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아이스커피? 더치커피?

수년전 부터, 인스턴트 커피는 마시지 않고 오직 원두 커피만을 마십니다.
인스턴트 커피에 필연적으로 첨가되는 설탕과 프림으로 인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고, 그로인해 텁텁한 뒷맛이 싫고, 무엇보다 카페인이 부족한거 같아 원두커피를 고집합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고 보니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는 것도 귀찮고, 뜨거운 커피도 점점 싫어집니다.

더치커피처럼 찬물에 내려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참을 수 있다해도 그 거창한 도구가 없으니....

더치 커피 기구


하지만 번쩍 드는 생각은, 그냥 찬물에 프렌치 프레스 방식으로 원두커피를 장시간 담궈두면 얼추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렌치 프레스를 이용한 커피 추출과정

그래서 찾아보니,
비슷한 시도를 하신 분이 계시더군요.
특히 찬물에서 장시간 우려내고 마지막에 거름종이로 걸러내는 팁이나,
걸러내고 냉장고에서 며칠간 숙성시키는 등의 팁은 도움이 많이 될 듯 합니다.
커피의 양이나 분쇄정도, 우려내는 시간 등에 대한 실험을 해서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도 재미 있겠네요.^^
http://blog.naver.com/kafka90/100132618346

P.S.
며칠간의 시도를 해 본 결과,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드리퍼로 마시던 때와 같은 정도의 커피분쇄와 물의 비율을 유지한채로,
냉수에 커피를 섞은 후 냉장실에서 12시간 정도 지나면, 나름대로 먹을만한 더치커피가 됩니다.
장점은 차가운 커피임에도 향이 은은하게 좋다는 것이고, 단점은 농도가 아무래도 떨어지니 진한 맛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고 난 후에 남은 원두커피를 다시 뜨거운 물에 걸러도 썩 나쁘지 않은 맛이 난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번개와 전하

전류의 흐름은 전하의 흐름과 반대 방향이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음전하이고, 음전하는 전압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지구는 자전에 의해서 형성된 자기장 때문인지,
반알렌대에 분포한 전자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지구의 상공에 존재하는 전자들이 일시에 지표로 이동하는 현상이 번개이다.


그렇다면, 지구 상공은 전압이 낮은 곳이고, 지구 표면은 전압이 높은 곳인가?

통상의 전자, 전기 제품들은 안정된 전압을 유지하기 위해서 ground라는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는 말 그대로 지표면을 0V(volt)로 가정하곤 한다.

하지만 지구의 번개 현상을 보면 지표는 낮은 전압의 기준이 아니라 높은 전압의 기준이 된다.

어쩌면 번개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도전이 실패하는 이유가 단지 번개의 높은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전위에 대한 이런 오해때문은 아닐까?

P.S.
그렇게 번개로 지표면에 도달한 전하들은?
항상 상공에서 지표면으로 전달될 뿐인 전하들, 그런 전하들이 다시 대기 혹은 상공으로 방출되지 않는다면 지표면에 모여 누적된 전하들은 대체 어디서 무슨일들을 하고 있는걸까?

P.S.2
지표면의 전위는 모두 같을까?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두지점의 전위차는 정말 0일까?
만약에 어느 정도만이라도 전위차가 존재하고, 대신 전류의 양이 대단히 크다면 이걸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무엇일까?

힘들거나 싫어하는 것을 견뎌내고 있는 상태인가?
아니, 이것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니
스트레스라 함은 힘들거나 싫어하는 것이 짓누르는 힘이 될 듯 하다.

힘들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가 강하니,
물리적인 힘에 의해 받게되는 신체적인 고통들이 여기에 속하게 될 듯 하다.
육체 노동에 따른 통증, 섭식 장애에 따른 고통, 수면 장애로 인한 무기력 등등.

싫어하는 것이라 함은 정신적인 의미가 강하니,
호불호에 따라, 취향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행위나 상태를 의미하는 듯 하다.

전자에 의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몸의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며,
현대의 많은 경우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통해 치유된다.

후자에 의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정신적인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며,
뚜렷한 치료 방법은 없다.
극심한 경우 정신병으로 발전하게 되며, 의료행위에 의한 치료효과도 상대적으로 낮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미연에 예방할 좋은 방법은 없는가?
앞서 정의 했듯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싫어하는 것"에 의해 받게 되는 것이라면,
"싫어하는 것"을 없애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
이게 가능할까? "싫어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싫어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두려운 것? 괴로운 것? 미워하는 것? 슬픈 것? 창피한 것?
.....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들을,
그냥 감정이라고 여기고 무시하려면,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되리라.
그렇다면 스트레스라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인간인 이상,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싫은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싫은 것"을 이겨낼 수 없다면 피하는 수 밖에 없다.


실제 인생에 있어서, 스트레스라 말하는 것은 "싫지만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피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2012년 7월 9일 월요일

사랑은 궁극의 가치인가?

전우주적인 최고의 가치, 신(神)의 본질은 '사랑'이라고들 한다.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구별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세상에서 흔히 보이는 '사랑'은 그 반대편에 '증오' 혹은 '미움'이 존재한다.
즉, 상대적인 감정이며, 비대칭적인 감정이고, 편향적인 감정이라는 의미이다.

'나'라는 인간을 하나의 폐쇄된 대상으로 놓았을 때,
무념무상, 무아일체, 중용, 평상심의 상태라면 치우침이 없는 완전한 원(圓) 혹은 구(球)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기에 하나의 특이점을 만들고, 비대칭을 만들며, 균형을 깨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대칭과 편향은 당연스럽게 대칭적인 증오라는 감정을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과 일본의 감정 싸움이 다시 불거지는 현실이다.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규탄과 왜곡,
독도 영유권에 대한 분쟁,
급기야 일본인은 한국의 위안부 소녀상 옆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말뚝을 박았고,
이에 한국인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글씨를 부착한 트럭을 몰고 주한일본대사관 정문으로 돌진을 했다.



위안부 소녀상 옆에 세운 말뚝

일본대사관을 향해 돌진한 트럭

트럭의 충돌로 밀려난 일본 대사관의 정문


이들 두명의 행위는 자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상대국에 대한 증오라는 감정을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사랑을 파괴적인 사랑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궁극의 가치로 삼는 사랑과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동물애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 연예인도 동물애호가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물 애호가들은 동물들을 사랑한다.
특히나 버림받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한없는 연민과 동정을 가지며 애정으로 보호하려 한다.
그렇다면 동물 애호가들은 애완동물을 유기하는 사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 심지어는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대할것인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학대하는 이들에 대한 증오는 커지지 않을까?
이것은 사랑이 만들어낸 증오가 아닌가?


과연, 사랑은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가, 버려야 하는 편향적 감정인가?

아니, 궁극적 가치라는 사랑과 이런 사랑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두가지 사랑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정당방위는 정당한가?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 옳은가?

정당방위라는 개념은 이것이 옳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존엄성 이전에,

나와 타인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비대칭적임을 의미한다.


하나의 생명체로써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는

옳고 그름 이전에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래가지고는,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영원한 평행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