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외출.
머리도 깎고 마트에서 장도 보고 돌아와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야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쇠 꾸러미를 잃어 버렸다는 걸.
아파트 보조키 열쇠, 자동차 키, 아파트 입구의 공동 현관용 스마트 키 세개가 엮여 있는 키였다.
시간은 밤 9시와 10시 중간 쯤.
일단 들고 있는 짐을 적당한 곳에 숨겨 두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며 열쇠를 찾아 보았다.
사실 열쇠를 어디에서 잃어버린 건지, 열쇠를 꺼냈던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일부러 꺼낸 적은 없었으며,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되짚어가며 길에 흘렸을 수도 있어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이미 어두워진 길에서 가로등과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이 비춰주는 곳을 제외하면 무언가 식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물건을 구입했던 마트 등에도 들러서 내 동선을 기억해보고 되짚어 가며 찾았보았고, 계산원에서 혹시 열쇠를 본 적이 있는지도 물었으며, 혹시라도 찾으면 연락 바란다고 연락처도 남겼다.
그렇게 나의 자취를 모두 살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단 한군데, 머리를 깍은 곳은 문을 닸았는지라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은 후에 아파트로 돌아와서 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만약에 못 찾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오늘밤은 어떻게 지내야 할까?
대체 어디에서 잃어 버렸을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단, MP3 플레이어를 주머니에 넣고 빼는 과정에서 열쇠가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적이 있으니 이 과정이 제일 의심스럽다. 혹은 확인 못한 머리 깎은 곳.
만약 못 찾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아파트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가장 쉽고 저렴하고 피해가 적은 방법으로.
자동차 키는 복사를 해야 할텐데, 혹시 그 키가 유일한 키면 복사가 가능할까?
스마트키는 없이 지낼 수는 있는데, 아파트 관리실에 신고를 해야 할까?
당장 오늘밤은 어떻게 지내야 할까?
지금이라도 서울 본가에 갈까? 너무 늦은 시각이고 당장 내일 해야할 일들이 많을테니 이건 무리.
워낙에 야행성이니 내일 오전까지는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지만, 배도 고플것이고 하루 종일 걸어서 좀 앉아서라도 쉬고 싶다. 그리고... 심심하다.
찜질방이나 PC방을 찾아보고 24시간 운영하는 식당도 찾아보고 해야겠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열쇠꾸러미를 주웠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냥 지나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쉽게 주인을 찾을 수 있는 표식도 없으니 어떻게 처리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그 사람의 동선에 파출소와 같은 공공 기관이 있다면 신고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우체통에 넣었을 수도?
아, 요즘 젊은 사람이라면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 올려서 반은 도움을 구한다며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 먼저 PC방에 가서 검색해 보자...(내 스맛폰은 데이터 요금제가 없어서 그냥 폭탄 요금을 써야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밧데리가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아까 연락처 적어준 곳에서 연락이 와도 통화중에 꺼져버릴 수도 있는 상황.)
어렵게, 또 먼 길을 이동해서 PC에 들어가 검색을 시작했으나...마땅한 정보 찾기 실패.
남는 시간에 아파트 문 여는 방법 등도 검색해보니 이것도 좋은 방법은 없었다.
이제 PC방을 나와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길거리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리가 많이 아프고 피곤하다.
많이 걸어서 무리이기도 했고, 오랫동안 서 있으니 피가 다리로 몰려 있는 상황.
잠은 자지 않더라도 다리를 높게 해야 좋을 것 같다.
마침 근처는 지하철 역사와 백화점이 공존하는 곳이라, 백화점의 1층 통로는 24시간 개방되어 있었다. 이곳에 약간은 푹신한 긴 의자가 있었는데,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지나가는 통로가 있었다. 즉, 4개의 굽은 벤치가 안쪽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는 셈.
새벽3시인 시간에 이곳에 3명의 사람이 있었다.
각각 한 코너씩 차지하고 있어 나도 남은 하나의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대각선 맞은 편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등을 보이고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내 왼쪽에는 건장해 보이는 40대 전후의 남성이 반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비스듬이 눕듯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오른쪽에는 안경을 쓴 짧은 머리의 남학생이, 왼쪽의 남성처럼 앉아 있는데, 한손으로 전화기를 받쳐서 귀에 대고 있었다. 처음엔 저러고 자고 있나 싶었는데 나중엔 나즈막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한참을 더 그러고 있다가 가방을 챙겨서는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은 앉아 있다가, 학생이 떠난 후에 몸을 눕혔다.
얼마 후에 왼쪽에 있던 남성도 불편했는지 모로 누워 자기 시작했다.
참 피곤하다.
내일, 아니 날이 밝으면 또 어찌해야 할지, 어디서 뭘 해야할지 막막한 심정이기도 했다.
괴연 집에 들어가서 다리를 뻗고 누울 수는 있을지, 노숙하는 사람들은 참 하루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삶을 살고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활이 며칠 계속되다면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기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 자연스럽게 생길거라는 생각도 든다.
떠돈다는 것, 쉴 곳이 없다는 것,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것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의 큰 차이.
내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쉬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며, 24시간 사방팔방이 노출된 곳에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게 되었다.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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