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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시기와 질투

시기와 질투는 비슷해 보이는 데, 과연 무엇이 다를까?

우연히 읽은 인터넷의 정보에 이런 것이 있었다.

시기는 envy, 질투는 jealousy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구분을 하고 있었는데,
시기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질투는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이라고 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시기는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고, 질투는 '나'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다.


번역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들도 있다.
envy가 <시기>, jealousy는 <샘>으로 번역하고, 우리말의 질투는 시기와 샘을 다 아우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혹자는, 자주 사용되는 상황으로 구분한 경우도 있다.
질투는 주로 애정 - 특히 남녀간의 애정에 쓰이는 단어이고 시기는 그 이외의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나 자신을 객관화 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 가는데,
그것이 조금식 연습이 되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무엇이고,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굼금해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보거나 듣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잠깐의 소개(?)만을 접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호불호(好不好)를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상스러울만큼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형식의 조우(遭遇)에도 기분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을 느꼈다.
과연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를 고민하다보니, 그것이 잠재적인 시기와 질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사뭇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자신의 영역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가치(돈,명예,권력,권위)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보편적인' 시기나 질투를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너무 억지스러운 가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나를 질투심/시기심이/시샘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면 더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종종 느끼게 되는 그 불쾌한 기분, 불안한 기분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아직은 명확하게 내 감정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이 포스팅은 그 여정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에 관한 또 한가지 의문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일 듯한 이 시기와 질투가, 불교의 7정(七情) - 喜 怒 哀 樂 愛 惡 辱 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타인과 비교하기 / 비교당하기

대인관계의 피로함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떼어버릴 수 없는 관계들도 있습니다.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혈연관계입니다.
그리고 이 혈연관계의 연장선상에는 무수히 많은 친척들이 존재합니다.

이 친척들과의 관계는 좋다고 유지하고 싫다고 끊을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하거나 끈질기게 소식을 접하고 전해야 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친척간이라고 모두 사이가 좋지만은 않으며, 사이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섞여 있으면서 미묘한 역학 관계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종종 이런 친척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그 원인을 찾아보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 A가 많은 돈을 벌었다/A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A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
→ [ 이러한 A의 소식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지 않음에도 질투/시기를 하게 된다 ]
→ [ A가 비열한 방법을 썼다/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의심하거나 단점을 찾아 위안한다 ]
→ [ 잠시 나 자신을 기만할 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
→ [ A에 대한 소식이 반복되면 기분이 좋지 않고 화를 내게 되며 심지어 A를 미워한다 ]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심리적 배경에는 "비교"당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비교당할 거라는 두려움
어떤 가치를 획득한 타인을 질투하고 것은 타인과 자신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타인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함으로써 비교우위에 올라었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서 자신이 비교 열세에 처했다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가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경우, 또는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무한정의 가치인 경우에는 확실히 비교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라캉의 타자의 시선, 타자 의식, 타자의 욕망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작 이런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저 한가지 화제거리일 수도 있으며, 지속적인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듣는 사람은 화자(話者)가 나와 그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우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비교당하며 자라왔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닐까요?
비교당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질책을 받고 반성과 각성을 강제당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비교당하는 것 자체를 매우 불쾌하고 나쁜 것으로 느끼며, 회피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아도 크고 작은 흥망성쇠는 반복하며 운이 좋거나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은 숨기기 마련이고 성과는 뽐내고 싶어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나의 소식은 좋은 것 뿐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나를 질투하고 시기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누군가는 대놓고 평가절하를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의심할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면전에서라도 잘되었다 칭찬해주는 사람이나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이런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어떠할 것이며, 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게 될까요?
과연 누가 소인배이고 대인배인가요?
누가 심성이 맑고 선한 사람이며, 누가 옹졸하고 겁에 질려있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