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 주체(主體)
이전 포스팅에서의 고민은 좀처럼 진전이 없다.
그러나 문득 내 인생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나를 규정했던 생각 혹은 행동 양식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외부적인 힘이나 규율들이 나로 하여금 강제로 변화하도록 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이에 대해서 꽤나 거부감을 가졌고 의식적으로 반항하려 했던 듯 하다.
아직까지도 이런 성향은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는데, 내가 정말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걸까?
먼저 드는 기억은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맨 처음 취업을 했던 당시였다.
대기업이었던 그곳에서의 첫 시작은 기업 연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일종의 집합 교육이었다.
세부 부서의 업무와 무관하게 모든 직원들이 알아야 하는 그 기업의 행동양식과 규율, 문화, 조직의 속성에 대한 공통적인 <기업 상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단히 많은 신입 사원들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거대한 조직의 문화와 조직의 상식, 규율, 금기 등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선 주입식 교육이 필연적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절에 가서 살려면 절의 법도를 배워야지, 절의 법도를 나에게 맞게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과정은 신입사원 개개인의 생각과 몸에 밴 습관 등도 바꾸려했던 것이기에, 비록 명분이 그럴듯 했음에도, 꽤 거부감이 들었으며, 일부분에 대해서는 나 자신의 양식이나 사상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의식의 표면에만 머물도록 했던 경우도 있었다.
과연 당시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사상이나 양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비슷한 예는 이후의 직장 생활에서 다시 드러나곤 했다.
조직 생활을 해야하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접촉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럴때마다 느꼈던 그 불편한 느낌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게 내 자신의 고유한 무엇인가가 파괴된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럼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나의 아이덴티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틀림없이 외부의 여러가지 힘들이 나를 끊임없이 이렇게 이지러뜨리고 흔들고 누르고 당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가 거부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그대로 수용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지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을 대단한 보물인것처럼 지키려고 애썼던 것은 아닐까?
아무런 방어막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무엇이던 맨처음 영향을 준 것을 그대로 수용하지만, 일단 영향을 받고 나면 아주 단단한 방어막이 형성되는 그런 것?
혹은, 타고난 성격이나 타고난 체질 등으로 인해 어떤 행동 혹은 습관이 일정한 규제를 받는 경우?
가령,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이게 정말 선천적인건지는 모르겠다)에게 반드시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은 매우 심각한 불편을 초래할 것이고, 당연히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다.
후자와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진아(眞我)라는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지켜야만 할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 따위는 없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현재의 내 모습은 현재에만 유효한 것이며, 과거와 미래의 내 모습은 아주 유연하다.
한편으로는 나의 참모습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나를 가장 심각하게 구속하고 제약하는 요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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