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3일 화요일

머리 깎기와 소원 빌기

내 머리카락이 유별나다는 건 꽤나 어렸을 때 부터 알게 된 듯 하다.

변두리 동네의 허름한 이발소가 전부였던 시절, 자격증이 있었는지 모를 이발사 아저씨는 내 가 아는 유일한 이발사였다.
아버지와 일요일에 함께 가곤 했으니, 나에게 무슨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깎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건 머리를 깎고 난 직후에 더 심했다.

머리카락은 직모에 굵기까지 해서, 짧게 자르면 사방으로 뻗치기 일쑤였고, 그걸 잠재우려고 손에 물을 묻혀서 얼마나 눌러 댔던지...

머리카락이 이렇게 억새풀처럼 뻣뻣하다보니, 머리를 깎는 것이 고통이었고, 점점 머리 깎기를 멀리하고, 그러다보니 길어진 머리를 보고는 주위 어른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꼰대질을 하기도 했다. (남의 사정은 모르고 하는 말들... 어쩌다 기회가 되어 설명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다시 꼰대질ㅠㅠ)
악순환이었다.

스프레이, 무스, 젤 따위도 많이 써 봤고, 나이가 더 들면서 머리카락도 성질 좀 죽었는지 예전만큼은 아닌데다, 나도 이젠 다른 사람 신경을 덜 쓰니 좀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사실 내 머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불과 몇년 전의 일이었다.

머리를 깎는 것에 트라우마가 남아 있지만, 이젠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나와 내 머리, 그리고 머리를 깎는 분들을 관찰해 보니 거기에 혼재 되어 있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 깎는 분들은 아주 빠른 시간(10분 ~ 15분)에 한 사람의 머리를 깎고 다음 손님을 받기도 한다. 아주 눈썰미가 있거나 자주 본 사람이 아니라면 손님을 기억하고, 그 손님의 성향을 기억하고, 머리 깎는 습관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새로운 곳에서 머리를 깎게 된다면 완전한 첫 대면이니...

세상에 자신의 머리에 대해 자기 자신만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눈에서 가장 먼 곳은 다름 아닌 뒤통수다.
내가 내 정수리 부근의 머리를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내 뒤통수를 제대로 보는게 과연 가능이나 할런지...
결국은 수많은 머리 깎기를 통해서, 바쁜 와중에에도 아주 간혹 내 머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억하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는 내 머리가, 직모이고 뻣뻣하고, 가르마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같은 길이로 잘랐을 경우에 왼쪽 머리가 잘 뜨며, 머리 숯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젠, 아주 당당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분에게 머리를 깎게 되면, 최대한 설명을 한다.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깍지만, 왼쪽이 잘 뜨니 조심해야 하고, 머리 숯이 많으니 속머리도 좀 솎아 주어야 한다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를 맞이하면서 소원을 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소원을 어떻게 빌었던가?
키 크게 해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등등.

만약에, 정말로 신이 존재해서 이런 소원을 듣고 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소원은 정말 들어 주기가 난감한 소원이 아닐까?
키를 얼마나 크게 해 줘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커야 하는지, 얼굴만 길게 해도 되는지...
공부는 잘 해도 시험은 못봐도 되는 건지, 시험은 몇등을 해야 잘 하는 건지, 어떤 과목을 잘 해야 하는 건지...
마음 부자는 어떤지, 땅부자인지, 빚부자는 아닌지, 부자의 기준은 또 뭔지...

내가 정말 신이라면 이런 소원들이 얼마나 난감할지 알게 될 것이며,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런 식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정말로 절실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소원도 점점 구체화 되어야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야 전지 전능한 신이라도 내가 딱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신이 없다 하더라도, 나의 소원을 구체화 하는 과정이 그 소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좋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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