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가 Arrival인데,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
1997년에 개봉했던 조디 포스터 주연의 명작의 제목은 콘택트.
한글자만 바꾸어서... (콘 → 컨)
유명한 감독의 명작이라며 칭찬이 자자하지만, 당시에도 보지 않았다.
대충 귀동냥으로 들어 보니, 언어가 달라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표현도 다른 외계인과의 소통, 특히나 외계인의 언어가 시간에 대한 인식 체계가 달라서, 그들이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본다는...식의 설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에 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환상일 뿐이다,...
대체 시간의 흐름이 없다는 이런 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고,
지금까지는 그냥 그들끼리만의 ~인 척 하는 방식이라고도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자꾸만 들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시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봤다.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아마 그러고 나면, 누군가를 비난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없어보이고, 못나고, 덜 떨어진 인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겠다.
어쩌면 내가 잘 못 이해한 것일 수 있을테고,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사실은 그 이유 때문에 이 포스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어떻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본 바로는, 이 영황의 이야기는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 이고, 인생에서의 선택에 관한 영화이며, 인생에서의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진정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끝이 어떨지 알고 있다해도,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바꿀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어찌보면, 이미 결정된 것과 다르지 않은 행로를 밟아 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딸을 낳을 것이고, 어떻게 기를 것이며, 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미리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그 선택을 바꾸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보았던 그 미래를 향해 따라 간다. (아니 가게 될 것이다?)
외계인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루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루이스가 미래를 본다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만약에 그냥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거든. 그래서 말야... 이렇게 시작하면 스토리는 그냥 막 지어낸 뇌내 망상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어렵고 드문 일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위해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인식이 가능한 언어와 그걸 사용하는 외계인이라는 도구(!)를 가져 온 것 뿐이었다.
사실 영화 상에서는 그들의 언어 체계를 매우 분석적으로 다루는 듯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혹은 핵심적인 이론이나 실마리는 없다.
그냥 열심히 하나씩 분석하다 보니 알아 듣게 되었음. 이게 전부다.
칠판에 영어 쓰고 실물을 보여주거나 행위로 보여주는 식으로, 외계인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결과는 영어를 쓰는 외계인을 보는 게 아니라, 외계인을 쓰는 인간이 되었더라는...
그러니 그들의 언어가 대체 어떻길래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인식이 가능한지 설명을 바라는 건.... 상상만으로라도 좀 힌트를 줬으면 싶었지만 역시나 없었다.
시간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 영화를 본 내게는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누군가 스크립트를 써 준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평론을 베껴서 나눠 가지기라도 했는지, 어째서 영화 평론가들의 평은 하나같이 외계인, 소통, 언어, 시간만을 다루고 있는 것인지...
예전에 이 영화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될지 안다면, 과연 내 선택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였는데, 머리로는 확신이 들지도 않고 이쪽도 저쪽도 일장 일단이 있어 망설이고는 있지만,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 혹은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한 결과가 결코 좋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어쩐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아직 미혼인데도 독립해서 나가 살겠다고 했던 선택이나, 대기업 직장을 그만 둔 일이나, 공동으로 창업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던 일이나,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들...
아무리 평행 우주와 다중 우주를 들먹이고, 다른 선택을 한 나와 세계의 또 다른 미래가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주장을 믿는다 해도, 몇몇 중요한 선택에서 다른 선택을 한 나를 상상하는 건 아주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결과가 이리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고, 그건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한계일 수도 있으며 또한 나의 변하지 않는 아이덴티티일지도 모른다고....
이 영화가 이런 생각을 그럴 듯한 상황으로 꾸며서 그럴듯 하게 설명한거라고 보인다.
아마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드 창의 원작을 읽어 봐야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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