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5일 일요일

성인(聖人)은 있는가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세상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냥 빠른게 아니라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빨라지는 듯 하다.

지식의 발전은 인공지능이라는 꿈 같았던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열역학 제 2법칙처럼 인간들의 개개인의 자유도에 대한 욕망도 증가하면서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들의 분열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런 급격한 변화들은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 속도에도 영향을 끼쳐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만연해 있던 관습들은 구태(舊態)와 악습(惡習)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도 과거에는 최소한 한세대인 3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가치관 변화, 그래서 구태와 악습의 주체를 처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죄를 묻기 어려운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 평생을 살면서 몇번씩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 마음으로 살아야 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누구든 자신이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으로 행했던 것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 걱정들을 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원인은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가장 큰 변화는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혹은 남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 그에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이전보다 평등해 졌으며, 소위 갑질에 대한 비판으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도 영향을 끼졌다 생각한다.

모든 미투 운동의 사례를 자세히 보지는 않았기에, 개별 사건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폭로와 가해자들의 사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근히 나 또한 죄인은 아니더라도 비난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런 속도의 변화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도 죄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


이 와중에도 사람들의 행태는 다분히 내로남불인 경우가 많고, 자기 모순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청렴과 도덕을 요구하는 듯이 잠재적 가해자(아직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이렇게 썼음)에게 비난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정도의 철저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타인에게 인격적 살인에 가까운 모욕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자주 접하는 인터넷의 공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불편한 마음의 끝에 들었던 생각은 이러했다.
"아마도 부처님과 예수님이 현 시대에 나셨다 하더라도, 이 악플에 쫓겨서 세상을 등 지셨겠구나."
하기야 부처님도 예수님도 당 시대에는 일부 지역 내에서만 유명하셨을테고, 추종자들 만큼이나 많은 비판론자들이 있었으리라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지금도 과거의 성인만큼이나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어딘가에는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성인이 나타나면 그가 성인인지 알아 볼 수는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부처님 예수님 같은 성인은 단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기로 결정(?)했기에 성인의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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