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일 목요일

뒷산을 오르며...2

예전에 열심히 다닐 땐, 하루 걸러 한번씩 오르기도 했던 산이지만,
이젠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허벅지에 만들어진 근육이 좀 말랑말랑 해지는 듯 해서 다녀온지 4일만에 또 올랐다.
이번에 평일 이른 아침. 6시 30분쯤.


  • 지난 번에 오를 때도 봤지만, 여기 저기에 매미 나방이 많이 보인다.
    큰 나무에 몇마리가 모여서 딱 붙어 있고, 그 몇마리 틈새로는 갈색의 알이 보인다.
    그땐 몰랐고,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게 매미 나방과 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해충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특히 등산로 중간에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서어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워낙에 나무가 매끈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 일부는 반질거리기까지 한다.(경사로에 있어 사람들이 그 나무를 이용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지탱하곤 한다.)
    그 나무에도 매미 나방이 여러마리 붙어 있어서, 이번엔 떼어 줘야지 생각했다.
  • 깔딱고개를 오르고 나서 좀 쉬려고 벤치가 있는 곳에 앉았다.
    마침 먼저 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운동을 하고 계신다.
    Y자 모양으로 갈라져 뻗은 나무에 양손을 지지하고 몸을 당겼다 밀었다 하시는 중.
    그런데 그 나무가 경사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르신의 반대편은 뿌리가 반쯤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작지 않은 나무니 당장은 문제가 없어도, 저런 일이 반복되면 나무가 쓰러지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시고 난 후에,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주관하는 여가/취미 과정에 참석을 많이 하시는 데,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 지원을 받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실 때면, 가끔 눈에 보이는 '진상'들이 있는데,
    양에 넘치는 음식을 가져와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가 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받아와서 일부를 따로 싸서 가져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런 분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무료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임에도 그런다고.
    뭐 싸가지고 저녁에 또 드시려나보다 했지만, 어머니 보시기엔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 자주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에 유난히 불편해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좀 쉽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던 사람에게, 오랫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상대방의 반응이 조금은 시큰둥함을 느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얘기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었음을 알고 속으로 꽤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 그리고 오늘 이 산에서, 난 또 그런 나의 성향으로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떨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런 행동은 이렇게 좋지 않습니다 말을 한들, 그걸 바로 수긍하며 들어 줄 사람도 적을 뿐더러, 내가 항시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감시하며 참견하지 않는 이상은 그 나무를 지켜 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는 사람들이 두 손으로 지탱하기 좋은 모습을 가지고, 그런 경사에 있었다는 이유로, 종종 사람들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버티다가, 이내 뿌리를 노출되고 약해져서 쓰러지거나 말라 죽기 쉬운 운명으로 태어난 듯이 보인다.
    아마 내가 오지랖을 부렸어도 그 나무의 운명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겠다 싶었다.
  • 계속해서 산을 오르다보니 매미 나방이 더 많이 보였다.
    처음에 가졌던 생각처럼 이 매미 나방을을 죽이고 알을 최대한 없애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이 나방은 날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나무에 착 붙어 있는데, 크기는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이고, 몇마리가 겹치다시피 뭉쳐 있다.
    사실 저걸 어떻게 죽이나, 나무로 건드리면 갑자기 날아가지 않을까, 낮은 곳은 발로 밟을까, 독이 있다는데 무슨 해를 입지 않을까, 갖가지 생각으로 망설여지기도 했다.
  • 하지만 그 보다는, 그 나무의 운명과 같이, 내가 어떤 생명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인간에게는 해충이라고 하지만, 어떤 생명에게는 익충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다람쥐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고, 새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보이는 몇몇 매미 나방을 죽인다 해도 이 산의 매미 나방 숫자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못할 뿐이고,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비록 자기 합리화일 뿐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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