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들이 만개하고 이제는 하나 둘씩 스러져 갈 즈음에야 바깥 산책을 나섰다.
밤 9시가 좀 안되는 시각이라 어두우니 꽃구경은 포기했다.
그래도 간간이 라일락 냄새가 진동하면, 화들짝 고개를 들고 좌우로 돌아가며 킁킁거려본다.
가로등이 비추는 곳은 꽃나무가 어슴프레 자태를 드러낸다.
간혹 달빛까지 비추는 곳에선 하얀 꽃잎들이 빛을 더하기도 한다.
문득 옛 시조 한구절이 떠 올랐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이화(梨花)에 월백(月白)이라니...문득 시인의 천재성을 이제야 알아내고 감탄했다.
그냥 범인이 썼다면 월하(月下)에 이백(梨白)이라고 썼을 것을...
배꽃이 달빛을 희게 만들었다니....
참 멋드러진 도치(倒置)가 아닌가.
습관적으로 읖조리기만 했는데, 이제야 참멋을 알아 반갑구나.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2018년 4월 17일 화요일
2018, 과연 정치는 새로워졌는가.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이어지는 정권 교체.
새롭게 당선된 대통령은 과거의 여당과 야당을 바꾸어 놓았으며,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였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과거에 대한 단죄들은,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바르지 못한 것들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사람들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서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에까지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는 것이 사실이나, 이것이 새로운 엄격함의 잣대가 될 것이며, 향후에도 같은 잣대가 된다면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이 관전자의 생각이다.
그러던 중, 여당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여론 조작단 사건이 터졌다.
일명 드루킹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정치 언론가(?)였던 모양인데, 온라인상의 게시물이나 댓들에 추천/비추천 수를 조작하여 여론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인물이 여당의원에게 특정 인사를 추천하여, 청와대가 검증까지 해 보았다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여당과 청와대의 반응은 미지근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냉담하다.
앞서 얘기한 "엄격한" 잣대가 경우에 따라서는 엄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그 "엄격함"은 색이 바래지고 "정치 보복"이 힘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사건 이전에 좀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건들이 몇몇 이었다.
1.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
- 과거 공관병에 대한 갑질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었지만, 어디 대장이라는 중직을 맡은 사람의 직을 빼앗을 만한 일이던가.
- 결국 공관병 갑질 사건은 여론 몰이에만 사용되었고, 뇌물 사건으로 고소되었지만, 고작 720만원. 그나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사건도 뇌물이 아닌 친분이 있던 사람과의 금전 거래였다는 소문도 있다.
- 짐작이지만, 아마도 누군가 새로운 대장을 임명하려고 찍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2. POSCO 권오준 회장, KT 황창규 회장
- POSCO와 KT 모두 과거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연루되어 홍역을 치루었다.
- 어찌보면 피해자였던 두 기업은 전 정권의 협력자로 몰리면서 비난을 받았다.
- 하지만 민간 기업인 삼성, 롯데, SK 등은 총수들이 구속되거나 피의자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직격탄을 맞은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 결국, 2018년 4월 18일 오늘, 권오준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했고, 황창규 회장은 뇌물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 KT와 POSCO의 회장은 정권이 바뀌면 함께 바뀌는 게 관행처럼 되어 왔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 한미연구소 지원 중단
-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던 입장을 고수하던 38 North 웹사이트의 운영 주체라고 한다.
- 이 연구소의 설립과 배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라는 것과 그들이 38 North를 운영했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최근의 대북 기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되는 입장인 것은 알겠지만, 국내 정치에 대한 관여를 하지 않는다면 지원을 중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 이런 사안은 과거 정부가 문화 예술인에 대한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원을 배제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가 되어버린 기분.
달라지지 않았다.
죄우가 바뀌었고, 진보와 보수가 바뀌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들이 바랬던 것이 이것이란 말인가?
언제나 바뀌는 정권과 그에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요동치는 나라?
시간이 지날 수록 견고해지는 원칙이나 중심은 없고, 좌우가 급변하니 중심축 마저 흔들려보리는 나라.
언제나 부르짖을 건 하나 뿐이다.
정치가 바뀌길 기대하기 보다는, 국민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이 바뀌길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새롭게 당선된 대통령은 과거의 여당과 야당을 바꾸어 놓았으며,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였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과거에 대한 단죄들은,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바르지 못한 것들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사람들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서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에까지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는 것이 사실이나, 이것이 새로운 엄격함의 잣대가 될 것이며, 향후에도 같은 잣대가 된다면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이 관전자의 생각이다.
그러던 중, 여당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여론 조작단 사건이 터졌다.
일명 드루킹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정치 언론가(?)였던 모양인데, 온라인상의 게시물이나 댓들에 추천/비추천 수를 조작하여 여론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인물이 여당의원에게 특정 인사를 추천하여, 청와대가 검증까지 해 보았다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여당과 청와대의 반응은 미지근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냉담하다.
앞서 얘기한 "엄격한" 잣대가 경우에 따라서는 엄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그 "엄격함"은 색이 바래지고 "정치 보복"이 힘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사건 이전에 좀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건들이 몇몇 이었다.
1.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
- 과거 공관병에 대한 갑질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었지만, 어디 대장이라는 중직을 맡은 사람의 직을 빼앗을 만한 일이던가.
- 결국 공관병 갑질 사건은 여론 몰이에만 사용되었고, 뇌물 사건으로 고소되었지만, 고작 720만원. 그나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사건도 뇌물이 아닌 친분이 있던 사람과의 금전 거래였다는 소문도 있다.
- 짐작이지만, 아마도 누군가 새로운 대장을 임명하려고 찍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2. POSCO 권오준 회장, KT 황창규 회장
- POSCO와 KT 모두 과거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연루되어 홍역을 치루었다.
- 어찌보면 피해자였던 두 기업은 전 정권의 협력자로 몰리면서 비난을 받았다.
- 하지만 민간 기업인 삼성, 롯데, SK 등은 총수들이 구속되거나 피의자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직격탄을 맞은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 결국, 2018년 4월 18일 오늘, 권오준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했고, 황창규 회장은 뇌물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 KT와 POSCO의 회장은 정권이 바뀌면 함께 바뀌는 게 관행처럼 되어 왔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 한미연구소 지원 중단
-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던 입장을 고수하던 38 North 웹사이트의 운영 주체라고 한다.
- 이 연구소의 설립과 배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라는 것과 그들이 38 North를 운영했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최근의 대북 기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되는 입장인 것은 알겠지만, 국내 정치에 대한 관여를 하지 않는다면 지원을 중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 이런 사안은 과거 정부가 문화 예술인에 대한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원을 배제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가 되어버린 기분.
달라지지 않았다.
죄우가 바뀌었고, 진보와 보수가 바뀌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들이 바랬던 것이 이것이란 말인가?
언제나 바뀌는 정권과 그에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요동치는 나라?
시간이 지날 수록 견고해지는 원칙이나 중심은 없고, 좌우가 급변하니 중심축 마저 흔들려보리는 나라.
언제나 부르짖을 건 하나 뿐이다.
정치가 바뀌길 기대하기 보다는, 국민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이 바뀌길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2018년 3월 13일 화요일
머리 깎기와 소원 빌기
내 머리카락이 유별나다는 건 꽤나 어렸을 때 부터 알게 된 듯 하다.
변두리 동네의 허름한 이발소가 전부였던 시절, 자격증이 있었는지 모를 이발사 아저씨는 내 가 아는 유일한 이발사였다.
아버지와 일요일에 함께 가곤 했으니, 나에게 무슨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깎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건 머리를 깎고 난 직후에 더 심했다.
머리카락은 직모에 굵기까지 해서, 짧게 자르면 사방으로 뻗치기 일쑤였고, 그걸 잠재우려고 손에 물을 묻혀서 얼마나 눌러 댔던지...
머리카락이 이렇게 억새풀처럼 뻣뻣하다보니, 머리를 깎는 것이 고통이었고, 점점 머리 깎기를 멀리하고, 그러다보니 길어진 머리를 보고는 주위 어른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꼰대질을 하기도 했다. (남의 사정은 모르고 하는 말들... 어쩌다 기회가 되어 설명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다시 꼰대질ㅠㅠ)
악순환이었다.
스프레이, 무스, 젤 따위도 많이 써 봤고, 나이가 더 들면서 머리카락도 성질 좀 죽었는지 예전만큼은 아닌데다, 나도 이젠 다른 사람 신경을 덜 쓰니 좀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사실 내 머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불과 몇년 전의 일이었다.
머리를 깎는 것에 트라우마가 남아 있지만, 이젠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나와 내 머리, 그리고 머리를 깎는 분들을 관찰해 보니 거기에 혼재 되어 있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 깎는 분들은 아주 빠른 시간(10분 ~ 15분)에 한 사람의 머리를 깎고 다음 손님을 받기도 한다. 아주 눈썰미가 있거나 자주 본 사람이 아니라면 손님을 기억하고, 그 손님의 성향을 기억하고, 머리 깎는 습관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새로운 곳에서 머리를 깎게 된다면 완전한 첫 대면이니...
세상에 자신의 머리에 대해 자기 자신만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눈에서 가장 먼 곳은 다름 아닌 뒤통수다.
내가 내 정수리 부근의 머리를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내 뒤통수를 제대로 보는게 과연 가능이나 할런지...
결국은 수많은 머리 깎기를 통해서, 바쁜 와중에에도 아주 간혹 내 머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억하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는 내 머리가, 직모이고 뻣뻣하고, 가르마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같은 길이로 잘랐을 경우에 왼쪽 머리가 잘 뜨며, 머리 숯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젠, 아주 당당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분에게 머리를 깎게 되면, 최대한 설명을 한다.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깍지만, 왼쪽이 잘 뜨니 조심해야 하고, 머리 숯이 많으니 속머리도 좀 솎아 주어야 한다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를 맞이하면서 소원을 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소원을 어떻게 빌었던가?
키 크게 해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등등.
만약에, 정말로 신이 존재해서 이런 소원을 듣고 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소원은 정말 들어 주기가 난감한 소원이 아닐까?
키를 얼마나 크게 해 줘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커야 하는지, 얼굴만 길게 해도 되는지...
공부는 잘 해도 시험은 못봐도 되는 건지, 시험은 몇등을 해야 잘 하는 건지, 어떤 과목을 잘 해야 하는 건지...
마음 부자는 어떤지, 땅부자인지, 빚부자는 아닌지, 부자의 기준은 또 뭔지...
내가 정말 신이라면 이런 소원들이 얼마나 난감할지 알게 될 것이며,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런 식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정말로 절실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소원도 점점 구체화 되어야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야 전지 전능한 신이라도 내가 딱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신이 없다 하더라도, 나의 소원을 구체화 하는 과정이 그 소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좋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변두리 동네의 허름한 이발소가 전부였던 시절, 자격증이 있었는지 모를 이발사 아저씨는 내 가 아는 유일한 이발사였다.
아버지와 일요일에 함께 가곤 했으니, 나에게 무슨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깎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건 머리를 깎고 난 직후에 더 심했다.
머리카락은 직모에 굵기까지 해서, 짧게 자르면 사방으로 뻗치기 일쑤였고, 그걸 잠재우려고 손에 물을 묻혀서 얼마나 눌러 댔던지...
머리카락이 이렇게 억새풀처럼 뻣뻣하다보니, 머리를 깎는 것이 고통이었고, 점점 머리 깎기를 멀리하고, 그러다보니 길어진 머리를 보고는 주위 어른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꼰대질을 하기도 했다. (남의 사정은 모르고 하는 말들... 어쩌다 기회가 되어 설명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다시 꼰대질ㅠㅠ)
악순환이었다.
스프레이, 무스, 젤 따위도 많이 써 봤고, 나이가 더 들면서 머리카락도 성질 좀 죽었는지 예전만큼은 아닌데다, 나도 이젠 다른 사람 신경을 덜 쓰니 좀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사실 내 머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불과 몇년 전의 일이었다.
머리를 깎는 것에 트라우마가 남아 있지만, 이젠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나와 내 머리, 그리고 머리를 깎는 분들을 관찰해 보니 거기에 혼재 되어 있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 깎는 분들은 아주 빠른 시간(10분 ~ 15분)에 한 사람의 머리를 깎고 다음 손님을 받기도 한다. 아주 눈썰미가 있거나 자주 본 사람이 아니라면 손님을 기억하고, 그 손님의 성향을 기억하고, 머리 깎는 습관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새로운 곳에서 머리를 깎게 된다면 완전한 첫 대면이니...
세상에 자신의 머리에 대해 자기 자신만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눈에서 가장 먼 곳은 다름 아닌 뒤통수다.
내가 내 정수리 부근의 머리를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내 뒤통수를 제대로 보는게 과연 가능이나 할런지...
결국은 수많은 머리 깎기를 통해서, 바쁜 와중에에도 아주 간혹 내 머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억하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는 내 머리가, 직모이고 뻣뻣하고, 가르마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같은 길이로 잘랐을 경우에 왼쪽 머리가 잘 뜨며, 머리 숯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젠, 아주 당당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분에게 머리를 깎게 되면, 최대한 설명을 한다.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깍지만, 왼쪽이 잘 뜨니 조심해야 하고, 머리 숯이 많으니 속머리도 좀 솎아 주어야 한다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를 맞이하면서 소원을 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소원을 어떻게 빌었던가?
키 크게 해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등등.
만약에, 정말로 신이 존재해서 이런 소원을 듣고 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소원은 정말 들어 주기가 난감한 소원이 아닐까?
키를 얼마나 크게 해 줘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커야 하는지, 얼굴만 길게 해도 되는지...
공부는 잘 해도 시험은 못봐도 되는 건지, 시험은 몇등을 해야 잘 하는 건지, 어떤 과목을 잘 해야 하는 건지...
마음 부자는 어떤지, 땅부자인지, 빚부자는 아닌지, 부자의 기준은 또 뭔지...
내가 정말 신이라면 이런 소원들이 얼마나 난감할지 알게 될 것이며,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런 식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정말로 절실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소원도 점점 구체화 되어야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야 전지 전능한 신이라도 내가 딱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신이 없다 하더라도, 나의 소원을 구체화 하는 과정이 그 소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좋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사랑과 광기(狂氣), 섹스와 폭력(暴力)
매트릭스 3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알지 못할 이유로 지하철에 갇히게 된 네오.
네오를 구하기 위해 메로빈지언을 찾아가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 등은 네오를 구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메로빈지언은 그 댓가로 오라클의 눈을 요구한다.
결국 이 거래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트리니티의 끝장 전술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에서 메로빈지언은 혼자서 중얼 거린다.
"사랑과 광기는 놀랍도록 닮았다."고
사랑에 관한 세상의 찬사는 너무나 흔하다.
물론 숭고하고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는 사랑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며 드물다.
단지, 아주 좁은 범위의 사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남녀의 사랑, 인기 연예인에 대한 팬의 사랑, 반려 동물에 대한 주인의 사랑... 등에서 우리는 그 "숭고한 사랑"의 일면이나마 살짝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성의 사랑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매우 본능적인 것이고 이기적이다.
호르몬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놀음이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기에, 모든 인간들에게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매우 강력하기까지 하다.
섹스는, 이성간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행위이고, 사랑의 많은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순간적으로는 더 강력한 면이 있어 보인다.
본능적이고, 보편적이고, 강력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이런 행위는, 그러나 개별 존재들로 보면, 어느 정도의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다분히 사회 문화적 영향과 결합된 면, 개인적인 컴플렉스와 연관된 면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행위가 매우 충동적이며 순간적이기에 폭력적인 성향을 다분히 띠고 있게 된다.
요즘에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은, 오랜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 하에서 벌어진 일방적인 성폭력에 대한 반발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운동이 남성과 여성, 강자와 약자, 갑과 을 사이의 기울어진 시소를 맞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에서 기인한 폭력적인 성행위와, 성행위 자체가 가진 폭력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매우 어렵고도 민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섹스가 폭력적이지 않은 경우는, 쌍방이 원하는 바와 그 정도가 일치하고, 실제 행위에서도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지켜야만 하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만약에 어느 한쪽이 조금만 선을 넘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한쪽은 가해자가 되고 반대쪽은 피해자가 되고, 그 현장은 폭력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섹스의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언제든지 "미투"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성을 알고 있다면, 누구도 선뜻 섹스를 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폭력에 눈 감을 것인가, 폭력이 없는 유토피아를 선택하고 종족이 사라지게 할 것인가.
※ 쓰고 보니 한강씨의 <채식주의자>가 다시 생각난다.
인간의 육식과 그 육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폭력성.
생존을 위해 폭력에 눈감고 육식을 할 것인가, 폭력이 없는 유토피아를 위해 육식을 끊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알지 못할 이유로 지하철에 갇히게 된 네오.
네오를 구하기 위해 메로빈지언을 찾아가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 등은 네오를 구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메로빈지언은 그 댓가로 오라클의 눈을 요구한다.
결국 이 거래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트리니티의 끝장 전술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에서 메로빈지언은 혼자서 중얼 거린다.
"사랑과 광기는 놀랍도록 닮았다."고
사랑에 관한 세상의 찬사는 너무나 흔하다.
물론 숭고하고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는 사랑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며 드물다.
단지, 아주 좁은 범위의 사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남녀의 사랑, 인기 연예인에 대한 팬의 사랑, 반려 동물에 대한 주인의 사랑... 등에서 우리는 그 "숭고한 사랑"의 일면이나마 살짝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성의 사랑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매우 본능적인 것이고 이기적이다.
호르몬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놀음이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기에, 모든 인간들에게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매우 강력하기까지 하다.
섹스는, 이성간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행위이고, 사랑의 많은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순간적으로는 더 강력한 면이 있어 보인다.
본능적이고, 보편적이고, 강력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이런 행위는, 그러나 개별 존재들로 보면, 어느 정도의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다분히 사회 문화적 영향과 결합된 면, 개인적인 컴플렉스와 연관된 면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행위가 매우 충동적이며 순간적이기에 폭력적인 성향을 다분히 띠고 있게 된다.
요즘에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은, 오랜 역사적 사회적 불평등 하에서 벌어진 일방적인 성폭력에 대한 반발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운동이 남성과 여성, 강자와 약자, 갑과 을 사이의 기울어진 시소를 맞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에서 기인한 폭력적인 성행위와, 성행위 자체가 가진 폭력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매우 어렵고도 민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섹스가 폭력적이지 않은 경우는, 쌍방이 원하는 바와 그 정도가 일치하고, 실제 행위에서도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지켜야만 하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만약에 어느 한쪽이 조금만 선을 넘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한쪽은 가해자가 되고 반대쪽은 피해자가 되고, 그 현장은 폭력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섹스의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언제든지 "미투"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성을 알고 있다면, 누구도 선뜻 섹스를 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폭력에 눈 감을 것인가, 폭력이 없는 유토피아를 선택하고 종족이 사라지게 할 것인가.
※ 쓰고 보니 한강씨의 <채식주의자>가 다시 생각난다.
인간의 육식과 그 육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폭력성.
생존을 위해 폭력에 눈감고 육식을 할 것인가, 폭력이 없는 유토피아를 위해 육식을 끊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2018년 2월 25일 일요일
성인(聖人)은 있는가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세상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냥 빠른게 아니라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빨라지는 듯 하다.
지식의 발전은 인공지능이라는 꿈 같았던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열역학 제 2법칙처럼 인간들의 개개인의 자유도에 대한 욕망도 증가하면서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들의 분열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런 급격한 변화들은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 속도에도 영향을 끼쳐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만연해 있던 관습들은 구태(舊態)와 악습(惡習)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도 과거에는 최소한 한세대인 3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가치관 변화, 그래서 구태와 악습의 주체를 처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죄를 묻기 어려운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 평생을 살면서 몇번씩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 마음으로 살아야 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누구든 자신이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으로 행했던 것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 걱정들을 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원인은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가장 큰 변화는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혹은 남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 그에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이전보다 평등해 졌으며, 소위 갑질에 대한 비판으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도 영향을 끼졌다 생각한다.
모든 미투 운동의 사례를 자세히 보지는 않았기에, 개별 사건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폭로와 가해자들의 사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근히 나 또한 죄인은 아니더라도 비난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런 속도의 변화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도 죄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
이 와중에도 사람들의 행태는 다분히 내로남불인 경우가 많고, 자기 모순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청렴과 도덕을 요구하는 듯이 잠재적 가해자(아직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이렇게 썼음)에게 비난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정도의 철저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타인에게 인격적 살인에 가까운 모욕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자주 접하는 인터넷의 공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불편한 마음의 끝에 들었던 생각은 이러했다.
"아마도 부처님과 예수님이 현 시대에 나셨다 하더라도, 이 악플에 쫓겨서 세상을 등 지셨겠구나."
하기야 부처님도 예수님도 당 시대에는 일부 지역 내에서만 유명하셨을테고, 추종자들 만큼이나 많은 비판론자들이 있었으리라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지금도 과거의 성인만큼이나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어딘가에는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성인이 나타나면 그가 성인인지 알아 볼 수는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부처님 예수님 같은 성인은 단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기로 결정(?)했기에 성인의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닐까?
세상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냥 빠른게 아니라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빨라지는 듯 하다.
지식의 발전은 인공지능이라는 꿈 같았던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열역학 제 2법칙처럼 인간들의 개개인의 자유도에 대한 욕망도 증가하면서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들의 분열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런 급격한 변화들은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 속도에도 영향을 끼쳐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만연해 있던 관습들은 구태(舊態)와 악습(惡習)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도 과거에는 최소한 한세대인 3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가치관 변화, 그래서 구태와 악습의 주체를 처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죄를 묻기 어려운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 평생을 살면서 몇번씩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 마음으로 살아야 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누구든 자신이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으로 행했던 것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 걱정들을 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원인은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가장 큰 변화는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혹은 남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 그에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이전보다 평등해 졌으며, 소위 갑질에 대한 비판으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도 영향을 끼졌다 생각한다.
모든 미투 운동의 사례를 자세히 보지는 않았기에, 개별 사건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폭로와 가해자들의 사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근히 나 또한 죄인은 아니더라도 비난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런 속도의 변화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도 죄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
이 와중에도 사람들의 행태는 다분히 내로남불인 경우가 많고, 자기 모순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청렴과 도덕을 요구하는 듯이 잠재적 가해자(아직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이렇게 썼음)에게 비난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정도의 철저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타인에게 인격적 살인에 가까운 모욕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자주 접하는 인터넷의 공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불편한 마음의 끝에 들었던 생각은 이러했다.
"아마도 부처님과 예수님이 현 시대에 나셨다 하더라도, 이 악플에 쫓겨서 세상을 등 지셨겠구나."
하기야 부처님도 예수님도 당 시대에는 일부 지역 내에서만 유명하셨을테고, 추종자들 만큼이나 많은 비판론자들이 있었으리라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지금도 과거의 성인만큼이나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어딘가에는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성인이 나타나면 그가 성인인지 알아 볼 수는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부처님 예수님 같은 성인은 단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기로 결정(?)했기에 성인의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닐까?
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시기와 질투
시기와 질투는 비슷해 보이는 데, 과연 무엇이 다를까?
우연히 읽은 인터넷의 정보에 이런 것이 있었다.
시기는 envy, 질투는 jealousy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구분을 하고 있었는데,
시기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질투는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이라고 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시기는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고, 질투는 '나'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다.
번역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들도 있다.
envy가 <시기>, jealousy는 <샘>으로 번역하고, 우리말의 질투는 시기와 샘을 다 아우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혹자는, 자주 사용되는 상황으로 구분한 경우도 있다.
질투는 주로 애정 - 특히 남녀간의 애정에 쓰이는 단어이고 시기는 그 이외의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나 자신을 객관화 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 가는데,
그것이 조금식 연습이 되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무엇이고,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굼금해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보거나 듣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잠깐의 소개(?)만을 접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호불호(好不好)를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상스러울만큼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형식의 조우(遭遇)에도 기분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을 느꼈다.
과연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를 고민하다보니, 그것이 잠재적인 시기와 질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사뭇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자신의 영역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가치(돈,명예,권력,권위)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보편적인' 시기나 질투를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너무 억지스러운 가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나를 질투심/시기심이/시샘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면 더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종종 느끼게 되는 그 불쾌한 기분, 불안한 기분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아직은 명확하게 내 감정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이 포스팅은 그 여정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에 관한 또 한가지 의문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일 듯한 이 시기와 질투가, 불교의 7정(七情) - 喜 怒 哀 樂 愛 惡 辱 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연히 읽은 인터넷의 정보에 이런 것이 있었다.
시기는 envy, 질투는 jealousy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구분을 하고 있었는데,
시기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질투는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
이라고 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시기는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고, 질투는 '나'에 대해 느끼는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다.
번역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들도 있다.
envy가 <시기>, jealousy는 <샘>으로 번역하고, 우리말의 질투는 시기와 샘을 다 아우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혹자는, 자주 사용되는 상황으로 구분한 경우도 있다.
질투는 주로 애정 - 특히 남녀간의 애정에 쓰이는 단어이고 시기는 그 이외의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나 자신을 객관화 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 가는데,
그것이 조금식 연습이 되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무엇이고,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굼금해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보거나 듣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잠깐의 소개(?)만을 접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호불호(好不好)를 결정 짓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상스러울만큼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형식의 조우(遭遇)에도 기분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을 느꼈다.
과연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를 고민하다보니, 그것이 잠재적인 시기와 질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사뭇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자신의 영역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가치(돈,명예,권력,권위)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보편적인' 시기나 질투를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너무 억지스러운 가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나를 질투심/시기심이/시샘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면 더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종종 느끼게 되는 그 불쾌한 기분, 불안한 기분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아직은 명확하게 내 감정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이 포스팅은 그 여정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에 관한 또 한가지 의문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일 듯한 이 시기와 질투가, 불교의 7정(七情) - 喜 怒 哀 樂 愛 惡 辱 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18년 2월 6일 화요일
마피아 게임
직접 해 보진 않았지만, 마피아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게임인데, 모종의 방법으로 마피아를 선정하고, 누가 마피아 인지는 마피아 자신만이 아는 상태.
게임이 진행되면서 마피아는 일반 시민을 제거하고, 모든 시민들이 제거 당하기 전에 마피아를 찾아 내야만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링크 - 마피아 게임 (위키피디아)
링크 - 마피아 게임 (나무위키)
아마도 이를 컴퓨터 게임으로 만든 것도 여러가지가 있을 듯 한데, 최근에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이 참여해 즐기는 게임으로 Deceit라는 게임도 있다.
게임 참가자 중 누군가는 흡혈귀이고 어둠을 틈타 사람들을 해치운다.
일반인은 흡혈귀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의심스러운 사람을 총으로 죽이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하는 게임.
뜬금없이 이런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의 정치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느낀 것이, 마치 이 게임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ICBM 개발과 실험.
미국의 THAAD 한반도 배치
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발과 그에 따른 각종 보복성 조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대북 제재에 대한 전세계적 공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미묘한 이견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급한 조치들
이 조치들과 대북 제재의 충돌, 급격한 화해 모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되자, 이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비리 캐기가 시작되었다.
MB의 재임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많은 것들이 묻혀버렸고, 그게 살아있는 권력의 힘 때문이라 생각했을 수 있었던 것들. 너무 사소한 부분까지 들추는게 아니냐는 지적과 사소한 것으로부터 큰 비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옹호론이 상존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의 과열된 거래와 부작용에 대해 정부에서는 오락가락 정책을 발표해서 스스로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재판은 아직까지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져서 이재용 부회장은 오랜 옥중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여검사가 상급자로 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오자, 한편으로는 법조계에서마저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논란과 전세계에 불고 있는 "미투"의 바람이 대한민국에도 불게 되었다.
이런 저런 논란거리가 많은 요즈음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던 국론은, 다시 대북 강경론자와 유화론자로, 구세대와 신세대로 사분오열되고 있다보니,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저 의견은 달리하는 경우가 너무나 당연시될 정도이다. 어쩌면 이런 다양한 문제에 놓인 지금이, 우리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풍토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현상이 글의 처음에 소개한 마피아 게임과도 같은 비슷한 면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여론몰이를 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일삼는 것이다. 단지 이런 정도면 다양한 소리 가운데 하나라 생각하겠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마치 자신의 세(勢)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거짓을 하고 있어 보인다.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인원이 온라인에서 가명의 여러 사람 행세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반복해서 노출시키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는 호응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조작하며,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이 많은 것처럼 조작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이런 조작된 의견과 조작된 호응도를 보면서 어떤 것이 진실된 것이고 어떤 것이 거짓된 것인지 구별해 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게임인데, 모종의 방법으로 마피아를 선정하고, 누가 마피아 인지는 마피아 자신만이 아는 상태.
게임이 진행되면서 마피아는 일반 시민을 제거하고, 모든 시민들이 제거 당하기 전에 마피아를 찾아 내야만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링크 - 마피아 게임 (위키피디아)
링크 - 마피아 게임 (나무위키)
아마도 이를 컴퓨터 게임으로 만든 것도 여러가지가 있을 듯 한데, 최근에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이 참여해 즐기는 게임으로 Deceit라는 게임도 있다.
게임 참가자 중 누군가는 흡혈귀이고 어둠을 틈타 사람들을 해치운다.
일반인은 흡혈귀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의심스러운 사람을 총으로 죽이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하는 게임.
뜬금없이 이런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의 정치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느낀 것이, 마치 이 게임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ICBM 개발과 실험.
미국의 THAAD 한반도 배치
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발과 그에 따른 각종 보복성 조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대북 제재에 대한 전세계적 공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미묘한 이견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급한 조치들
이 조치들과 대북 제재의 충돌, 급격한 화해 모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되자, 이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비리 캐기가 시작되었다.
MB의 재임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많은 것들이 묻혀버렸고, 그게 살아있는 권력의 힘 때문이라 생각했을 수 있었던 것들. 너무 사소한 부분까지 들추는게 아니냐는 지적과 사소한 것으로부터 큰 비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옹호론이 상존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의 과열된 거래와 부작용에 대해 정부에서는 오락가락 정책을 발표해서 스스로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재판은 아직까지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져서 이재용 부회장은 오랜 옥중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여검사가 상급자로 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오자, 한편으로는 법조계에서마저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논란과 전세계에 불고 있는 "미투"의 바람이 대한민국에도 불게 되었다.
이런 저런 논란거리가 많은 요즈음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던 국론은, 다시 대북 강경론자와 유화론자로, 구세대와 신세대로 사분오열되고 있다보니,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저 의견은 달리하는 경우가 너무나 당연시될 정도이다. 어쩌면 이런 다양한 문제에 놓인 지금이, 우리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풍토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현상이 글의 처음에 소개한 마피아 게임과도 같은 비슷한 면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여론몰이를 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일삼는 것이다. 단지 이런 정도면 다양한 소리 가운데 하나라 생각하겠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마치 자신의 세(勢)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거짓을 하고 있어 보인다.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인원이 온라인에서 가명의 여러 사람 행세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반복해서 노출시키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는 호응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조작하며,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이 많은 것처럼 조작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이런 조작된 의견과 조작된 호응도를 보면서 어떤 것이 진실된 것이고 어떤 것이 거짓된 것인지 구별해 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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