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일 금요일

비교, 차이, 인식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로 상대계(相對界)라는 말이 있다.
인간들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상대계라서, 모든 것이 상대적인, 비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큰 것을 보고야 작은 것을 알 수 있고, 많은 것을 보아야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상대적인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이해하는 방법은 비교하고 다른 점, 차이점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다르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인간이 인식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한 걸까?
모른다.
차이가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다면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한참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청소년기에 내가 갈구하던 것 가운데 하나는 [진리]였다.
그냥 진리가 아니라,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진리] 말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참 많이 답답해지곤 했다.
나 자신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공리(公理)'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공리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내 자신의 논리는 중간에 존재하는 공리들이 무너지면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아픔들을 겪다보면 당연하게도 절대적인 진리를 원하게 된다.

모든 것이 비교 함으로써 차이를 드러내야만 인식이 되는 상대계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원한다고?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다.
상대계를 벗어나 절대계(絶對界)로 들어가기 까지는....

한국은행에서 신권교환하기

올해 아버지께서 여든번째, 팔순 생신을 맞게 되십니다.

가족끼리지만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선물 대신에 생신축하금을 드리자고 형제간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처음엔 각자 5만원권을 새것으로 10장씩 준비해서 모아 드리자고 했는데,
5명의 형제가 각자 빳빳한 신권을 구하는 것도 인력 낭비요,
그렇게 모으면 제각각이라 신권의 맛도 나지 않을 것 같아 제가 대표로 5만원권 50장을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한 것이 목요일 저녁...생신 축하는 일요일...
여유는 금요일 하루 뿐이었고 이건 의외로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
금요일 오전에 동네에 자주 거래하던 우리은행을 찾아 갔습니다.
250만원을 5만원짜리 신권으로 교환해 달라하자 선선히 처리를 해주던 텔러분을 보면서,
전일 밤에 공연히 이런저런 고민을 했구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5만원권이 처음 발행 시에 문제가 있어 이를 보완하여 다시 나온 것이 있었고, 이를 구권과 신권으로 구별하여 불렀던 것입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빳빳한 새 돈을 구하려면, [미사용 신권] 혹은 [일련번호가 이어진 신권] 등으로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용어의 오해를 풀고 다시 살펴보니, 그나마 새것에 속하는 것들을 모아봐야 30~40장이 전부였고 일련번호 따위는 맞을 턱이 없었습니다.
텔러분께서 근방의 같은 은행 지점에 연락해 보았으나 주변 은행도 마찬가지로 미사용 신권을 구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옆 건물에 KB은행이 있으니 그곳에 한 번 가보시라는 조언을 따라 KB은행으로 가 보았습니다.

2)
KB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신권은 손님들이 맡긴 돈 가운데 새 것의 뭉치가 있으면 그것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이것도 40장이 전부였고, 일련번호 따위는....
전날 밤에 고민한대로 여기서제일 가까운 한국은행 강남본부를 가아겠다 생각하고, 텔러 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은행에 가면 일반인에게 신권 교환을 해 주느냐고.....그런데 잘 모르시더군요.
암튼 강남으로 출발.

3)
한국은행 강남본부는 역삼역에 인접해 있는데, 주차장이 있으나 요일제를 신청한 차량만이 주차가 가능하다더군요. 그래서 인근의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거대하고 시커먼 자동 유리문이 가로 막고 서 있습니다.
내부를 보여 주지 않으려는 듯 한 위압감,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고, 주차장도 지하에 있어선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이 땅의 절반은 그냥 화강암으로 심플하게 깔아놓은 차도와 휴식공간 그리고 매우 절제된 조경수...
정말 사람 없습니다. 감히 접근하기 무서울 정도...
그런데 자동문에 열리지 않습니다. 문의 옆에 마그네틱 센서가 있고, 출입증을 갖다대야 열린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입구로 돌아가 거기에 서 계시던 경비원게 여쭤보니, 신분증을 맞기면 출입증을 준다고 합니다.
출입증 받아서 자동문 통과하고 알려주신 대로 1층으로 이동하니(제가 들어온 곳은 3층), 거기에 다시 경비원 분이 계시고 신권 교환하러 왔다고 하자 바로 안내 해주시더군요.
아..이제 다 된거다...의기양양하게 들어가서 보니 일반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직원분들도 식사하러 가셨는지 자리가 많이 비어있더군요.
일단 신청서의 5만원권 란에 \2,500,000을 적고 하단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창구에 제출하니 1인 교환 한도가 있답니다. 뜨어~~억
5만원권은 100만원, 1만원권 100만원, 5천원권 50만원 이런 식으로...
결국 제가 교환 가능한 것은 5만원권 20장이 다라는 말씀.
직원분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완강하시더군요.
그곳은 강남 한복판...은행들도 모여 있고, 기업들도 모여있고, 사람들도 많으니 신권을 구비한 은행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저는, 일련번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은행을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저는 3층에서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왔는데, 신권교환소가 있는 1층에 바로 출입문이 또 있었고 그곳으로 출입하는 일반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좀 있다가 다시...

4)
한국은행을 나와 테헤란로를 지나면서 보니 신한은행, KB은행, 우리은행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이곳에 들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 은행들도 큰 건물에 입주해 있을 뿐, 사정은 동네에 있던 은행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은행, KB은행, 신한은행을 모두 들러보고 빈손으로 나오며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5)
빳빳한 신권은 오히려 명절에나 구하기가 쉽지, 그렇지 않은 시기엔 일반은행에서 신권을 구하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처럼 운에 따른 일이다.
한편으론 돈이란 것이 얼마나 그럴 듯해 보이지 않고 얼마나 천박해 보였으면, 빳빳한 신권이라는 것으로 포장을 해야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겠냐...

6)
다시 한국은행 강남본부로 갔습니다.
일반은행에서 미사용 신권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으며,
아버지의 팔순이라는 사정을 해 보거나, 다른 형제의 명의를 함께 사용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이도 저도 안되면 한도금액이라도 교환을 하고, 경기도에 있는 한국은행에도 가서 또 교환을 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까 보았던 1층의 출입문은 어떤가를 보니, 역삼역의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것이 그 출입문이었고, 이곳은 경비원 두명이 있으며 신권 교환인은 바로 교환소로 안내를 해 주기에 신분증, 출입증 다위의 절차가 없었습니다.

교환소에 다시 가 보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분들로 자리는 많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교환신청서에 형제 3명의 이름으로 각각 5만원권 100만원, 100만원, 50만원을 적어서 창구에 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단호하시더군요.

역시나 제 능력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5만원권 20장, 1만원권 50장을 교환하고 나왔습니다.

7)
신권 교환의 액수에 제한을 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아버지의 팔순 생신 축하금이거나, 자식의 결혼식 축의금이거나, 등등 많은 사연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이걸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단호하게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제한액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이 그저 담당자의 임의판단에 맡긴 듯한 처사는 잘못된 것 입니다.
제한액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고요?
5만원권 100만원? 이 제한이 하루 동안의 제한인가요? 한 번 방문시의 제한인가요?
1분만에 다시 방문해서 교환을 하는 것과 1시간 후 다시 방문하는 것, 5시간 후 다시 방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교환신청서에 제출하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신분을 명확하게 밝힐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중복 방문을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구분할 명확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고 다시 신청하는 건 어떤가요?
혹은, 옷을 바꿘 입거나 안경 모자 등을 이용해 담당자의 눈만 속일 수 있다면 어떤가요?
이 모든 것이 신권 교환을 담당하는 분의 임의 판단에 맡겨진 것입니다.
이런 헛점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며, 헛점을 이용했을 때 제재할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
제한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하는 수요(욕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욕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욕구를 압도하는 강함이 필요합니다.
저 허접하고 빈틈이 많은, 그저 임시규칙과 같은 것으로 욕구를 압도할 수 있나요?

평생 처음으로 한국은행에 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올 일이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단호한 규정의 적용이 타당한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기계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겠더군요.
오늘 그 담당자 분을 보면서, 규정을 지키는 것이 본인에게는 제일 편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구요, 규정대로니 업무상 과실도 없을 거구요, 공연한 자기 딜레마에 빠지지도 않을 거구요....

8)
한국은행 경기본점으로 향했습니다.
수원의 장안문 근처에 있는데,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출발한지라...
대충 아는 곳 까지 와서 근처의 파출소에 들어가 길을 물었습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순경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쉽게 찾아갔습니다.
한국은행 경기본점은 입구가 하나뿐이고, 요일제 차량이 아니어도 주차가 가능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려 하자 차단기를 올리며 경비원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는지 묻습니다.
신권교환하러 왔다고 하자, 주차하고 와서 출입증 받아서 들어가라고 합니다.
출입증 받아서 들어가자 건물 안에 경비원께서 또 안내해주시고...
나머지 5만원권 20장 신권으로 교환했습니다.


9)
암튼 한국은행에서 신권 교환하기의 결론입니다.
- 한국은행강남본점
  : 역삼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이 젤 좋다.
    신권교환의 제한이 있다. 5만원권 100만원, 1만원권 100만원, 5천원권 50만원...
    (5만원권* 20장 + 1만원권* 100장 + 5천원권 * 100장 = 250만원과 같이 교환도 가능하다.)
    교환해야 할 금액이 더 많으면 동반자를 데리고 가라.
    여의치 않으면 아침 일찍 한번 가고 오후 늦게 또 한번 가라. (9:00 ~ 16:00)
    만약 차가 있다면 옆에 우리은행에서 볼 일을 하나 만들어서 무료 주차를 해도 좋다.
- 한국은행경기본점
  : 주차 용이함.
    교환 권면수 제한은 위와 동일.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과학의 혁명

향후에-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과학계에 가장 큰 발견(?)으로 남을 업적은 정신(精神)과 에너지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발견이 위대한 이유는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밝혔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발견이 없었다면 물질과 에너지는 그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고, 물질의 세계와 에너지의 세계가 공존은 하고 있지만 근본이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일견,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육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밝힌 셈이기도 하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에너지로 존재했으며, 육체를 벗어나면 모종의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 - 에너지> 만으로는 설명 되지 않는 것들이 아직도 많지 않은가?
인간을 예로 들어 보아도, 육화된 인간은 에너지가 물질화 된 것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 들이 있다.

너무나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들의 행동양식,
본능이라 생각되는 원초적인 행동에서도 이런 다양성은 너무나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단순한 다양성 또한 하나의 생명 개체군(群)이 생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라고는 할 수도 있지만, 정작 이런 다양성의 개별 주체들은, 단지 다양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이 개별 주체들은 나름의 확고한 의지나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한 자기 최면 내지는 인식의 환상에 지나지 않을 지언정, 이러한 의지나 신념에 매우 강한 힘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종종 신념과 의지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본능에도 역행하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지, 신념, 정신과 같은 것은 또 다른 에너지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런 정신의 힘을 에너지와 구별하고 있다.
간혹 초능력이나 기적이라는 형태로 정신이 에너지화 되는 사례들이 보고되어 누적되고는 있지만 아직 정신의 에너지와 일반적인 에너지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구별되고 있다.

하지만 물질과 에너지가 별개의 것에서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 듯,
언젠가는 에너지와 정신 또한 일정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밝혀 질 것이다.

아마도 올바른 관계가 밝혀지고 나면,

             정신
           /      \
         물질 ― 에너지

와 같은 형태의 관계를 이룰 것이다.


이 관계를 잘 들여다 보면,
정신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으며, 정신이 물질로 바뀔 수도 있다.(초능력,마술과 같은...)
또한 에너지가 정신으로 바뀔 수 있고, 물질이 정신으로 바뀔 수도 있다.(???)

누군가 깊은 통찰력을 지닌 천재가 나타나
하루 빨리 이 관계를 밝혀 주길 기원한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우주는 마음이다

인간은 욕망이 모이고 모여서, 쌓이고 쌓여서 태어나게 된 욕망의 육화(肉化)이다.


빅뱅 이전에 모든 것이 하나인 순간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동요도 없고 치우침도 없었다.

마치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이 퍼져 나가듯,

빅뱅과 함께 퍼져 나가기 시작한 우주는,

물결의 파고 처럼 치우침을 만들었고,

치우침의 정점은 에너지가 모이며 생명을 만들었다.

생명의 탄생은 에너지의 집중으로 만들어지며, 이 원초적 에너지의 근원은 치우침이며, 치우침은 욕망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인간 개개인은 각자 저마다의 욕망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집(結集)이다.


욕망의 소멸은 치우침의 소멸이며, 치우침의 소멸은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업을 가지고 있는 걸까?

흔히들 깨달은 이들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인과론(因果論)도 다분히 철학적 혹은 종교적 영역이니 당연시 할 수는 없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인과론을 인정하고 시작해 보겠다.

학창시절의 역사 특히 국사(國史) 수업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하기만 하고 타 민족을 침략한 적은 거의 없다고 배워왔다.
이에 대해서는 민족성이 온순하기 때문이라는 자화자찬식의 이유도 있으며, 제대로 태평성세를 구가한 기간이 많지도 않으니 그럴 여유가 있었겠냐는 자조섞인 이유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많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희생을 당한 백성은 얼마나 많으며, 갖은 수탈과 치욕을 견뎌야 했던 것은 얼마이겠는가?


그러면 과연 무슨 원인을 지었기에 한민족은 이리도 많은 침략과 핍박을 받았던 것이며,
그 많은 침략과 핍박을 받은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의 일제침략으로 우리 민족을 끊임 없이 갈구던 일본은,
한민족을 침략하고 짓밟은 원인으로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어 동아시아, 아니 아시아에서 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 가혹한 세월을 보낸 한민족은,
결국은 열강에 의해 남북으로 찢어지고 이간질로 서로를 적대시하며,
비록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에 근접하는 국가가 되었음에도 열강의 눈치를 봐야 하는 반꼭두각시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우스갯소리처럼,
한여름 노래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가수로 발탁되어 호의호식하며, 등골빠지게 일한 개미는 관절염으로 고생고생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깨달은 이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정작 그들은 빈번히 침략 당하는 결과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모르며,
침략 받고 고통 받은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면서 좋은 원인을 지으라 한다.
좋은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설령 아는 척 해도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좋은 원인을 짓기 위해 선행을 하고 남을 돕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도, 어떤 결과가 올지 모르며 또한 언제 올지 모른다.
아마도 100번쯤 다시 태어났을 때에야, 그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면, 그것 보아라 그때의 원인이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 공치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인과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만 한번 쯤, 우리 한민족은 왜 이리 고달픈 역사를 타고 난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물어보고 싶다.

옳고 그름은 없는가?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많은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가치판단에 대한 것이다.

흔하게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보고 사람들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려고 한다.
하지만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는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주관적인 가치 판단일 뿐이며 사건이나 상황은 그저 일어난 것, 혹은 유지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고, 건물이 붕괴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태풍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유/불리에 처하게 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옳으냐 그르냐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가급적이면 내가 접하게 되는 모든 사건과 상황을 이처럼 치우침 없이 바라 보고자 노력은 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이상, 나와 남을 분리시키는 것은 본능과도 같으니, 치우침이 없다함은 다시 나와 남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가 하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결국은 궁극적인 치우침의 소멸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과연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가령 두개의 서로 다른 단음(單音)을 듣고 어느쪽이 높고 어느 쪽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높이가 다른 두개의 나무를 두고 어느 쪽이 크고 어느 쪽이 작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두개의 색깔을 보고 어느 쪽이 밝고 어느 쪽이 어둡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위의 사례만 보아도, 두개를 비교하여 상대적인 고저/대소/명암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상대적인 비교는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가 없다.
단지 비교 대상 없이 하나만을 두고 절대적인 고저/대소/명암을 가리는 것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간혹, 치우침 없이 본질을 보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옳고 그름이 분명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치우침이 없는 가치판단도 가능할까 라는 의심이 들고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건과 상황들에서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면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3년 6월 23일 일요일

진화의 끝

저는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진화론에 대한 지식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것과 그 밖에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배우거나 본 것이 전부였고, 찰스 다윈의 저서라는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읽어 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죽을 때 까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던 두 분의 대중 과학자는 잠시나마 진화론에 대해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분은 리처드 도킨스 박사, 또 한 분은 최재천 교수님입니다.
두 분 모두 찰스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 입니다.

도킨스 박사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을 통해서 국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시하며 무신론자 이기에 종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도킨스 박사의 무신론이 진화론을 추종하면서 내리게 된 판단인지, 진화론과는 별개의 어떤 이유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기독교 진영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도킨스 박사는 이래 저래 기독교 진영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최근에 EBS에서 진화론에 대한 특강을 꽤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더 오래 전에도 방송에서 곤충에 대한 강의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나 최근에나 강의를 참 재미있게 하셔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마도 이 두 분이 제게 잠시나마 진화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저의 고민은 '정말 진화론은 진리인가?' 였습니다.
기독교의 비중이 높은 서양에서는 아직도 진화론이 일반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어 본 기억이 있고, 반대론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방송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찬성론자들의 이야기만 들어 봤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과연 진화론에 적합한 생명체인가?"
"과연 진화의 끝은 있는 것일까? 끝이 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제가 알고 있는 일반 상식 순준의 진화론에 의하면,
현재의 인간도 진화의 한 형태이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진화를 하고 있을 겁니다.
수 많은 인간들이 서로 다른 수 많은 변이를 겪고, 다시 이것이 세대로 유전이 되고, 자연에 의해 선택이 되거나 버려지고 하면서....

하지만 인간은 찰스 다윈이 관찰했던 작은 생물들과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막강한 힘을 이용해서, 자연의 선택을 받지 않고, 자연이 인간을 선택하도록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종과의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이용해서, 다른 종들이 자연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닌 인간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 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해가 되는 생물은 도태가 되어야 하고, 인간의 생존에 득이 되는 생물은 자연의 선택과 상관없이 길러지고 사육됩니다.

즉, 자연 선택설이 인간 선택설로 서서히 전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진화의 한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면,
진화의 끝이란 결국 강력한 하나의 종(種)의 나타나 다른 종(種) 위에 군림하고, 그 종(種)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겠지만, 결국은 현재의 인간들 처럼 자연이 교란상태 빠져 그 스스로도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어쩌면 이는 필연적인 진화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며,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매우 강력한 종(種)이 나타났을 때, 이를 제어하거나 억누를 수 있는 반대의 힘이 나타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