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늘어가는 듯 하다.
정치인과 정치권에 대한 분노들,
층간 소음과 같은 이웃에 대한 분노들,
토론이 논쟁으로 번지고 급기야는 마음까지 상해서 생기는 분노,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무차별한 악성 댓글을 남기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
나이가 들면 그러려니 이해도 하고 좀 쉽게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아직은 그러질 못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이만 먹는다고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던 듯 하다.
고민하고 아파하고,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해 지혜로운 해결책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조금씩 천천히 나아질 뿐이고, 그나마도 끊임 없이 자신을 다스려야만 가능한게 아닐까?
친구들 가운데, 유난히 나와 툭탁거리고 삐꺽대는 친구가 있다.
정말 둘이서만은 만나고 싶지도 않고, 함께 모이는 친구들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고, 그러고도 만나면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나는 비슷한 면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친구의 행동이나 생각따위에서 나와 닮은 부분이 보일때면, 내가 종종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대했던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내게 그랬을지 모르는 일이고, 혹은 나의 공격적 반응때문에 악감정이 쌓여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 친구의 행동이나 생각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흥분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순간에는, 그 친구의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랬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그 행동이나 말은 결국 나의 행동이나 말과 어딘지 닮아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어두운 생각, 피하고 싶은 행동 따위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반쪽인 하이드씨였던 셈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친구에게서 나의 하이드씨를 보게되면 분노했던 것일지도...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서 나의 하이드씨 단면을 보고, 거기에 분노할 수록, 나 자신이 나의 하이드씨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지킬박사의 모습을 하고 점잖은 체 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하이드씨는 언제나 내 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반쪽을 더욱 더 증오하게 되었다.
결국은 지킬박사이면서 하이드씨인 나는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는 것이었고, 극심한 자기 혐오에 빠지거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해 자아를 분열시켜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분노와 증오가 나의 어두운 반쪽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마음속에 세워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경계처럼, 나는 세상을 둘로 갈라 놓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하이드씨를 미워하는 마음처럼 세상의 반을 미워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의 반을 증오하는 것이고, 그건 결국 자가 자신을 증오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문득 분노가 꿈틀댈 때, 이 점을 다시 상기하고, 하이드씨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2019년 12월 18일 수요일
재즈에 대한 자부심? 재즈부심?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게 아이러니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겪었던 일들과의 유사한 면이 있어서 끄적여 본다.
재즈 음악이 묘한 마력과 같은 면이 있지만, 결코 쉽지 않고(듣고 즐기고 감상하기에도 그렇다는 뜻), 썩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한번씩 생각나고, 젖어들고 싶기도 하곤 한다.
순전히 외부인으로써 재즈 뮤지션들을 보면, 타 쟝르에 비해 범접하기 어려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물씬 받곤 한다.
재즈야말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연주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여러 쟝르를 섭렵하고 끝내 안착하게 되는 궁극의 쟝르라는...식의
그런데도 세상의 음악 중에 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크지 않다.
전문가들의 영역과 일반 대중의 영역을 나눈다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딘지 자기만의 깊은 심연에 빠져 있는 듯이 보인달까?
꽤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왔는데, 이 직종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OS(운영체제)에서 kernel(커널)이라는 핵심부, 통신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에서는 프로토콜(통신규약)과 관련된 부분 등이 그러하다.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며, 어렵고, 전문적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의 인력은 구하기도 힘들고, 페이도 높은 편이다.(단, 실력이 따라야만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보면 전체 개발 인력 가운데, 이런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 혹은 그 미만에 그친다.
다수의 인력이 달려들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해봐야 그 성과가 높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혼란이 심해서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은, 똘똘한 소수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그나마도 이런 것을 담당하는 업체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된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의 마이크로 커널, 리눅스의 커널, 퀄컴의 CDMA/LTE 프로토콜 따위를 누가 개발하겠는가? 저 대기업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관여한다.
삼성이나 샤오미에서 안드로이드의 LTE 프로토콜을 직접 건드릴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런 직무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매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매우 위태로운 직무분야이기도 하다.
1%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들어둔 보험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1%의 위험은 곧잘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SCV와 같은 일꾼 소리를 듣는 직무 분야도 있다.
UI(User Interface)/UX(User Experience)/HCI(Human Computing Interface) 분야다.
스맛폰에서 보이는 거의 모든 화면은 누군가 구상하고 직접 그려넣은 것이다.
작동 시나리오를 짜고, 조건을 검사해서 어떤 그림을 보여줄 지, 어떤 소리를 내 줄지 따위를 만드는 작업이다.
전체적인 시나리오, 타 직무와의 소통과 연계, 아웃소싱, 상품의 기획 등등과 연관된 복잡한 업무도 있지만, 일단 이런것들을 제외하고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요구되기에 평범한 능력을 가진 다수의 엔지니어를 투입해야 하는 직무다.
개개인이 자신의 빛을 발휘하거나 독보적 역량을 뽑낼 기회는 적지만, 언제나 필요로 하는 곳은 많으며, 해야 할 일도 많다.
소프트웨어 개발직에서의 노가다라 불리는 그런...
하지만, 매우 천대받는 이런 직무 분야는 반대로 안정적이다.
이들은 필요로 하는 곳이 많으며, 많은 사람이 투입될수록 기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크기때문에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가 뚜렷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반되는 빛과 어둠을 가진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 와중에 최악은 존재한다.
실력은 없지만 핵심 분야만을 고집하는 엔지니어.
주어진 일도 다 못하면서 자꾸 다른 분야만 넘보는 노가다 엔지니어.
내가 경험했던, 겪었던 일들과의 유사한 면이 있어서 끄적여 본다.
재즈 음악이 묘한 마력과 같은 면이 있지만, 결코 쉽지 않고(듣고 즐기고 감상하기에도 그렇다는 뜻), 썩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한번씩 생각나고, 젖어들고 싶기도 하곤 한다.
순전히 외부인으로써 재즈 뮤지션들을 보면, 타 쟝르에 비해 범접하기 어려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물씬 받곤 한다.
재즈야말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연주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여러 쟝르를 섭렵하고 끝내 안착하게 되는 궁극의 쟝르라는...식의
그런데도 세상의 음악 중에 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크지 않다.
전문가들의 영역과 일반 대중의 영역을 나눈다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어딘지 자기만의 깊은 심연에 빠져 있는 듯이 보인달까?
꽤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왔는데, 이 직종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OS(운영체제)에서 kernel(커널)이라는 핵심부, 통신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에서는 프로토콜(통신규약)과 관련된 부분 등이 그러하다.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며, 어렵고, 전문적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의 인력은 구하기도 힘들고, 페이도 높은 편이다.(단, 실력이 따라야만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보면 전체 개발 인력 가운데, 이런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 혹은 그 미만에 그친다.
다수의 인력이 달려들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해봐야 그 성과가 높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혼란이 심해서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은, 똘똘한 소수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그나마도 이런 것을 담당하는 업체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된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의 마이크로 커널, 리눅스의 커널, 퀄컴의 CDMA/LTE 프로토콜 따위를 누가 개발하겠는가? 저 대기업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관여한다.
삼성이나 샤오미에서 안드로이드의 LTE 프로토콜을 직접 건드릴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런 직무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매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매우 위태로운 직무분야이기도 하다.
1%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들어둔 보험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1%의 위험은 곧잘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SCV와 같은 일꾼 소리를 듣는 직무 분야도 있다.
UI(User Interface)/UX(User Experience)/HCI(Human Computing Interface) 분야다.
스맛폰에서 보이는 거의 모든 화면은 누군가 구상하고 직접 그려넣은 것이다.
작동 시나리오를 짜고, 조건을 검사해서 어떤 그림을 보여줄 지, 어떤 소리를 내 줄지 따위를 만드는 작업이다.
전체적인 시나리오, 타 직무와의 소통과 연계, 아웃소싱, 상품의 기획 등등과 연관된 복잡한 업무도 있지만, 일단 이런것들을 제외하고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요구되기에 평범한 능력을 가진 다수의 엔지니어를 투입해야 하는 직무다.
개개인이 자신의 빛을 발휘하거나 독보적 역량을 뽑낼 기회는 적지만, 언제나 필요로 하는 곳은 많으며, 해야 할 일도 많다.
소프트웨어 개발직에서의 노가다라 불리는 그런...
하지만, 매우 천대받는 이런 직무 분야는 반대로 안정적이다.
이들은 필요로 하는 곳이 많으며, 많은 사람이 투입될수록 기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크기때문에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가 뚜렷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반되는 빛과 어둠을 가진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 와중에 최악은 존재한다.
실력은 없지만 핵심 분야만을 고집하는 엔지니어.
주어진 일도 다 못하면서 자꾸 다른 분야만 넘보는 노가다 엔지니어.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진보/좌파에 대한 절망
대한민국에서 좌파라는 호칭은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따지고보면 좌파와 우파는 양팔 저울의 한쪽씩을 담당하는, 균형의 일원임에도 말이다.)
나에게 '당신은 좌파에 속합니까 우파에 속합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좌파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음에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공교육을 받으며, 여러 매스미디어를 통해 얻은 나의 관념으로도, 좌파는 부정적인 단어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정확한 정의나 세세한 구분, 분류 따위는 알지 못하지만, 편의상 좌파 대신 진보라는 단어를 쓰도록 하겠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시작된 진보 진영의 대통력과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그 동안 내가 가졌던 희망, 기대가 많이 무너지고 퇴색되었다.
많은 서민들과 노동자들, 약자와 빈곤층, 사회의 맨 바닥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 최소한의 생계마저 위협을 받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나도 어설프게 그런 부류에 속할지는 모르겠으나, 엄격하게는 아니라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말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루어진 것이 있는지,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보면, 진보 대통령들은 많이 부족하고, 미숙하고, 어설프며, 불편했다.
부동산 정책
대북 정책
대미/대일 외교 정책
청년 일자리 및 경제 정책
아마 위의 분야들에 대해서 각각을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제대로 성과를 낸 것이 없으며, 지금까지는 그렇다 해도 앞으로 희망적인 부분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반박할 자료들을 얼마든지 내 보이겠지만 말이다.)
일부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며, 단시간에 성과를 보기 어려워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변수에도 삐걱대고 허둥대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과연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인지, 플랜B는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많은 논란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강력한 리더쉽으로 정책을 끝까지 수행해서 이뤄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끊임 없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나 빈약하고 너무 근시안적이라 정부의 정책, 아니 그 이전에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스럽다.
또한 진보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에는 유난히도 정치적 분쟁과 논란이 너무나 많고 소란스럽다.
어쩌면 진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로, 기존의 것을 허물거나 고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하니, 당연히 기성 세력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 소란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위의 문단에서처럼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당근과 채찍을 과감하게 사용해야만 이룰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현 상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즌2를 보는 듯 기시감이 많이 든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분쟁과 논란, 부동산의 폭등과 규제, 대미 대일 외교의 마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그것이 처음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똑같은 문제점들이 반복되는 현 시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을 인물이었을 텐데...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가는, 아무 손도 못쓰고 있는 진보 진영의 무력감을 나 또한 너무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라면, 대통령을 욕하고 비난하면 끝이었다.
그러면 설령 그게 그들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닐 지언정, 나의 스트레스는 많이 경감되었다.
그걸로도 위로가 되지 않으면 당시의 정부 여당을 욕하고, 보수 언론을 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걸로 안되었다.
그렇게 욕하고 비난한다고 내 스트레스가 줄어들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고 쓰리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적어도 진보 대통령들이 내세운 공약들은 정의롭고 바르며, 약자를 보호하고, 억울함이 없이 평등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
진보/좌파는 슬로건이고 구호이며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강력한 메시지를 최대한 짧고 간결한 문장에 담는 데 애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매혹되었다.
사실 그 문장들, 그 자체는 매우 정의롭고 또한 아릅답다.
그 안에 파라다이스가 있고 천국이 있고 지상낙원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매료되어 사람들이 모여 든다.
모여든 사람들의 힘으로 권력을 잡고 막상 자신들의 낙원을 만들려고 할 때,
여기 저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갈아 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
일부는 남기고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
낙원을 건설하는 데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
낙원을 건걸하는 데 모두가 동참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
천국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주장,
천국은 저러저러해야 한다는 주장,
하나의 슬로건이었지만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제 각각이었거나,
혹은 대충은 같았어도 세분에서는 달랐다.
대략적인 계획은 있었으나 실제 현실에서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보수와 우파는 기득권이며, 기존의 체계이다.
이미 그들의 속성으로 만들어져 있는 사회와 시스템에서는 그들의 계획이 잘 맞아 돌아간다.
하지만 진보와 좌파는 소수파이며, 그들은 기존의 시스템과 잘 맞지 않는, 기존의 체계에서는 비표준품인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맨 바닥부터 시작해야 할 경우도 있으며, 더디고,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꼼꼼한 계획과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건 진보의 문제나 좌파의 문제가 이니었던 것이다.
기득권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모든 새로운 세력들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수파이면서 개혁을 꿈꾼다면, 인재의 풀이 넉넉하지도 못할 터.
필수적으로 이런 개혁 세력의 리더는 월등한 안목과 재능을 가져야하며,
권력을 쥐었을 때, 개혁을 이끌어낼 인재를 다수파로부터 영입하는 능력(카리스마와 유연함)까지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리더는 역사에 나올 지도자 정도일 테고...
아쉽지만, 이제는 진보와 좌파에 대한 지지를 끝내야 할 듯 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름다운 구호와 슬로건에 속지 않을 것이다.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개혁은 매우 일부에 국한된 개혁일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욕시을 낸다 해도, 일부에 국한된 개혁이 큰 불씨가 될 수 있는 그런 개혁인 경우, 혹은 당장은 효과가 없으나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개혁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이제 더 이상은 허황된 미사여구와 감언이설에 속지 않고, 계산기와 삼각자로 측정해 보고나서 판단할 것이다.
=========================================================
또 조만간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벌써 여당과 야당의 선거전쟁은 시작되었다.
프레임 씌우기, 흠집내기, 세 부풀리기, 이합집산, 합종연횡....
내가 아무리 계산하고 측정하고 저울질을 꼼꼼이 한다해도, 내 선택은 결국 지역구의 후보 중 하나를 찍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들은 모두 미명이고 흐리멍텅하고 유야무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할 것이다.
그래야 넓은 지지를 받을 것이고, 그래야 당선이 될 테니까.
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겠다고 생각했어도, 양팔 저울이 한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진보/좌파가 속이 빈 강정처럼, 듣기 좋은 말로만 치장하고, 정작 이루어 내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보수/우파는 정의와 평등과 도덕과 양심 이런 가치를 아얘 포기해버린 듯이 행동하지 않는가?
눈앞의 이익과 실적만을 중시하여 장기적인 안목과 영구한 가치를 내버린 것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지 않을 것인가.
능력이 부족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는 학생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1등(합격)하겠습니다 하는 무서운 학생 중에 과연 어떤 학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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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좌파와 우파는 양팔 저울의 한쪽씩을 담당하는, 균형의 일원임에도 말이다.)
나에게 '당신은 좌파에 속합니까 우파에 속합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좌파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음에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공교육을 받으며, 여러 매스미디어를 통해 얻은 나의 관념으로도, 좌파는 부정적인 단어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정확한 정의나 세세한 구분, 분류 따위는 알지 못하지만, 편의상 좌파 대신 진보라는 단어를 쓰도록 하겠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시작된 진보 진영의 대통력과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그 동안 내가 가졌던 희망, 기대가 많이 무너지고 퇴색되었다.
많은 서민들과 노동자들, 약자와 빈곤층, 사회의 맨 바닥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 최소한의 생계마저 위협을 받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나도 어설프게 그런 부류에 속할지는 모르겠으나, 엄격하게는 아니라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말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루어진 것이 있는지,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보면, 진보 대통령들은 많이 부족하고, 미숙하고, 어설프며, 불편했다.
부동산 정책
대북 정책
대미/대일 외교 정책
청년 일자리 및 경제 정책
아마 위의 분야들에 대해서 각각을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제대로 성과를 낸 것이 없으며, 지금까지는 그렇다 해도 앞으로 희망적인 부분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반박할 자료들을 얼마든지 내 보이겠지만 말이다.)
일부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며, 단시간에 성과를 보기 어려워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변수에도 삐걱대고 허둥대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과연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인지, 플랜B는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많은 논란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강력한 리더쉽으로 정책을 끝까지 수행해서 이뤄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끊임 없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나 빈약하고 너무 근시안적이라 정부의 정책, 아니 그 이전에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스럽다.
또한 진보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에는 유난히도 정치적 분쟁과 논란이 너무나 많고 소란스럽다.
어쩌면 진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로, 기존의 것을 허물거나 고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하니, 당연히 기성 세력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 소란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위의 문단에서처럼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당근과 채찍을 과감하게 사용해야만 이룰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현 상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즌2를 보는 듯 기시감이 많이 든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분쟁과 논란, 부동산의 폭등과 규제, 대미 대일 외교의 마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그것이 처음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똑같은 문제점들이 반복되는 현 시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을 인물이었을 텐데...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가는, 아무 손도 못쓰고 있는 진보 진영의 무력감을 나 또한 너무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라면, 대통령을 욕하고 비난하면 끝이었다.
그러면 설령 그게 그들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닐 지언정, 나의 스트레스는 많이 경감되었다.
그걸로도 위로가 되지 않으면 당시의 정부 여당을 욕하고, 보수 언론을 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걸로 안되었다.
그렇게 욕하고 비난한다고 내 스트레스가 줄어들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고 쓰리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적어도 진보 대통령들이 내세운 공약들은 정의롭고 바르며, 약자를 보호하고, 억울함이 없이 평등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
진보/좌파는 슬로건이고 구호이며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강력한 메시지를 최대한 짧고 간결한 문장에 담는 데 애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매혹되었다.
사실 그 문장들, 그 자체는 매우 정의롭고 또한 아릅답다.
그 안에 파라다이스가 있고 천국이 있고 지상낙원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매료되어 사람들이 모여 든다.
모여든 사람들의 힘으로 권력을 잡고 막상 자신들의 낙원을 만들려고 할 때,
여기 저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갈아 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
일부는 남기고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
낙원을 건설하는 데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
낙원을 건걸하는 데 모두가 동참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
천국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주장,
천국은 저러저러해야 한다는 주장,
하나의 슬로건이었지만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제 각각이었거나,
혹은 대충은 같았어도 세분에서는 달랐다.
대략적인 계획은 있었으나 실제 현실에서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보수와 우파는 기득권이며, 기존의 체계이다.
이미 그들의 속성으로 만들어져 있는 사회와 시스템에서는 그들의 계획이 잘 맞아 돌아간다.
하지만 진보와 좌파는 소수파이며, 그들은 기존의 시스템과 잘 맞지 않는, 기존의 체계에서는 비표준품인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맨 바닥부터 시작해야 할 경우도 있으며, 더디고,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꼼꼼한 계획과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건 진보의 문제나 좌파의 문제가 이니었던 것이다.
기득권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모든 새로운 세력들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수파이면서 개혁을 꿈꾼다면, 인재의 풀이 넉넉하지도 못할 터.
필수적으로 이런 개혁 세력의 리더는 월등한 안목과 재능을 가져야하며,
권력을 쥐었을 때, 개혁을 이끌어낼 인재를 다수파로부터 영입하는 능력(카리스마와 유연함)까지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리더는 역사에 나올 지도자 정도일 테고...
아쉽지만, 이제는 진보와 좌파에 대한 지지를 끝내야 할 듯 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름다운 구호와 슬로건에 속지 않을 것이다.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개혁은 매우 일부에 국한된 개혁일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욕시을 낸다 해도, 일부에 국한된 개혁이 큰 불씨가 될 수 있는 그런 개혁인 경우, 혹은 당장은 효과가 없으나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개혁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이제 더 이상은 허황된 미사여구와 감언이설에 속지 않고, 계산기와 삼각자로 측정해 보고나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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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만간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벌써 여당과 야당의 선거전쟁은 시작되었다.
프레임 씌우기, 흠집내기, 세 부풀리기, 이합집산, 합종연횡....
내가 아무리 계산하고 측정하고 저울질을 꼼꼼이 한다해도, 내 선택은 결국 지역구의 후보 중 하나를 찍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들은 모두 미명이고 흐리멍텅하고 유야무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할 것이다.
그래야 넓은 지지를 받을 것이고, 그래야 당선이 될 테니까.
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겠다고 생각했어도, 양팔 저울이 한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진보/좌파가 속이 빈 강정처럼, 듣기 좋은 말로만 치장하고, 정작 이루어 내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보수/우파는 정의와 평등과 도덕과 양심 이런 가치를 아얘 포기해버린 듯이 행동하지 않는가?
눈앞의 이익과 실적만을 중시하여 장기적인 안목과 영구한 가치를 내버린 것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지 않을 것인가.
능력이 부족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는 학생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1등(합격)하겠습니다 하는 무서운 학생 중에 과연 어떤 학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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