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에 뒷산에 올랐다.
제법 힘이 드는 산행이고,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객도 많았고, 가족들이 함께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 깔딱 고개를 힘겹게 헉헉거리며 오르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젊은이가 있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많은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다.
산에는 저런 젊은이는 잘 오지 않는다. 약간 숨은 차지만 거뜬하다는 표정.
오르다 말고 뒤를 내려다 보더니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경사로 계단에 앉았다.
(지자체에서 방부목과 삼베로 엮은 가마니 같은 것으로 경사로의 계단을 만들었다)
학생에게 거기 앉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만약 경사로 위에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굴러 떨어지면 다칠 위험이 있다고... - 산 정상에 올라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까의 그 남학생과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올라 왔다.
정상의 표시석을 보고 아버지는 학생에게 여기 서보라며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하지만,
남학생은 쭈뼛거리고 손사래를 친다.
아버지가 함께 찍자고 표시석 옆에 서서 셀카 자세를 취하자 그제서야 마지 못해서 옆에 선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말을 건네자 흔쾌히 스맛폰을 건네 주신다.
사진을 찍어 드리고 학생에게 한마디 또 건넨다.
아버지가 찍자고 하면 찍는 거야. 이것도 얼마 안남았어.
나중에 생각하니 공연히 꼰대짓 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 학생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 거였고,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던 거였다. - 이제 슬슬 하산을 하고 있는데, 저기 아래쪽에 두명의 아이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5살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아버지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지나가며 보니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큰 아들은 뭔가 삐쳐 있어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었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약간 눈치를 보는 듯한 상황. 아버지도 뭔가에 화가 난건지 근엄한 표정. - 큰 아들은 아버지와 거리를 두며 먼저 내려 갔다가,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리지면 좀 기다리고, 다시 거리가 좁혀지면 먼저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이 큰 아들과 몇번 눈이 마주 쳤는데, 얼굴을 보니 만만해 보이는 성격이 아닐 듯 했다. 앙 다문 입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눈매의 날카로움은 불같은 성격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봤는데, 이 아버지도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보였다. 어쩐지 아들과 닮은 듯 하면서도 조금은 달라 보였다.
아마도 아들들이 어머니를 더 닮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꽤나 자주 충돌하겠다 싶었다. - 그 아버지와 아들의 불편한 사이는 보는 나로 하여금 꽤 불편함을 일으켰다.
그냥 싸워서 분위기 안좋네, 얼른 화해하지 이런 정도의 불편함이 아니라,
굉장히 우울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그것이 이번 한번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었을 거라는 예감, 온 집안에 감도는 긴장감,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하는 가족들... - 산을 다 내려와서 보니, 공원의 공터에서 한무리의 소년들이 공차기를 하며 뛰어 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총 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급수대 아래쪽에 물이 홍건히 고여 있었다.
한 남자 아이가 급수대에서 물병에 물을 담고 있었는데, 그게 물을 담는건지, 물 장난을 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옆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마침 공차기를 하던 무리의 공이 급수대 쪽으로 굴러왔고, 고여있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일부가 당황하는 듯 하더니, 그 중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기서 물장난 하지 말라고!
뭐 물장난이 물을 좀 보탰을 지언정, 물장난 때문에 물이 고인건 아닌거 같고, 물이 고여 있으니 언젠가 공이 물에 빠지는게 당연해 보이는데도 물을 받던 소년에게 화를 낸 것이다... 사실 소년이 물장난을 안해도 물은 빠지지 않고 고여 있었다.
옆에서 이걸 보다가, 왜 화를 내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소년이 참 어이가 없었다.
아까 산에서 보았던 부자의 모습이 또 다시 떠올라 조금은 더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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