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세상을 보면 행복해 보이는 악인이 너무도 많으며, 불행해 보이는 선인이 도 너무나 많다.
어째서 세상은 내 믿음과 이리도 다른 것일까?
과연 행복과 선은 관련이 있기나 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선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믿음은 어린 시절의 동화책이나 어른, 스승들의 은근한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동화책에 자주 등장하는 얘기들은, 좀 모자르고 어수룩해도 마음이 착해서 선행을 하는 사람은 결국에 복을 받게 된다는 식의 권선징악적인 얘기들이 많았다.
아마도 어른들과 스승들의 이야기도 딱히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린 시절의 동화책과 어른들은 선과 행복을 함께 엮었을까?
그럴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당시에도 세상에선 선한 것과 행복이 여간해서 함께 어울리지 못했기에 그걸 바라는 열망에서 그랬던 것일까?
얼마전, 아버지께선 내게 한편의 동영상을 권하셨다.
모대학 교수의 인문학 강의 일부분 이었는데, 그 일부의 소제목은 '행복한 사람을 곁에 두라'는 정도였던 것 같다.
동영상을 보면서 언젠가 회사 화장실에서 보았던 격언이 기억났다.
불행한 사람을 멀리하고, 행복한 사람을 가까이 하라. 불행은 전염병과 같아서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너마저 불행의 구덩이로 끌어들일 것이다.....라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복한 사람 근처에 있으면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것이나, 불행한 사람 근처에 있으면 자신도 불행해 진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어떤 학자가 조사했다는 통계였다.
일정한 수 이상의 집단을 조사하고, 그 구성원의 행복 여부와 그들이 맺고 있는 인간 관계를 그려보니, 행복한 사람간의 관계와 불행한 사람간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구별된다는 것이었다.
이쯤 듣고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행복은 무엇이길래 설문조사 한 문항으로 행복/불행을 단정할 만큼 명백하게 나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들이 답한 행복/불행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불행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들과 과연 일치할 것인가?
너무도 추상적인 혹은 자의적이며 주관적인 "행복"을 수량화된 통계로 이끌어냈다는 것에 대해, 그 동영상에 대한 신뢰도는 한낱 장터의 약장수소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락해버렸다.
이 포스팅의 제목이었던, "행복은 선과 일치하는가?"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행복'이 과연 무엇이길래, 또한 '선'이 무엇이길래 그것의 연관성을 찾고있었던 걸까?
'행복'이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될 것이다.
'행복'이 마음의 평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행복'이 주위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고, 자주 왕래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행복'의 의미는 언제나 달라질 수 있으며, 그 부여된 의미에 따라 '행복'해 지는 방법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행복'해 지기 위한 모든 방법들이 바로 '선(善)'한 행동이 아닐까?
즉,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건 언제나 (나에게는) '선'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지, 내게 '선'한 행위가 타인에게 '악'한 행위인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조절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애초에 이 의문을 가지고 있던 내 머리속에는 모순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며 자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기준이 어떤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기저에 나를 배제하고 타인을 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선'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행했던 행위들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타인의 승인을 얻어야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고, 결국 '선'의 기준은 주관적일 수 없는 한계를 지녔던 것이다.
'행복'의 기준은 내가 정하지만, '선'의 기준은 타인이 정하는데, 어떻게 행복과 선이 일치할 수 있겠는가?
이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선'에 대한 의미를 바꾸어서 <나를 배제하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나를 먼저 위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언제나 행복과 선은 당연히 일치하게 된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바로 선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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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슷한 주제로 고민한 사람들이 있던데, 시간이 날 때 제대로 읽어 봐야겠다.
http://peterlevine.ws/?p=9815
참고로 검색한 키워드는 happiness and goodnes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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