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이든, 그 나름의 가치는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큰 상을 수상했다면 무언가의 가치는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널리 읽히지 못한다면 그 이유도 있는 것이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는 바로 이런 책이다.
S.F., 환상문학, 사이버펑크 라는 분류에서는 나름의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책이지만, 문학 전체 혹은 소설이라는 분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8 Bit 개인용 컴퓨터의 게임으로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게임들에 비해 좀 색다른 구석이 많았고, 화려한 화면이나 컴퓨터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떨어졌고, 영어로 된 문장이 많이 나와 비영어권에서는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게임으로 기억한다.
얼마전 대선 후보로 나온 안철수 후보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사람이 윌리엄 깁슨이었고, 그 때에서야 비로소 그가 뉴로맨서의 저자라는 사실과 뉴로맨서라는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근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고 대여하여 읽게 되었다.
뉴로맨서는 현재의 해커와 비슷한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인 주인공 케이스를 중심으로 한 얘기이다. 과거의 실수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더 이상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인공장기와 불법 클리닉이 성행하는 일본의 지바시에서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모를 사람에 의해 치료를 받는 대신 AI를 해킹해 줄 것을 강요당한다. 명령대로 따르면서 그 진짜 배후를 찾던 케이스는 진짜 배후는 윈터뮤트라는 AI가 자신을 제약하는 또 다른 AI를 해킹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또 다른 AI는 뉴로맨서라는 AI로 윈터뮤트와 함께 설계된 상호 보완/억제 체제였던 것. 그리고 이들 AI는 강력한 거대기업인 테시어 애시풀이라는 장막에 가려진 기업의 한 여인인 마리 프랑스에 의해 계획되었던 것이다. 테시어 애시풀은 매우 폐쇄적인 속성을 가졌고 그들만의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영원한 삶을 꿈꾸었고 냉동인간을 통해 초대 회장이 기업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마리 프랑스는 이런 체계를 바꾸기 위해 AI를 설계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 자신의 일족들과 자신을 닮은 듯한 두 개의 AI, 은둔하면서 지키고 유지하려는 뉴로맨서와 끈임없이 확장하고 바꾸려는 윈터뮤트를 설계했던 것이다.
뉴로맨서는 많은 영화에 모티브를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은 매트릭스(Matrix)와 터미네이터(Terminator)에,
기계의 인격화라는 측면에서는 블레이드런너(Blade Runner)와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
인공지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들을 조정하는 부분에서는 이글아이(Eagle Eye)나 기프트(Gift)를 떠 올리게 된다.
그렇게 많은 영화에 모티브를 주었음에도 정작 자신이 영화화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이 가지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체, 제품, 시스템, 개념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령 매트릭스, 덱, 호소카와 오노센다이라는 시스템, 심스팀, 딕시라는 구조물, 중력우물, 자유계, 스트레이라이트라는 건축물 등등은 이 작품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부족해서 어떻게 이미지화 시켜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또한 그 점 때문에 처음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정리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많아서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다음의 문제점은, 결국 이 작품이 사이버펑크로만 성공한, 일반 문학 작품으로는 평가절하를 받는 요인일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많은 갈등과 위기와 마주하게 되면서 드는 의문은, 전지적인 능력을 지닌 듯한 AI이지만 등장 인물들이 꼭 그것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이다.
비록 케이스는 최초에 클리닉에서 독소를 만들어 두었기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고, 그 외의 인물들에게서는 그런 당위성마저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결국에 다다른 마지막 최고조에서는 두 개의 AI의 대립 상황, 지키려는 뉴로맨서와 깨뜨리려는 윈터뮤트의 대립이지만, 읽고 있는 독자로서는 누가 이기고 지든 별로 달라질 것도 없고 무언가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는 것도 아닌 상황이 된다. 결국 독자는 상황의 급박함이나 절박함을 전혀 공감할 수 없기에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런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모티브인, <인공지능의 자각>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되며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1984년 작품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획기적일 수 있는 많은 상상력의 산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단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