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지내는 친구 C와 L이 만난 자리에서의 이야기다.
특히 C와는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서인지 많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종교나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관심이 일치하는 바도 그렇고 방향이 비슷하기도 해서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살짝 취기가 올라서, C가 약간 수다스러워지며 꺼낸 주제가, 40대 중반을 지나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탐닉이 우려스럽다는 것이었다.
이제 중고등학생인 자녀들은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것에 반해서 자신이 너무 말초적인 감각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주제로 대화가 오간 뒤에 C가 다시 꺼내든 주제는, 자신에게 미적인 감각이 부족하여 자신의 스타일을 가꾸는 것에 참 어색하고 서투르다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자신이 입는 옷들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지금은 와이프가 골라주는 것을 그대로 입는다는 것이었으며, 유심히 살펴보면 멋을 부리지 않은 듯 하지만, 참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던 나는, C에게 질문을 했다.
앞서 음식에 대한 탐닉의 절제를 얘기했던 것과, 이제 외모에 대한 추구를 얘기하는 것이 서로 양립하는 것 아니냐고.
사실은 그 두개의 주제를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C의 의견이 일견 모순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달리보면 전혀 다른 주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양립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쉽게는 음식에 대한 얘기와 의복에 대한 얘기로 전혀 다를 수 있다.
혹은 음식에 탐닉하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외모에 대한 것은 타인에게 비춰지는 것을 의식한, 좀 더 고차원적인(?) 욕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전혀 다른 주제에 대한 얘기로 받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넓게 보면,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생존과 관련된 주제로도 묶을 수 있으며, 물질과 정신으로 나눌 때 물질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내가 C와 나누던 관심의 분야가 주로 세속적인 것을 가벼이 보고, 탈속을 추구했기에 그러했다.)
사실 C가 음식에 대한 탐닉을 경계해야 겠다고 할 때에만 해도, 그가 감각적인 것을 경계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해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뒤이어 외모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날개를 달고 인간계를 떠나서 올라가던 그가, 바로 추락해서 저잣거리를 배회하는 듯한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결국은 그가 영적인 것, 성(聖)적인 것을 추구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는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되자 명예욕, 권력욕과 같은 사회적 욕구를 추구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울해 진 건, 나의 질문에 대한 C의 반응이었다.
그는 나의 질문이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것이라는 진단을 했던 것이다.
이전에도 몇번 이런 답을 들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한번은 대체 그 관념적이란 게 무엇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의 대답도 명확하진 않았다. 모호하게도 그는 직접 겪어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식의 탐닉에 대한 경계"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추구"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두가지 주제가 가지고 있는 상반된 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가지 주제는 모두 그의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번에도 나는 그에게 대체 생각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더불어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L을 객관적인 관찰자이며 증인으로 삼아서...
잠시 고민하던 C는 영화 <밀양>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용서"를 예로 들어 설명하려고 했다. 용서라는 단어를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
하지만, 이 영화의 예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가 나의 질문에 대한 관념적인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한다.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욕구라는 식욕, 성욕, 수면욕 조차도, 그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법을 통해서 채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또한 사회적인 욕망은 타인에 의해서 심어진 경우가 많다고 본다.
부모나 친척, 이웃과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인간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높은 곳과 큰 소리는 동물이 가지는 기본적인 두려움이라고 한다.
그 외에 사회적인 규범이라는 명목하에, 개개인을 사회의 틀에 맞추기 위해 가해지는 두려움도 있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은 온전히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여 차곡 차곡 쌓인게 아니다.
주위의 관계로부터 주입된 것들이 아무런 체계나 근거도 없이 무작위로 혼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욕망과 욕망 사이에 모순이 존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두려움과 두려움 사이의 모순도 그러하다.
욕망과 두려움 또한 마찬가지로 모순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겨우 볼 수 있으며, 그나마도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모순이 비춰지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바로 외면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