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나는 과연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되었고, 선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게 지난 5월의 일이니 3개월쯤 전의 일이다.

과거의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지고 야당이 되었으며, 더불어 민주당이 여당이 되었다.

새 정부가 부르짖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최근까지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적페청산'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의 직접적인 개입이야 없겠지만, 각 정부 기관들과 기업, 단체들은 소위 '알아서 기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 최순실, 이재용 등의 뇌물 수수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며, 새로이 비리가 드러나 고소가 되는 사례도 적잖다.
대기업들이 갑질이나, 짬짜미에 대한 공정위의 칼날도 매섭고, 이에 대한 법원이 판결도 예전과는 온도차가 많이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청와대와 여당이 날마다 들고 나와서 청산을 주장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면서, 청산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많아지고, 일찌감치 국외로 도피한 사례들도 보도가 되곤 했다.

어쩌면 이런 청산이라는 것 자체가 구성원 대다수가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어차피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없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판단의 주체에 따라 선악의 기준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원하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게 대의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이다.
(다수의 횡포, 소수의 억울함, 다수의 무심함과 소수의 절박함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이건 너무 긴 이야기가 되겠으니 여기에선 피하기로 하자.)


며칠전 광복절을 맞아 인터넷 상에서는 한일합방, 일제 침략, 항일 운동, 독립 투사,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강제 징용 노동자 등에 대한 기사와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일부는 들었던 얘기들도 있고, 일부는 새로운 얘기들도 있고...
청와대의 적폐청산이라는 기치와 맞아 떨어지게 친일파 청산에 대한 주장도 다시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과연 저 친일파라는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 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친일파에 대한 반민족적인 행위들을 듣고,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부글부글 끓어 오르게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는 더 이상의 논리적인 사고를 차단해버리고 그저 증오심만 드러내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예는 어떨까?
조선 말기, 구한말기에 총명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관직에 등용되어 맡은 바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했고, 출세의 길을 탐하지 않는 그런 관료였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한반도는 세계의 열강들이 모여들어 부산하고 어수선하다.
왕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청정과 섭정으로 어지럽다.
때로는 청나라가, 러시아가, 일본이 세력을 키우며 나라를 좌지 우지한다.
하지만 이 관료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 한, 누가 권력을 잡든, 누가 지시를 하던 묵묵히 그에 따라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이런 사람이 후세에 친일파라고 낙인이 찍힌다면, 그는 과연 어떤 변명을 하고 싶을까?

일본제국의 앞잡이로 충성하며 득세하고 치부한 몇몇의 친일파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보다는 약한 수준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판단이 어려워진다.
한편으로는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군을 지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친일을 했던 증거도 나온다.
심지어는 민족대표 가운데 가장 철저했다는 만해 한용운 선생은 조선의 불교를 유신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승려의 혼인을 허가해 달라는 탄원을 조선 총독부에 보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친일을 했다고 의심 받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나라의 일을 맡을 만한 능력이 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단한 민족적 사명 이전에 자연인, 생활인이었고, 한 가장의 가장이었을 것이다. 대단히 반민족적인 일이라고 (그 당시에도) 느낄만한 일을 해야했던 사람은 그 중에서도 일부였을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는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다거나, 그 지시를 누가 내렸든 여전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느낄만 하지 않았을까.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은 박 전 대통령의 명령에 대해 얼마나 의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박 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업무 지시를 할 때에는 나름의 명분과 타당성을 제시하고 난 후에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그런 프레임이 구축된다면, 더욱이 자신의 상사와 공동 운명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대체 얼마만큼 선악에 대해 숙고할 여유가 있는걸까?


가까운 친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직에서 일을 하다보면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 맞다고.
왜냐하면 상사들이 그 직책에 있는 것은 그들이 결과에 대해 책임 질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상당히 옳은 얘기라 생각했다.


최근의 대기업 회장의 갑질, 군대 공관병에 대한 갑질,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성희롱,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법 등을 보면 그 판단 기준이 불과 십수년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방송에서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보면, 내가 과거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이 요즘이라면 신상이 밝혀져서 낙인이 찍혀야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언제나 바른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도 지탄받지 않을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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