 길을 터 주셨다.

이리하여, 과거 신문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언론재벌이 되었으나 TV 방송에는 진출하지 못했던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모두 종편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조선일보는 [TV조선], 중앙일보는 [JTBC], 동아일보는 [채널A]라는 이름의 채널을 가지고 언론보도가 가능한 종편을 운영하게 되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31/2010123100759.html
종합편성채널 선정,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18대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에, 이 종편을 통한 보수 언론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종편 채널들도 간혹 시청을 하곤 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앵커들 마저도 보수 편향이 너무 심하여 야당 혹은 진보 성향의 인물은 출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간혹 앵커들은 섭외를 해도 응해 주지 않는다고 방송 중에 언급하기도 했으나 그 반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선이 점점 코앞으로 닥쳐오자 야당 혹은 진보 성향의 인물들도 종종 출연하기도 했으나 좋은 대접을 바랄 수는 없었음은 뻔한 이치였고, 심한 경우에는 보는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 와중에 [채널A]에서는 <박종진의 쾌도난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 프로그램은 박종진氏라는 앵커가 게스트를 한분씩 보셔놓고 1:1로 대담을 하거나 주제에 대한 주장을 들으며 진행이 되었다.
초기에는 몇몇 게스트는 꽤 명석하기도 했었고, 박종진 앵커도 비교적 편향되지 않았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도 잘 했기에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다.

http://tv.ichannela.com/culture/sisatalk
박종진의 쾌도난마

어느 때 부터인가 윤창중이라는 분이 게스트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처음 방송을 보면서 "대단한 보수주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앵커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으로 인해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절제되지 못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윤창중氏의 방송이 점점 잦아지고, 재방송이 많은 케이블 채널이긴 했으나 유난히도 윤창중氏의 방송이 재방되는 빈도가 많아지게 되는 듯 했다.
윤창중氏는 진보,좌파,종북 모두에게 대단한 혐오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그저 진보 혹은 개혁의 성향으로 볼 수 있는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도 지극한 혐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결국에는 이 방송을 볼 때마다 기분이 몹시 불쾌해지게 되어, 윤창중氏의 얼굴이 보이기만 하여도 채널을 돌리게 되었고, 급기야는 쾌도난마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너무나 불쾌해지는 그의 증오감 때문에 도무지 볼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윤창중이라는 분의 방송 내용은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으며
아마 유튜브에도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아마 얼마 있으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윤창중의 칼럼세상]이라는 블로그도 운영중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그 윤창중氏가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이 된 것이다.
구차하게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을 뒤집었다느니,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 운운하며, <윤봉길 의사라도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한다해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의 정의(正義)이려니 해야 하며, 말로써 먹고 사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더 굳건히 하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정도의 비밀은 못되지만, 정말 의심스러운 건, 윤창중氏는 애초에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방송에 출연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래, 다른 말도 많지만 난 이 말이 꼭 하고 싶어서 이 장문을 작성했다.
<윤창중氏는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방송에 출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형식과 내용, 외형과 본질

역사 공부를 하게 되면 흔히 마주치게 되는 분쟁 가운데, 형식과 내용에 관한 분쟁들이 종종 있다.
인간의 역사라는 큰 흐름에서는 눈에 띠게 큰 분쟁이 아니지만, 종교, 문학, 예술, 관습, 사회규범 등의 세분화된 역사에서는 크고 작은 형식/내용의 분쟁이 있어왔다.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서, 형식이 아닌 내용이 더 중요함을 익히 알고들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형식/내용의 분쟁은 끝이 없이 반복되어 왔던 것일까?

첫번째 원인은 어떤 분쟁의 핵심 쟁점이 형식/내용에 관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리는데 조차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두번째 원인은 이런 분쟁에서 형식을 주장하는 측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을 계승하는 것을 중시하는 보수적이고 기득권적인 경우가 많고, 내용을 주장하는 측은 과거의 구습을 타파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개혁적이고 경험이 적은 신진 세력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분쟁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이해관계나 지역/시대/환경에 따른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서 칼로 자르듯이 나누거나 단번에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점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들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결국엔 언젠가는 내용이 형식을 파괴한다는 사실과,
보수적인 기득권의 형식이 개혁적인 신진세력의 내용으로 바뀌는 데에는 희생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자기 합리화는 본능인가?

그리하여 자신의 불이익을 무릎쓰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최근에 털어 놓은 고민은 자신의 동생에 관한 것이었다.
터울이 꽤 나는 자신의 남동생이, 성격부터 하는 일 모두가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었다.
성격은 독불 장군에 유아독존이고, 겉멋만 들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만, 하는 일마다 끈기가 없어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하고, 늙으신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서도 감사할 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동생을 직접 본 것은 학창 시절 때 잠깐이었으니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단지 동창녀석이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하고 유연하지 못해서 자신의 뇌리에 박혀 있는 생각 이외에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때문에 그의 말이 미덥지 못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터에 어느날 이 친구가 부모님께 손을 벌려 부동산 시세가 꽤나 높은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동생이 부모님의 재산을 탕진할 것 같아, 부모님의 재산을 회피시키기 위한 작전이라고는 말은 하나, 시시콜콜한 얘기를 떼어놓고 보니, 흔한 형제간의 재산 싸움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이 친구에게는 그것이 자기합리화의 결과였을 것이다.



내게도 연년생의 누이동생이 하나 있다.
나는 독자였고 내 동생은 딸부잣집의 막내딸이었다.
나야 성별부터 다르고 입는 것도 다르니 내가 독자의 대접을 받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안받았을리 없는 일이다. 적어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였으리라.
동생은 한살 터울이니 나와 거의 비슷한 시기였기에 내게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질투심을 느끼는 게 당연했었고 이로 인해 나와 동생은 어렸을 때 엄청 싸우곤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동생의 성격에 꽤나 영향을 주었는지, 장년이 된 지금도 과거의 앙금을 떠올리며 날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누이들도 막내의 성격엔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많았기에, 내가 편파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한 것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도 조금 사이가 좋아질만 하면, 우연치않게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 화를 내거나 맘을 상하곤 다시 멀어지는 일이 몇번 있었다.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에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인 적이 있는데,
이야기 할 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에선 과거에 누이동생이 벌인 얼토당토 않은 사건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나는 잘못이 없고 동생은 어처구니 없는 사람으로 보일 그런 일들을 나열해 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자, 앞에서 말한 동창의 동생과 나의 동생이 머릿속에 교차하였다.
나 혼자서는 얼마나 그 동창을 비웃었던가?
자기 합리화의 극치를 보여 준 어리석은 녀석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동생을 보면 나 또한 다른지 않았던 것이다.
나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자 나와 내 누이동생의 관계를,
그 사이에 있었던 언짢았던 일들을 다시 반성해 보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아니 불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나에게 돌아올 비난과 책임을 그대로 받아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자기 보호 본능이 이런 생각을 허용할 것인가?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마르셀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명작입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평판이 주를 이루었고 내용을 전해주는 이도 거의 없었으며 선뜻 권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문득 이 책의 제목이 떠올랐고,
인근의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흠칫 했더랬습니다.
일반적인 두께의 책 11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4편은 2권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제 1권은 <스완네 집 쪽으로1>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대출해 온 이 책은 지독히 지루하고 섬세합니다.
집중해서 1페이지를 읽기도 어렵고, 잠자리에서 읽으면 초강력 수면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몇 페이지를 읽고 본 이 책의 특징은,
사물이나 인물, 사건이나 행동이 아닌 의식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룹니다.
그것도 지극히 섬세한 묘사가 이어지고, 찬찬히 읽으면 그 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의식의 묘사는 무의식마저도 묘사하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무의식이 묘사가 가능하다면 더 이상 무의식이 아니겠지만요.
한줄기 희망과 같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이 깊은 심연과 같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잠들어 있는 각성의 뱀을 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잠든 인간은 시간의 실을, 세월과 삼라만상의 질서를 자기 몸 둘레에 동그라미처럼 감는다. 깨어나자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찾아, 거기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지점과,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때를 삽시간에 읽어 내는데, 종종 그것들의 열(列)은 서로 얽히고 끊어지고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의 새벽녘, 평소에 잠자는 자세와 다른 자세를 취하고 독서하다가 잠들었을 때, 단지 팔의 위치가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 태양의 걸음을 멈추게 하거나 뒷걸음질 치게 할 수 있으므로, 눈뜬 순간에는, 이미 일어날 시간인 줄 모르고서 지금 막 잠든 줄로 여길 때도 있을 것이다. 보다 바르지 못한 어긋난 자세, 예컨대 저녁 식사 후 팔걸이 의자에 앉아 옅은 잠이 들기라도 하면 무질서한 세계에 빠져 대혼란은 극에 달하고, 마법 의자에 앉아 시간과 공간 속을 전속력으로 달려, 눈꺼풀을 뜬 순간, 어쩐지 딴 나라에서 몇 개월 전에 취침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단지 침대에 눕고, 거기에다 잠이 푹 들어 정신의 긴장이 완전히 풀리는 것만으로 족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정신은 나의 몸이 잠들고 있는 곳을 종잡지 못한다. 그리고 오밤중에 눈뜰 때,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첫 순간 내가 누군지조차 아리송할 때가 있다. 나는 동물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극히 단순한 원시적인 생존감을 갖고 있을 뿐, 나의 사상은 혈거인(穴居人)의 그것보다 빈곤하다. 그러나 이러한때, 추억--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추억이 아니고 지난날 내가 산 적이 있는 곳, 또는 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두세 곳의 추억--이 하늘의 구원처럼 이 몸에 하강하여, 혼자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이 몸을 건져준다. 나는 삽시간에 문명의 몇 세기를 뛰어 넘는다. 그리고 첫째로 석유등잔, 다음에는 깃이 접힌 셔츠 따위들이 어렴풋이 눈에 비치는 영상에 의해서, 자아의 본래 모습이 점차로 꾸며져 나간다.
우리 둘레에 있는 사물의 부동성은, 모르면 몰라도 그 사물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그 사물 자체라는 우리의 확신, 다시 말해, 그 사물에 대한 우리 사고의 부동성에 말미암은 것이다. (후략)

하나의 문장이 길고, 한편으로는 운문의 느낌마저 납니다.
보봐르가 칭찬해 마지 않는 이 작품은 어쩌면 이런 문장 하나 하나가 주는 <각성>의 기쁨에 그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도서관에서 대출 받아 시간에 쫓겨가며 읽을 책은 아니고,
아직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