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4일 금요일

주식 시장의 선물 옵션 - 시간의 상품

주식 시장의 파생상품으로 알려진 선물과 옵션.
이 상품들은 그 위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하고 있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장 선물이나 옵션은 최소 거래 금액이 꽤 높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선물의 경우에는 ETF로, 옵션의 경우에는 ELW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매수만 할 수 있고 매도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 대체상품이다.

이 상품들을 소개하거나  투자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니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_-);;


한때 옵션 투자를 해 본적이 있는데,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꽤 많은 손실을 보고 옵션 투자를 접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가끔은 꽤 수익을 봤던 적도 있는데, 그 때에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과연 이 수익은 무엇일까?"
내가 이 수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1) 위험을 감수한 댓가
2) 이만큼이라도 시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한 걸과)
3) 그냥 재수

1)은 아닌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마다 위험을 감수했다. 진입을 하는 순간부터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온통 위험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익보다 손실을 봤다.

2)도 어쩌면 맞을지 모르지만 위의 1)과 마찬가지로 그 공부와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지니 수익도 더 높아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적어도 그 기간동안은 그래 보였다.)

3)만 남았으니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의 시장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때 처럼 공포스러운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락하는 시장에서 마구 떨어지는 평가액을 그냥 바라보기 보다는 파생상품으로 약간의 보상을 받아보려하고 있다.
딱히 더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니 지식이나 실력이 더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한번의 경험이 더 쌓여서인지 조금은 차분하게 보이기도 한다.(그게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지만....ㅠ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저 때의 고민했던 답이 보였다.
답은 1) 위험을 감수한 댓가였다.
특히나 옵션은 그랬다.
옵션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매매가 체결되는 순간부터 위험이 뛰어든 것이고, 거래의 쌍방의 수익은 정확하게 손실과 일치한다.
즉, 한사람이 손실을 봐야 반대편이 수익을 얻는다.
두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내기를 걸었고, 이제 그걸 판결해 주는 사람은 시장이다.
시장의 판결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난다.
누군가 수익이 났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손실이 났고, 그걸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양쪽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양측의 승부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 유효하다.
사실 옵션의 실체는 "시간"을 상품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옵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간다.

아마 대부분의 옵션 매수자들은 만기가 1개월 이내인 상품을 매매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번쯤은 당일 매매를 넘기는 오버나잇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멘붕에 빠질 것이다.
단지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 -30%를 기록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대부분의 좋은 수익 모델은, 시간이 돈이 벌어주는 모델이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은 틀림없이 시간이 돈을 벌어주는 모델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항상 돈을 벌어주지는 못하지만, 길게 보면 언제가는 벌어주며, 그게 결국은 시간이 벌어주는 셈이다.

더 좋은 것은, 건물주가 되어 꼬박꼬박 월세를 받거나, 온전히 시간으로 이루어진 '옵션'을 판매하는 것이다.
단, 급격한 쏠림으로 인해 흔들리는 심리를 붙잡을 수 있다면...

고정비용과 유동비용 - 원인과 결과의 비대칭

문득 떠 오른 생각.

장사를 하는 사람. 개인 자영업자, 특히 많은 음식료 서비스업의 예를 들면,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에 대한 대략적인 예측이 있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자본금으로 투자를 하고, 원자재를 매입하고, 가공하여, 판매하고,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영업을 할 텐데, 정신없이 하다보면 과연 이게 남는 장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적절한 시점에 경영에 필요한 판단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먼저 크게 비용을 고정비용과 유동비용으로 분류해보자.
(이게 경영, 회계 이런 학문에 있는 용어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난 그런 학문은 배운 적 없다, 고등학교 사회나 중학교 상업이 전부였다.)

고정 비용은 매출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다.
매장이나 사무실의 임대료, 보험이나 세금 따위.

유동 비용은 매출과 연관된 비용이다.
원자재 매입, 가공비용(전기, 수도, 가스 등등)

그러면 이 사이에서도 벌써 문제에 부딪힌다.
인건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가공에 필요한 설비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이 부분은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 같다.
만약에 매출이 100일 때 필요한 사람과 설비가 1이라고 하면, 매출이 101~200인 경우에 필요한 사람과 설비는 2가 되어야 한다.

매출이 100에서 101로 늘어날 경우에 인건비와 설비는 유동비용이 되지만, 일단 101 이상이 되면 200이 될때 까지는 고정비용이 된다.


이제 좀 더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매장(사무실)을 늘려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무실의 임대료는 유동비용이 되는 셈이다.

이런 비용의 증가와 매출의 증가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면, 투자가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관계... 매출과 비용의 관계...처럼 딱 비례하지 않는 상관관계는 현실에서 꽤 자주 접하게 된다.

공부하는 시간과 성적과의 관계, 성적과 입학하는 대학과의 관계, 졸업하는 대학과 취직하는 직장과의 관계, 직장과 연봉의 관계, 연봉과 승진과의 관계 등등....

바닥을 다지려는 습관의 고질병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이런 저런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더 많은 준비를 하게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첫 시작을 더디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아버지는 참 철저하신 분이었다.
너무 철저해서 진저리가 날 때도 있었으니까.
난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가끔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내 주위의 동급생들이 영수증을 요구하는 걸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뭐라할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모든 방면에서 그리 철저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그렇지는 못하리라.

아버지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세대는 아니셨다.
하지만 첨단기술과 첨단제품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시고 늘 배우려고 애쓰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또래보다는 이런 기기들의 사용에 조금은 수월하신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은,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 무언가를 물어보시고, 다시 똑같은 걸 물어 보시는 일이 잦아졌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해결해 드리고자 하지만, 멀리 떨어져있을 때에는 전화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걸 자주 느낀다.

사실 아버지께서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시고 열심히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시는 건 항상 쓰는 몇가지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이상의 범위는 거의 모르시는 것 같았다.

때때로, 무슨 동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얼 배워야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대부분은 강의를 듣고 배우는 것이 다였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비슷한데, 제품 하나를 사시면 몇백페이지에 이르는 매뉴얼을 다 인쇄하고 제본하신다. 매뉴얼을 다 본 이후에나 사용하실 것처럼...
하지만 당장 전화를 걸고 받으며,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빠르게 배우고, 몇번 시도하고 실수하고 한 후에 그냥 쓰신다. 몇가지 자주 쓰는 기능들을 물어물어 배우시고 쓰시며, 계속 사용하니 잊지 않고 잘 사용하신다.
아마도 그 출력했던 매뉴얼의 10%는 보셨을지 궁금하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또 무슨 동기가 있으셨는지,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컴퓨터의 스프레드쉬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걸 배우려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배우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하지만, 짐작컨대, 아버지께서 익숙해지고 계속 사용하실 기능들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리라 생각하며, 그건 인터넷을 쉽게 검색만 해 봐도 배울 수 있는 거라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진 선뜻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셨다.

그 날, 문득 아버진 너무나 원천을 찾으려 애쓰시는게 아닌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선뜻 발을 내딛고, 몇걸음 걸어보고, 잘되면 뛰고, 잘 안되면 기어보거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거나 한다.
그런데 아버진,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인체의 뼈와 근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무엇이며, 그건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아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아마, 그만큼 두려우신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혹은 방면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런 무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성도 있지 않나 싶었다.


최근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월이 지나서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은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에 꺼려지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정이 들어서 새걸 사도 선뜻 버리기가 꺼려지고, 잘 쓰던 것이 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난걸까 싶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막막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따위를 전공과목으로 배우긴 했어도, 단지 학점을 위해 공부한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해온 터라, 지식이 쌓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던 지식마저도 휘발되어 날아간 듯 했다.

어떤 책을 봐야, 내가 원하는걸 할 수 있는지 모르니, 아무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는, 이거 아냐 휙~,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뭐라 ~카더라만 믿고 해보고는, 이것도 아냐...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누군가의 실전을 겸한 설명을 보니, 설명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 분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장 내가 써먹을 그런건 아니었고, 하나씩 배우기에 좋다는 정도...
결국 나도 몇번 듣고 잊어버릴 그런것에 집중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실력이 아닌걸까?


기본이 중요하기는 한데, 언제나 기본만 다지고 있다가는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과감하게 레벨업에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못보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 수 있다.
기본의 위치에서는 기본이 잘 안보이는 법이니까.


가끔은 기본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기본을 잡지 않으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불가능을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기본이 있어야만 하지는 않다.
문제가 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 자꾸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결론만 말하자면, 가끔은 그냥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며, 그것도 아주 많이 좋을 수 있다.
아마 시도해보면 기본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기본이든 뭐든 문제의 해법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 보자.

2019년 1월 2일 수요일

역지사지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최근에 좀 유별나다 싶게 청와대와 관련된 폭로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청와대의 특별 감찰관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청와대에서 민간인을 사찰했었다고 폭로한데 이어서, 기획재정부의 사무관으로 재직했던 신재민 전(前) 사무관이 청와대가 적자 국채발행을 원했다, KT&G와 서울신문사의 사장을 교체하려고 했다는 등의 비위(?)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서 여당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등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아주 시끄럽고 당혹한 눈치이다.
야당으로써는 기세를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적극적인 모습보다는 오히려 신중해 보이는 상황.

오히려 언론과 정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들이 더 시끌시끌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들을 봤을 때는 뭔가 2%...아니 20%는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뭔가 대단한 비위를 알고 있다는 듯이 폭로를 했지만, 그 모든 비위가 결국은 불발로 끝났기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것도 아니어서 국민적인 의혹을 이끌어내기엔 좀 모자르고, 설령 확실한 증거를 내 놓는다 한들, 청와대나 정부가 반박할 논리는 충분해 보였다. "결국 청와대나 정부 내부적으로 상호 견제와 보완이 잘 작동한다는 반증아니냐...."는 식으로.

따라서, 한동안의 신재민이라는 사람이 왜 힘들게 고시공부 해서 들어간 기재부의 사무관을 박차고 나와서까지 저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진짜 의도는 뭘까?


아마도 진짜 그의 목적이나 의도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의심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까지 가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 그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반대했던 사람들이 펼쳤던 자기 논리와 심리 상태.

아마도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졌고, 수많은 카더라가 범람했다. 탄핵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그 모든 의혹과 소문을 진실처럼 생각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서 가짜 뉴스와 소문들은 다 잊어버린 듯 행동했다. 그리고 사실로 밝혀진 것만으로도 탄핵감이라 주장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세력들은 헛소문으로 드러난 것들에 분개하면서 이렇게 악랄하게 몰아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초 고발자의 역할을 한 고영태의 의도가 무엇인지,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진짜인지를 밝히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은 외면하거나 부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두가지 사건을 같다고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명백한 행위의 결과가 있었는가 아닌가, 불법한 시도가 있었는가 아닌가, 국민들에게 막대한 위해를 끼쳤는가 아닌가, 법률과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있는가 아닌가 등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아직까지는...)

하지만, 두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갈라선 양측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심리 상태는 매우 흡사해 보인다는 것이다.

방어하고 변론하고 옹호하는 측, 공격하고 의심하고 피해를 주려는 측.


어쩌면 신재민 전 사무관의 진짜 의도는 이것이었을까?
- 내가 폭로한 것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 그런데 그렇게 따지만, 사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최초의 폭로들도 별것 아니지 않았던가
- 우리는 진실의 가치/무게를 평가하기보다는 그냥 미워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짧은 시간에 크다면 큰 변화가 이어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족한 지혜로는 긴 시간에 걸친 경험을 망각하기 쉽지만, 최근의 경험은 짧은 시간동안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서 상대방의 사정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P.S.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한 후에 좀 더 우울해졌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객관적인 사실과 의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특별한 이유없이 미워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보편적인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내가 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2018년 12월 29일 토요일

고혈압과 두통, 낮잠과 베개의 높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사례일 뿐이니 일반화하지 말 것!>

개인적으론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지병이 있는데, 두통과 복통이 그것이었다.
그 가운데 두통은 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었는데, 머리가 아프면 어떤 방법으로도 완화가 되질 않고 그저 끙끙 잃아야만 했다.

그나마 운에 좋게 걸린 우연이겠지만, 타이레놀이라는 진통제가 효과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 한동안은 '나에게 잘 맞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두통이 있을 때 마다 복용했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이것도 아니구나 싶어 포기를 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난 이것이 외가쪽의 가족력인 고혈압에 의한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고혈압약의 복용이 싫어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아마도 스트레스의 완화, 커피의 음용으로 카페인에 의한 혈관의 확장이 조금은 도움이 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뜬금 없이 가끔은 두통이 찾아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명백한 인과관계가 보이는 것이 바로 "낮잠"이었다.
특히나 휴일에 주일동안의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낮잠을 열심히 자고나면 어김없이 깨질 듯한 두통이 나를 괴롭히는데, 종종 나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까지 한탄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게 꼭 낮잠이 아니어도 비슷한 두통이 반복되는 걸 경험했는데, 그건 항히스타민제의 복용이었다.
알러지로 인해 여기저기 가려움증이 나타나곤해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곤 하는데, 이 항히스타민제의 주된 부작용이 "졸림"이다.
그러니까 이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졸려서 때 아닌 잠을 자고 일어나면 꽤 자주 두통이 이어졌다.

난 최근까지 이 두통 또한 약의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약의 부작용으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시간대에 잠을 자고 일어나니 또 두통이 밀려왔다.
관자놀이부터 귀뒤쪽 목으로까지 이어지는 통증.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전날 카페인의 섭취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서. 커피를 한모금 마시자마자 두통이 약간은 완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은 안심을 했다.

잠시 후, 주문을 했던 김치가 배달되었다.
얼른 김치통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 들여놔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신문지 깔고, 김치통 몇개 꺼내서 열어두고, 배달된 김치를 꺼내어 옮겨 담는데.... 갑자기 두통이 심해졌다.
다행히 그 느낌이 생생했는데, 김치를 옮기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고개는 아래쪽의 김치통을 향하자, 머리쪽으로 피가 쏠리면서 지끈지끈...

그제서야 뭔가 이해되는 내 고혈압의 원인과 두통의 원인, 그리고 그것이 낮잠(때아닌 잠)과 가지는 인과관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추측컨데 내 피는 꽤 찐득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내 고혈압의 원인으로 보인다.
아마도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그래서 유속이 많이 느려지는 머리쪽에서는 그런 피의 성분과 느린 속도가 혈관에 침천물을 만들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혈관이 좁아져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찐득한 피를 펌프질해서 순환 시키려면 압력이 꽤 높아야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머리쪽의 혈관에 불리한 요인 중 하나는 중력이다.
가뜩이나 찐득한 피인데다, 중력을 거슬러 심장에서 머리쪽으로 피를 올려야 하니, 심장이 꽤 무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학창시절에 어른들이 곧잘 인용하던 4당5락이니하는 말을 매우 싫어했다.
난 잠을 자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공부도 잘 안되고 시험도 성적이 안나온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창시절에 이런 얘기를 하면 그냥 공부하기 싫은 아이의 핑계로만 들었던 어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잠을 잔다는 건, 심장의 부담을 덜면서 두뇌에 피를 공급할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메커니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너무 오랜 시간 잠을 자면 머리쪽에 몰린 피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두통을 유발한다는 것(아마도....)
따라서 잠을 자서 머리쪽으로 일정한 정도의 피를 보내고, 다시 깨어나서 활동하면서 서서히 피를 아래쪽으로 보내고, 머리의 피가 부족해지면 다시 잠을 자고...
마치 모래시계를 세워 두었다가, 모래가 다 내려가면 다시 거꾸로 뒤집어 세우듯이, 잠자기와 깨어나기를 일정한 시간으로 반복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가 되었던 낮잠 혹은 때아닌 잠은 바로 이런 주기를 어기기 때문에 머리쪽에 지나치게 많은 피가 몰려서 두통을 유발했던 듯 하다.

그러면, 과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실 잠은, 두뇌로 피를 보내는 것 외에도 너무도 많은 효과가 있다.
신체의 내외부적인 손상이나 염증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 잠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것은 많은 예의 하나다.
그러니 단지 두뇌에 이미 피가 많이 가 있어도 잠을 자려면...두통 없이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베개를 높게 베거나 상체를 완전히 눞히지 않은 상태로의 잠자기가 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높은 베개나 상체를 조금이라도 세우는 자세는 어깨나 목의 통증, 뒤척임의 방해로 이어지긴 할테지만 말이다.

뭐 궁극적으로는 피의 끈적함을 조금이나마 묽게 해 주는 것이 좋겠지만...


P.S. 이 일- 약의 부작용으로 졸림, 때 아닌 잠, 두통, 커피, 김치통 옮겨 담기 -이 바로 오늘 일어난 일이며,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각은 기상한지 10시간이 지난 시간이며, 단지 일어나 있었다는 것 만으로 두통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커피도 마셨지만...)

P.S. 이 논리대로라면, 졸리진 않지만 머리가 멍해지거나 두뇌회전이 잘 안된다 싶을 때는 거꾸로 매달리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오해 - 잘못된 생각의 틀

아주 오래전 부터 가지고 있는, 아주 대략적이지만 큰 생각의 틀이 있는데...
그게 꽤 잘못된 틀이었다는 깨달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아주 큰 생각의 틀이라서, 틀이 잘못됨으로써 내 지식이나 경험들이 거기에 맞춰 왜곡되었을지 모르니 아주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정작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거의 없으니 현실적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1. 과거는 위대하고 찬란하지만, 현재는 볼품없고 하찮다는 오해

이런 생각의 틀이 만들어진 이유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공자, 소크라테스와 같이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모두가 아주 오래 전의 인물들인데, 그 이후에는 거기에 버금가는 인물들이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쩐지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퇴화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슷한 예로, 고대의 마야 문명, 잉카 문명, 이집트 문명의 유적들은 종종 몇대 불가사의라 불려질 정도로 거대하고, 위대하며, 심지어 오늘날에도 재현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식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그 문명의 발원지에 사는 그 후예들은 너무나 초라하고 심지어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과연 이들이 그 위대한 문명을 만든 이들의 후예가 맞단 말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이제 우리의 역사로 돌아와보면, 장수왕 광개토대왕의 국가 영토는 얼마나 광대했던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얼마나 위대했던가, 하지만 그런 위인들 이후에 한국사에는 그만큼 빛날 인물이 나왔던가?

위의 몇가지 예시들만으로도 인류는 퇴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고민해본 결과 위의 예들에 대한 반론은 가능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런 것에 반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위대한 과거 위대한 선조 위대한 전설 vs. 초라한 현실 미개한 현세대 보잘것 없는 우리들...이런 생각의 틀로 인해 생긴 부작용들이다.

어쩌면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매우 자조적인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이런 생각들의 단적인 부작용 사례가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자신감의 결여, 위대한 과거에 비해 내가 하는 것들이 아주 초라해 보이는 왜곡된 대비, 그래서 어지간한 결과들은 모두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뭘 해도 별것 아닌데 왜 하느냐는 허무주의 팽배....

지배계급은 인간들의 맹목적인 복종을 위해서 허튼 말을 퍼트리고 작은 일을 부풀렸지만, 결국에 피지배층은 열렬한 복종보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것이 아닌지...
정치 지도자와 민족주의자들은 우리의 조상과 민족의 위대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라며 조상들의 업적을 과대포장했지만 그로인해 그 후손들을 오히려 더 초라하고 작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


2. 인간성, 예의, 상식이 당연하다는 오해

아직도 사람 사이의 폭력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막말이나 갑질을 했다는 뉴스에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있다.
동물에 대한 학대나 유기 동물도 늘어나고 있으며, 따돌림과 집단 폭력 학대도 있다.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나,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이를 매우 개탄해마지 않고 하루 빨리 모든 사람들이 정상인(?)의 규범에 맞추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상인들은, 적절한 예의범절을 갖추어야 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 혹은 행동에 대한 상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예의, 규범과 상식이 인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단지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행동양식을 정해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예의범절이나 행동규범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그러지 못하다는 반증일 뿐, 누구나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간혹,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인사치레를 하고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이거나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차피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그 자리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궂이 상대방에게 팩트 폭력을 가해서는 누구에게도 득될 것도 없는 것이다.
호호호, 너무 잘 하시네요, 와우 대단하시네요, 어머머 너무 잘 생겼다 세상에 너무 부럽네요.... 입에 발린 말들이 무성해서 그게 위선적이라고 구역질이 난다고 할 지언정, 서로 비난하고 쌍욕하고 얼굴 붉히면서 주먹다짐 하는 것보다는 훨씬 훨씬 아름답고 즐거운 상황 아니겠는가.

선천적으로 아부 못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면 입에 가시가 돋을 거 같다면 그냥 침묵하고 미소지으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어느덧 12월...

아, 벌써 올해의 마지막 12월이란 말인가?

라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올해도 별 탈 없이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겠네.


사실 지난 몇년간은 비슷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하는데,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걱정하고, 혹시나 해서 조금이라도 준비하려고 하고, 아니면 계획이라도 세워보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귀찮아서, 단지 걱정하고, 걱정하고, 걱정하다가 끝난다.



언젠가의 경험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의 곤란함과 스트레스는 정말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은 쉽게 해결이 되며, 나에게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정신적인 데미지도 없게 된다.

대체, 그건 뭘 의미하는걸까?
우리가 종종 겪는 황당함, 허둥지둥, 극도의 스트레스, 주저 앉아 울고 싶은 그런 상황들이, 어찌 보면 그럴만한 일도 못 되는 것 아닐까.

대부분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일들은 대부분 누군가는 이미 겪은 일이며,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주 쉽사리 건널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걱정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한다.
그 말이 조금은 예언처럼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 나의 걱정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이 느끼게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무수히 많다.
그 모든 일들에 내가 관심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일은 내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며, 그 일이 벌어지기만 하면 내가 놓칠 리 없는 조건에 놓인 것이다.
문제는 단지 시간일 뿐이었던 것이고, 결국에 그 일이 일어나면 우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결국은 일어나고야 말았어."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순간부터, 그 일은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내 인생에서 떨어져 나간다.

만약 무언가가 나를 걱정하게 만들고, 그게 나의 발목에 매달린 족쇄와 같다면,...

그래서 그 족쇄를 풀어버리고 싶다면,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된다.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미리 방법을 전수받고, 가능한 예방책을 세워둔다면,
설령 족쇄를 풀지는 못할지라고, 훨씬 더 가벼워지지는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