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포스팅했던 글에서 "나"라는 것이 인식인지 의식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던 적이 있다. (http://re-unify.blogspot.kr/2013/02/blog-post.html)
그 동안에도 여러가지 비슷한 생각의 거치다보니, 다분히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비교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본질적인 "나"가 존재하는 것이고, 육체를 넘어서는 "나"는 생을 넘어서까지도 변하지 않기에,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진아(眞我, 아트만)와 윤회 사상을 가르치는 힌두교적인 관점에 가깝다.
반면에 무상무아(無常無我)를 설파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자면, "나"라는 것은 한낱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에도 윤회 사상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이건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교의 사상과는 전혀 별개라 생각한다. 자세히 공부하고자 하면 이에 대한 진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여러가지 경우에 대입을 해 보았더니,지금까지는 진아(眞我) 보다는 무아(無我)가 더 타당하지 않은가 싶다.
이렇게 생각이 든다면,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나"를 버릴 것인가?
**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민하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의 사유나 논리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따라서 어떤 명쾌한 결론을 구하지 말라.
"나"를 버리기 위해서는 "나"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과정을 유추하고, 그 과정을 역으로 밟아가던가, 그 과정에서 세워 둔 하나 하나의 벽돌(?)들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허물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는 내 삶의 과거로의 회귀, 그것도 모든 나의 의식의 벽돌에 해당하는 과정으로의 회귀가 필요하다.
심지어는 표면의 의식 뿐이 아닌 무의식의 벽돌까지 찾아낼 회귀가 필요하기에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목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첫발은 언제나 단순하다.
가장 최근의 의식의 벽돌 '하나'만이라도 찾아내면 된다.
아마도 오래된 의식의 벽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며, 중간에 빠지는 벽돌이 무수히 많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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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이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들이 "나"라는 의식을 만들었던 이유가 타인과 구별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타인과 구별되지 않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혹은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들 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 해서 거리를 두기 위해서 구별을 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라는 유일함이 사라지는 두려움, 혹은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면 우리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나"라는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나"를 만들었으며, "나"로부터 벗어난 자야말로 진정 용기있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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