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6일 일요일

어리석은 지식의 챗바퀴

나는 엔지니어다.
아니 엔지니어였다.
아니 엔지니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엔지니어답지 못했던 점이 불쑥 불쑥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욕을 하고, 혼자서 얼굴을 붉히곤 한다.

엔지니어답다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여러가지 특성을 모아야 엔지니어답다는 묘사가 어울리겠지만, 당장의 생각으로 떠오르는 덕목은 완벽함에의 추구이고, 철저함에의 전력이다.

나는 완벽하지 못했고- 사실 누근들 완벽하겠는가만- 완벽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당당할 수 없었다.


그래 이젠 지난 일이다.
엔지니어가 대단한 사회적 지위나 명망이 아니니 스스로의 자부심만 뺀다면 있으나 마나 했던 신기루와 다름 없다.



하지만, 이런 습성이 남아서인지, 종종, 여러가지 문제를 대할 때마다 완벽한 해법을 찾아 보곤 한다.

그건 공학적인 문제가 아닌, 기계나 전기의 문제가 아닌, 인간 사회 정치 경제 등의 현실생활의 문제에까지도 그렇다.

특히 정치나 사회의 문제들을 보면, 비슷한 문제, 비슷한 사건,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언제나 같은 식으로 반복 (문제 발생/제기 - 해법의 출현 - 반론의 출현 - 해법과 반론에 대한 다양한 여론/언론의 찬성과 반대 - 해법/반론/첨언의 무한 반복 - 어물쩡 마무리)되는 것에 염증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대체 왜 이런 어리석은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는걸까?

소위 사회의 지도층이나 정치인 언론인들이라는, 오피니언 리더들, 사회적 영향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이다지도 어리석은걸까?


능력이 있는 정치권의 인사라고 해도, 그들이 제대로 해결하는 문제는 100중에 10이 안되는 것 같다.

역대 대통령들을 봐도 비슷해 보인다.

10%면 아주 우수해 보이고, 2~3%면 보통이라 할 것이며, 그 이하는 대부분 해결해 놓은 문제보다 저질러 놓은 문제들이 더 많아 보인다.

1년에 10%씩 나아진다면 정말 좋은 시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학교 시절엔 똑똑한 아이들이 어떤지 몰랐다. 크게 튀지도 않았으니까..

중학교 시절엔 아주 간혹 별나게 똑똑한 아이들이 있었던 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보니, 노력으로 쫓아갈 수 없는 차이라는게 존재한다는 걸 느꼈던 거 같다.

그만치 뛰어난 학생들이 최고의 대학에 가서, 또 그만큼의 뛰어난 능력으로 노력하고, 다시 사회에 나와서 저만치 보이지도 않게 앞서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뛰어난 능력과 뛰어난 열정으로 노력한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의 영향력을 쥐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뛰어난 인재들이, 내가 봐도 허탈할 정도의 어리석은 해법만 제시하는 것일까?

너무 뛰어나서 내가 그 뜻을 제대로 짐작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연작(燕雀)이 안지(安知) 홍곡지지재(鴻鵠之志哉)리요



언젠가 문득 떠 오른 뿌연 생각 하나,

매일 아침에 일나서 밥먹고 일하고 쉬고 밥먹고 싸고 놀고 자고....인 듯이 보이지만,

이런 일들도 순간 순간에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곳곳에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직장인 점심 시간만 되면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게 일주일에 5번, 일년 365일 가운데 260일을 이 고민을 한다면?

나라면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나의 일생에서 완벽히 해결이 된다면 세상이 훨씬 살기에 편해질거 같으니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는 순간 내 인생의 여백은 더 넓어질까?

그렇게 하나씩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문제가 아닌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모든 것의 존재가 사라짐과 같은 건 아닐까?

어쩌면, 모든 것이 문제이고, 순간 순간이 문제인 것은, 내가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내가 존재하기에 문제로 인식된 것이 아닐까?



문제라는 건 대상이 원인인 듯 보이지만, 실은 문제 인식의 주체가 원인이다.

따라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은 인식의 주체를 제거해야 한다.

인간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문제를 인식한다는 것, 문제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했던 생각(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한 인간은 죽음에 이른 인간 뿐이다.



나는 지식이 우리를 '꽤' 자유롭게 해 줄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문제에 대한 옳은 해법을 찾는 것은 바로 지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해결되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식은 단지 챗바퀴에 불과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자리였던 챗바퀴,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속도를 높일수록 다시 그만큼의 속도로 내게 쏟아지는 문제들의 챗바퀴.

결국에 문제의 원인이 나 자신이었음을 알아내야만 비로소 내려올 수 있는 챗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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