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설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본가엘 다녀왔다.
나야 남자이고 미혼이니 딱히 해야 할 큰 일도 없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속앓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잡일 돕고 설거지 정도 간간이 하면 나머진 그냥 뒹굴뒹굴....
물론 사람이 여럿 모이다 보니 부대끼기 마련이고,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달라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마지막 날의 점심 식사 때 였나보다.
어머니는 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운동 교실을 정기적으로 다니시는데, 그 곳 복지관의 한심한 노인들 얘기를 가끔 하신다.
이번에는 복지관의 식당에서의 일.
대다수의 노인들은 그곳에서 무료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어머니는 자격이 안되시니 유료)
그런데 툭하면 반찬 투정을 하는 노인들이 종종 있으며 그런 분들은 거의 다가 무료로 식사를 하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무료로 식사를 하면서도 투정을 한다.
게다가 밥과 반찬은 왜 그리 많이 퍼 오는지, 그걸 또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서 버린다.>
잠깐 생각해보니, 그분들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바였다.
형편이 어려워 무료 급식을 받을 자격이 되신 분들이니 식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복지관에서 주는 대로 드셔야 하고,
매일 드시다 보니 조금만 맛이 달라져도 금방 알아차리시는 게 아닐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먹어야 하는 곳의 음식이기에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의무감(?)도 들었을지 모른다.
잠시 후에, 어머니께서, 당신은 고추가 소화가 되질 않아서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고추가 나오면 그걸 골라낸다고 말씀을 하셨다.
정도의 차이도 있고, 통상적인 기준으로도 좋고 나쁨의 차이가 있으며, 특별한 개인적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어머니의 행동도 이상하게 보일것이며 누군가가 뒷담화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참을걸 그랬나?
그 말이 불쑥 나와 버렸다.
엄마, 누군가는 지금 엄마처럼 집에와서, 복지관에 이런 노인네도 있더라 하며 흉보지 않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드시던 만두 접시를 들고 거실로 나가서 드셨다.
아니 틀림 없이 바로 나가신 건 아니였고, 언짢은 표정도 아니셨다.
그저 내 생각으로만 어머니께서 화가 나셨던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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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입장의 차이에 대해서,
나에겐 보이지 않고 남에게만 보이는 나의 허물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이 글을 쓴건 아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사건을 곱씹고 되돌아 보면서,
문득 내가 궁금해 했던 나의 모습, 어머니의 모습,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혹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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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최근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거지만, 참 순한 분이시다.
악의는 거의 없으시고, 순진하시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때문에 누이는 아버지를 팔랑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고, 지금까지 큰 사기를 당하지 않으신게 용하다고 할 정도.
나는 아버지와는 상반되게, 상당히 계산적인 면, 사물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 약간 삐딱한 면이 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스마트폰 강의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곳에서 들었다며 수맥 어플을 받았다며 자랑을 하시는 거였다.
몇번 사용을 해 보고 좀 생각을 해 보니 이건 말이 안되는 사기꾼의 장난으로 보였다.
더구나 그런 허접한 어플을 유료로 구매하셨다니....
대뜸 아버지께 사기꾼한테 속으신거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당황하셨던 모양이다.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고 비난을 하셨는데, 나는 격하게 반응을 했더랬다.
이유는...'부정적'이라는 단어....이건 내가 싫어하는 나의 성격가운데 하나였으며, 나에게 지속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했던거였다.
나는 왜 이리도 부정적인가?
그 원인이 무엇일까?
선천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것일까?
아버지는 만사에 긍정적이시기에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내게 '부정적' 성향의 영향을 끼쳤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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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마도 국민학교 입학 즈음이 아닌가 싶은데, 난 어머니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린 우리 남매들의 사진을 자주 찍으시곤 했는데, 나는 사진 속의 나도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턱이나 치아나 혀에 문제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입을 헤 벌리곤 했다.
아버지는 그러다 넘어지면 혀를 깨물고 혀를 깨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마다, 얘야 이거 봐라 하시곤 내가 입벌린 모습을 흉내를 내시면서, 이게 얼마나 보기 싫으냐고 핀잔을 주셨다.
그 모습 때문에 어머니가 못생겼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흉내내는 모습은 다분히 과장 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모습은 정말 끔찍하게도 싫었다.
사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경각심을 가져서 입을 다무는 습관을 가졌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어서, 그 흉내내는 모습이 더더욱 싫어서 입을 다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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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그 식사 중에 어머니께서 복지관이 노인네 흉을 보는 모습은 흡사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흉내내며 잔소리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타인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대개 타인의 단점을 보고 그것을 흉보거나 비판을 해 왔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그 싫은 모습을 그대로 유전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싫으면서도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 또한 어머니의 단점을 들춰내고 그걸 비난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싫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또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었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들 - 타인의 시선에 대한, 비난에 대한, 실수에 대한 두려움들 -과 소심함의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단점을 찾아내려는 시선들을 피해야하고, 나를 비난하기 위해 내가 실수하기 만을 기다리는 시선들을 차단하려고 애썼나 보다.
하지만, 정작 타인의 단점을 찾아내기 위해 가장 애쓰는 사람은 나였고, 타인의 실수나 단점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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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부모라는 존재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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