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4일 화요일

심어진 인식

최근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21대 총선거가 겹치면서 네티즌들의 정치적인 언급이 부쩍 늘어난 상태다.
직접적인 정치적 의견은 이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일까,
코로나-19를 이용해서 은근슬쩍 정치적인 분열을 강요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종 포털과 뉴스 기사 유튜브에서는 코로나-19를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그것이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자식이나 사실 경험이기 보다는,
누군가를 비웃고 조롱하거나, 누군가를 칭송하고 찬양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세상에는,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과 그걸 방해하려는 사람들만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단톡방에서는 지인들마저도 이런 흐름에 합류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낸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지만, 워낙에 오래된 친구들이다 보니 그런 정도는 괜찮다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대화에 감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그래봐야 뭐하겠나 싶어서 가만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엔 꽤나 짜증이 났는데, 이걸 보고 참아내는데 도움이 될 만한 몇가지 생각이 있었다.

  1. 내가 반론을 제기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걸 수용하고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이건 오랜 시간 함께 지내 본 경험이기도 하고, 나도 그랬었구나 하는 반성을 했기에 가능했다.
  2. 상대방이 그리 분노하고 화내는 것을 나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 만약 지금 다른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같은식으로 분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내는 그 감정은 이해하지만,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3. 그들을 향해 다시 분노를 쏟아내면, 나 또한 마찬가지가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4. 내가 상대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라는 생각 때문이다.
    :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경우인데, 똑같은 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가 더 미워보이거나 하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건.. 어쩌면...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5. 우리들이 무언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들이 대단한 이성적 판단이나 충분한 경험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저항할 수 없는 시기에 심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중에 마지막에 대해서 우연히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씨름 경기가 전국적으로 흥행을 했었다.
체급을 금강, 한라, 백두 등으로 나누었고, 추석같은 명절에 맞추어서 온가족이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백두급이 가장 큰 체급이었고, 천하장사 타이틀은 그야말로 강자 중의 강자를 가려내는 것이었다.
당시에 이준희라는 장사가 있었는데, 나의 모친은 이준희 선수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하셨다.
이런 전국 씨름대회 이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인데, 모친이 그리 말씀하시니 나는 당연히 이준희가 최고야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전국 씨름대회를 하면 천하장사는 항상 이만기였다.
대체 어찌된걸까? 이준희는 항상 결승에서 이만기에게 무릎을 꿇었고, 나중에는 결승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항상 이준희가 올라오는 경기만을 기대했고, 한동안은 역시 이준희야 하는 만족을 했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실망했고, 나중엔 만족보다 실망이 많아져갔다.
그러면 지고 난 후에는 항상 분노에 차서 무언가 이유를 갖다 대곤 했다.
상대방이 샅바 싸움으로 비열하게 이겼네, 저렇게 이긴 건 천하장사도 아니야 하면서...

어린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누구의 실력이나 체력이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얼마나 잘 알겠는가.
그저 모친의 말만 들었고, 그건 진리라 생각했으며, 그것과 빗나간 현실에서는 무언가 음모론과 같은 이유를 생각하거나 했다.
어쩌면 모친도 그런 음모론적 이야기를 해서 내가 배운 걸 수도 있으며, 뉴스 따위에서 승패의 분석을 하면 그 가운데에서 내 입맛에 맞는 원인만 쏙쏙 빼서 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모친에게 왜 이준희가 천하장사가 안되는지 묻지 않았던 것은 아직도 의문이다.


정치적인 견해와 편향성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위 TK라 불리는 지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사랑이 유다르니 그런 어른들의 얘기를 항상 듣고 자라난 어린이들은 이것이 진리이고 거스를 수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말을 듣게 되면 자동 반사처럼 분노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리라.
광주와 호남도 다르지는 않겠다.
특히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반정부 의식은 그 지역민들에게 트라우마 처럼 남아서 대대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대부분은 집안의 정치적 편향성이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왜.... 나는 왜 부모님과 정치적 의견을 달리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은 지역에 구애없이 반일과 혐일이 기본 장착되어 있는데, 이것을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한가지 경직된 사고(반일)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박정희와 5.18로부터 야기된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