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래된 사람이긴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중/고등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꼰대"라는 단어가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아니, 실제로 그걸 쓰는 부류가 있기는 했는데, 주로 동급생 가운데 양아치나 엽전(요즘의 일진을 당시엔 엽전이라고 흔히들 불렀다)쯤 되는, 소위 "불량 학생"들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당시에 교실에서 그런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간혹 이 단어를 듣곤 했는데, 당시에는 문맥으로 그 단어의 뜻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이버 국어 사전에는 늙은이 혹은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라고 나와 있다.)
왜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지는 지금도 알 지 못한다.
한참이 지나, 대학교를 가고 또래의 친구들이 군대를 다녀와서 군대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는 군대에서 그들끼리 사용하는 새로운 용어들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 가운데 우연히 들었던 용어는 "꼬질대다"라는 용어였는데, 대략적인 의미는 "시시때때로 간섭하거나 딴지를 걸어 사람을 괴롭히다"는 뜻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꼰대와 꼬질대다는 같은 어원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표준어도 아니고 하나는 은어이니 어원이 뭐가 중요하겠는가만, 어떤 계층에서 널리 쓰였다면 그 단어가 이리저리 변형되어 활용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같은 어원을 가졌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도 될 만하지 않을까.
아버지나 선생님은 늘상 나에게 훈계하고 지적하고 고치려고 드니 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반복되면 괴롭기 짝이 없는 것이고,
급기야는 저 사람만 봐도 기분이 좋지 않아지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지고.... 한마디로 가시방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당시에는 그래도 이런 훈계를 마땅한 것으로 여겨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많았나 보다.
유독 행실이 좋지 않은 학생들만, 자꾸만 반복되는 꾸짖음과 훈계에 지쳐,
꼰대라는 단어로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승화시켰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꼰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심지어는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뿐이 아니라, 나이가 비슷한 또래에게도 "젊은 꼰대 = 영꼰"이라 부르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단지 단어가 흔해진 것도 아니고, 꼰대라는 단어에 담긴 스트레스, 짜증의 정도가 약해진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현재에도 "꼰대"라는 단어는 많은 짜증을 내포하고 있고, 일정 부분의 증오심도 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주로 꼰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 층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여러가지 생활 관습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타인에 대한 간섭을 무례한 것으로 생각하는 관습,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관습 등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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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얘기가 길어졌다.
그래서 대체 "꼰대와 문화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데?"
문화...넓게는 생활의 관습, 도덕, 예의, 생활 패턴... 이라는 것은 그 사회에서 무난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지켜야할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광범위한 규칙(혹은 약속)을 말한다.
이런 문화는 문헌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부분은 부모 가족 형제 친척 친구 이웃 선생님 등 자주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면서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문화 중 강한 금기에 해당되는 것은, 그 만큼 강하게 전수가 되는데, 가장 흔한 방법은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이다.
흔한 예로, 금기가 되는 것을 모르고 범한 아동에게는 평생을 잊 못할 엄한 처벌이 내려지기도 하고, 그 모습을 다른 아동에게도 보여 줌으로써 강력한 경고로 삼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그 처벌을 받은 아동 혹은 그런 처벌의 광경을 목격하거나 들었던 아동은,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두려움을 지울 수 없게 되고, 비슷한 금기를 다시 목격하게 되었을 때 즉각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금기를 어긴 사람에게는 강한 분노를 표하거나 비난을 하게 된다.
다시 이런 비난을 받은 사람은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게 된다.
모든 문화가 이런 식으로 전수되지는 않지만, 강력한 금기일 수록 비슷한 방식으로 전수가 된다.
어쩌면 외부에서 전혀 다른 문화 체계를 가진 사람이 보기에는, 얼핏 무엇에 세뇌된 집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넓은 의미의 문화의 전수 과정이, 이제는 꽤 폭넓게 "꼰대짓"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 구태와 낡은 인습에 대한 자연스러운 거부 반응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전승받은 문화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 폭은 줄어 들었으며, 줄어든 만큼 왜곡될 가능성은 높아지고 단절될 가능성도 높아진 것 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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