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타인에 대한 증오를 다스리는 방법

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늘어가는 듯 하다.

정치인과 정치권에 대한 분노들,
층간 소음과 같은 이웃에 대한 분노들,
토론이 논쟁으로 번지고 급기야는 마음까지 상해서 생기는 분노,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무차별한 악성 댓글을 남기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

나이가 들면 그러려니 이해도 하고 좀 쉽게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아직은 그러질 못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이만 먹는다고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던 듯 하다.
고민하고 아파하고,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해 지혜로운 해결책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조금씩 천천히 나아질 뿐이고, 그나마도 끊임 없이 자신을 다스려야만 가능한게 아닐까?


친구들 가운데, 유난히 나와 툭탁거리고 삐꺽대는 친구가 있다.
정말 둘이서만은 만나고 싶지도 않고, 함께 모이는 친구들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고, 그러고도 만나면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나는 비슷한 면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친구의 행동이나 생각따위에서 나와 닮은 부분이 보일때면, 내가 종종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대했던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내게 그랬을지 모르는 일이고, 혹은 나의 공격적 반응때문에 악감정이 쌓여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 친구의 행동이나 생각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흥분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순간에는, 그 친구의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랬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그 행동이나 말은 결국 나의 행동이나 말과 어딘지 닮아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어두운 생각, 피하고 싶은 행동 따위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반쪽인 하이드씨였던 셈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친구에게서 나의 하이드씨를 보게되면 분노했던 것일지도...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서 나의 하이드씨 단면을 보고, 거기에 분노할 수록, 나 자신이 나의 하이드씨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지킬박사의 모습을 하고 점잖은 체 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하이드씨는 언제나 내 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반쪽을 더욱 더 증오하게 되었다.
결국은 지킬박사이면서 하이드씨인 나는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는 것이었고, 극심한 자기 혐오에 빠지거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해 자아를 분열시켜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분노와 증오가 나의 어두운 반쪽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마음속에 세워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경계처럼, 나는 세상을 둘로 갈라 놓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하이드씨를 미워하는 마음처럼 세상의 반을 미워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의 반을 증오하는 것이고, 그건 결국 자가 자신을 증오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문득 분노가 꿈틀댈 때, 이 점을 다시 상기하고, 하이드씨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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