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늙을 수록 두렵다.

혼란한 하루다.

1.
오전에 형수님이 제사를 예약했노라 알려 주셨다.
집안의 제사와 관련된 계좌를 통해 제사 비용의 절반을 이체해 드렸다.

그런데 계좌 이체를 하기 직전에 "등록되지 않은 단말기를 이용하여 이체를 시도했던... 보안카드..." 이런 섬찟한 안내 문구가 떴다.
일단은 이체를 한 후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확인 후에 알려 주겠다며 일단 통화 종료.
1시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여러 대화가 오갔지만, 정확한 원인 파악은 불가능.
약간 짜증이 났다. 공연히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 안내를 하고도, 그런 안내를 하게 된 경위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조심해야겠다며 통화 종료.


2.
추석 전에 주식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었다.
한번 크게 떨어뜨리고 일정한 구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약 3개월.
드디어 그 구간을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추석을 지난 후에는 그걸 확인해 주는 모습도 보여주었으니 과감히 진입.
그 주의 후반부터 조정이 보였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이라 생각했던 시장이 크게 무너졌다.
그것도 그저 일시적인 장중의 모습이 아니라, 장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눌러버리는 압도적인 힘.
대체 지난 주 초반까지의 강한 힘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아니 그 상승의 힘이 단지 눈속임이었단 말인가?
아쉽지만 손절...
병가지상사인 일이지만, 이럴 때의 절망감은 대체 뭘까?


3.
누이로부터 톡이 왔다.
조카의 생일이라 축하금 먼저 보냈단다.
문자로라도 축하해 주란다.
한동안 톡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조카라는 녀석들... 대체 뭘까?
내 생일도 기억 못하는 녀석들.... 내 생일에 축하한다고 문자라도 보냈던 게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심지어는 내가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에 답장도 안하던 녀석들... 언젠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으로 봐선 삼촌의 전화번호도 몰라서, 누가 보낸건지 몰라서 반말로 답장하던 조카들...
내가 왜 이런 조카들에게 생일 축하금을 보내야 하는 걸까?
이젠 조카들도 다 컸으니 그만 보내겠다고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혹시라도 조카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걸까?
그들이 나와 혈육이라는 증거의 끈을 돈으로 유지하고 있는 걸까?
하긴, 설, 추석 명절과 집안 큰 어른인 부모님 (녀석들에겐 조부모님)의 생신, 이런 것들에 같이 모이거나 하는 일을 제외하면 대체 뭘 공유하고 있는 걸까?
나만 불편한게 그 녀석들도 불편한거 아닐까?
내가 금전적인 여유만 있다면 이런 일로 이따위 고민은 하지 않았을거라는, 지금 이런 고민이 결국은 금전적인 쪼들림에 기인한거 아니겠냐는 스스로의 자책으로 고민을 마무리하고 송금했다.
하지만 이 고민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암울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4.
아버지로부터 톡이 왔다.
이번엔 동영상이다. 신의 한수라는 꽤나 치우친 보수주의자의 인터넷 방송 영상이었다.
아버지는 보수주의자다.
정치적인 편향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 또한 지나치게 단순화한 구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크게 보아 그렇다는 뜻이다.
예전에도 아버지와 한번 크게 틀어진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아버진 진보 성향의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메일을 우리 형제들에게 계속 보내셨다.
함부로 지우기도 그렇고, 보내 주신 글들이 내가 보기에는 많이 불편해서 많이 고민을 했다.
결국은 어느 날인가 이런 류의 메일은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메일을 드렸다.
하지만 아버진 기계 같았다.
기계적으로 받아 보신 메일 가운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메일을 기계적으로 우리 형제들에게 보내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 메일은 읽지도 않으신 모양이었다.(이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결국은 침묵으로 분노를 대신 표출했고, 중재자인 누이를 사이에 두고 메일 전송은 중지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카톡에 가입하자, 아버진 다시 같은 부류의 정치적인 글들을 보내기 시작하셨다. 달라진 점이라면, 가족 단톡방이 아니라, 나에게만 보내셨다는 것.
지난 번의 메일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잊어버리신걸까?
꽤나 속으로 부글거렸다.
이런 아버지의 행동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내가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 걸까?
굉장히 비겁하거나 공격적인 대응도 상상했더랬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마지막 선은 희미하지만 남아 있었나보다.
결국 오늘 받은 톡의 동영상의 인트로에 신의 한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답장을 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것 같아 매우 불편하니 그만 보내 달라고...
아버지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변명과 함께 나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런데...내가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은...
아버지에게 이 부탁을 하는 톡을 보내는 내내 손가락이 덜덜덜 떨렸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난 여전히 아버지의 제어를 받고 있었고, 내가 보내려는 톡은 이 제어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는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구시대적인 유교의 사상으로는 불효에 해당하는 일이고 반란이며 패륜이라는 무의식이 작용한걸까?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유교의 노예인걸까? 아마 맞겠지...)


5.
지난 추석에 겪은 생생한 한 장면...(이미 수 많은 명절에 되풀이 되었지만)
잘 차려진 추석 상에는 전과 잡채 갈비가 올라와 있다.
어버진 양념된 갈비를 손으로 잡으시는걸 아주 꺼려하신다.
게다가 갈비에 붙어 있는 기름이나 질긴 힘줄을 싫어 하신다.
결국은 누군가가 갈빗대에서 살을 발라낸 후에, 곳곳에 붙어 있는 기름과 힘줄을 제거 하야만 한다. 그게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니 각자 알아서 해야겠지만...
아버진 손을 대기 싫으시니 식당에서 보는 집게와 가위를 달라고 하시고, 그나마도 잘 못하셔서 갈비와의 씨름이 벌어지고... 옆에서 보던 어머니는 답답해 답답해를 연발하시다가 얼추 발라서 아버지께 드리고는 적당히 좀 드시라 타박한다.

그 광경은 나 또한 매우 답답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한 장면인데... 그게 몇년을 반복하고 있다.
대체 왜 반복하면서 그런 음식을 그런 식으로 내는지, 음식을 효율적으로 자신의 기호에 맞게 요령껏 섭취하지 못하는지, 옆에서 답답하다면서도 계속 붙어서 잔소리를 하는지, 왜 그런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지...
어쩌면 이 와중에 일어난 어머니의 답답함과 짜증에 동조해서 나도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어머니의 한마디를 거들거나 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 가운데서 마찰을 완화하기 위해서 중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런게 각자의 성격인거고, 그 나름의 한계선(경계선)을 지키면서 일어나고 있어서 큰 충돌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난 이게 그렇게 불편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게 아주 많이 불편하다는 걸...
아마도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나는 그런 식사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게 맞다.
그리고... 아마도 아주 어려서부터 그렇게 복작대고 지지고 볶고 하는 식탁에 익숙하게 자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참아내도록 길러졌나보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건 내게 스트레스였고, 참을만 한 수준은 아니었지 싶다.
이제 식사 자리에서 이런 상황이 나는 매우 불편하고 싫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평화롭게 식사를 하자고 한들 이제와 고쳐질리 만무하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상황이 매우 불편하니 나는 나중에 따로 식사를 하겠다고 피하는 방법 뿐인 것 같다.


6.
늙었나보다.
이렇게 두려운게 많다.
알면 알수록 두렵다.
차라리 모르면 용감할 수 있을텐데...이제는 세상 만사의 돌아가는 행태를 대충 이해하고 있으니, 무언가를 보면 그 뒤에 있을 일들까지 떠 오르면서 두려움들이 쌓인다.

그러니 젊은 시절이 용감한거다.
무식하니 용감한거 맞다.

가끔 공원을 산책하다 애완견을 끌고 나온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내가 개를 좋아해서 많이 봐주고 소리 내거나 친한척을 해주면 금새 반가워하는 개들이 있다.
10중 8,9는 어린 개다. 나이가 많아봐야 5살 이하인...하룻 강아지인 셈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이라면 다 반갑고 그런건 다 어린 강아지들 뿐이다.
그런 개들도 나이가 더 들면 사람들을 경계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반가워해도 특별히 자기에게 득 될거 없는걸 아는 거다.

늙은 나는 두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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