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일 목요일

웃으면서 고문하기

수년간, 아니 어쩌면 수십년을 딜레마로 여기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쉽사리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평균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교해 보면 저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나쁜축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아버지께서 저를 대하는 태도를 두고 보면, 제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는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아버지는 다정하고, 배려심 많고, 권위적이지 않고,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도 거의 없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전 뭔가 불편하고 꺼려지는 것이 있는건지 아버지와 친해지질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저를 딜레마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효(孝)라든가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온 세대로써,
내가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더구나 인자한 아버짐의 성품으로 인해 특별한 변명거리도 없는 상황이 더욱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한때는 삼강오륜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까닭은, 본래 부자간에 친근한 경우가 드물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냐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아마도 2003년 ~ 2009년에 이르는 기간 동엔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명절때마다 뵙던 사촌형님께서, 어느 해부턴가 결혼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더니, 형님이 근무하시는 연구소의 여직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권하시던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그 형님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었기에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셨다보다 생각합니다.

두번째 사건은, 직장에 다니던 저를 평일 낮에 어느 은행으로 불러내신 일.
은행에서 재테크에 대한 도움을 얻는다는 핑계였으나 결국은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 소개가 목적이었더군요.

세번째는 부모님과 함께 간 유럽여행.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아버지는 수시로 공공연하게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앞에서 저의 결혼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그때마다 저는 낯뜨겁고 민망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저한테 별 관심도 없으시던 먼 친척분이 계신데,
그 즈음에 집안일로 몇번의 연락이 오고간 후에 다짜고짜 저를 불러내서 중매를 서시겠다고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이건 추측입니다만 이것 또한 아버지의 부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버지는 정말 유교적인 전통처럼, 대를 잇지 못하면 조상님께 불효라는 생각을 가지시고 사명감처럼 생각을 하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것을 상대인 저에게 강권할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그것이 정말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싫은 것은 그걸 몹시도 싫어하는 저에게 권하실 때에도,
아버지께서는 제가 싫다는 걸 아시면서 권하실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치명적이지도 않고 크게 상처가 나지도 않는 성냥개비나 이쑤시개로 조금씩 꾼준히 찌르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렇게 찌르는 사람이 웃으면서 찌르는 겪이라고 할까요?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시키거나 훈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것과 웃으면서 하는 것,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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