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6일 월요일

뻔뻔함에 분노한 날, 이 분노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젯밤에 작은 누이와 통화 내용...

큰 누이와 둘째 누이가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 오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는 큰 누이의 집에서 기르는 슈나우저가 혼자 있게되어 작은 누이에게 좀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매형이 있으니 매형이 돌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매형이 개똥을 못치운다고 돌보지 못하겠다고 했단다.
그렇다고 개 호텔에 맡기자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고...

전화 통화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말도 안되고 염치고 없고 뻔뻔스럽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1년에 2번은 명절에 시골 간다고 개를 본가에 맡기는 바람에, 본가에 있는 부모님과 나, 누이와 원래 기르던 강아지들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장거리에 막히는 귀향 귀성길 생각하면 개를 맡겨 두는게 이해가 가지만, 참 매년 명절이 깝깝하다.

그런데 이번엔 더더욱 화가 나는게, 매형이 개똥을 못 치워서 맡긴다니....
매형이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누군 똥을 치울 줄 알아서 치운단 말인가?
적어도 가족간에 합의로 개를 키운다면, 가족 모두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


바로 그날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사촌 누이 한분이 근방에 살고 계시는데, 몇년 전에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전입 신고를 해 두셨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양도세를 좀 줄이시려 한 거 같았다.
누이가 처음 주민등록 전입 신고를 부탁했을 때, 사촌 지간이고, 일년에 제사로 2번 이상은 꼬박 꼬박 뵙게 되는 사이이고, 근방에 사시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곤란했다.
암튼 그렇게 주민등록만 전입 신고를 한 채로 몇년이 지나면서, 가끔 우편물이 오면 문자로 알려 드리고, 누이도 가끔 고맙다며 커피나 견과류 따위를 선물로 주시곤 했다.
그리고 며칠 전, 국민연금 공단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기초연금 수령 안내문인 듯 했다.
누이에게 알려 드리고 나서, 다음 날인가 누이가 전화를 하셨다.
기초연금 수령을 위해서는 내가 집을 무상으로 임대하고 있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해야 하니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 것인데.....일단 전화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몰염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떳떳하지 못한 일에 조카더러 동조하라고 부탁을 한다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부터 의문스러웠다.
내가 누이에게 그 만큼 도덕적이지 못한 이미지로 비춰진 것인지, 아니면 누이에게는 그런 정도의 위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얻게 될 이익과 잃게 될 손실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찜찜한 일에 내가 적극적으로 확인서에 서명까지 하면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거절했을 경우에 누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걱정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서 누이에게 거절을 했다.

다행히 누이는 선뜻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공짜로 얻어먹은 도넛과 커피, 마카다미아 한통을 받은게 머쓱하긴 했지만 끝내고 돌아오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날 어머님께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드렸고, 어머니는 잘 했다 하셨고, 작은 누이와 통화때에는 누이도 분개한 듯 했다.
그리고 이어진 통화의 내용이 큰누이네 개에 관한 얘기였다.

어딘지 비슷한 면을 가진 두개의 사건,
그리고 그것에 분개하는 작은 누이와 나....

큰누이가 본가에 개를 맡겨서 작은 누이와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에 대해서 분개하는 나,
나에게 정당하지 못한 일을 부탁해서 곤란하게 만든 사촌 누이에 대해 분개하는 작은 누이.

직접적인 피해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왜 우리는 분개했던 것일까?


나는 심지어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를 막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큰누이나 매형에게 전화를 걸어서 따지려고까지 생각할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가해보니, 큰누이가 할 말이 상상되었다...."네가 왜 그러니?"

그래....난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저 작은 누이와 강아지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누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내가 정의의 사도인가?
그래서 모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분개하는가?
아니다....최소한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다. 내가 저지르는 불의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화가 난 상황이, TV에서 정치인들의 뻔뻠스러움이나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분노의 원인이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슷한 분노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왜 이 정도밖에 안되는걸까,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우매한 국민들을 한심하게 생각했었지만, 그건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타인의 눈 속에 티는 귀신처럼 찾아내면서 내 눈속에 있는 댓돌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는데, 과연 누가 바뀌기를 바란단 말인가?
서로 비난하고 욕하고 헐 뜯는 속에선 아무 것도 나아질 수가 없었다.
그저 서로의 탓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바뀌면 주변의 몇몇은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비로소 세상이 나아지는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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