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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1일 금요일

[도서]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 올더스 헉슬리

자세한 도서 정보는 나중에 추가하겠음.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 책이 궁금해졌다.
책의 제목과 저자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책을 읽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니 읽어봐야겠다는 동기도 없었던 셈.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난 걸까?
왜 갑자기 읽어 보고 싶어진 걸까?


아직은 초반부까지 읽은 상태인데 꽤 흥미롭다.
미래의 어느 사회.
극히 조절되고 통제되며 계획된 사회.
인간의 태생부터 계급화되고 계급에 맞게 배양되고 길러지는 사회이다.

이러한 면모들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이나 데몰리션맨에서 봤던 것과 너무 흡사하다.
아마도 이 영화들이 멋진 신세계에서 차용한 아이디어겠지만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SF는 엉뚱한듯 해도 현 세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가득해서 좋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생각지도 못했던 모순이나 불문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든다.

2016년 11월 19일 토요일

[도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저자 :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
역자 : 임재서
출판사 : 사피엔스21


국내에서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원작의 소설.

나도 영화를 먼저 본 후, 한참이 지나서 원작이 있음을 알았고, 또 한참이 지나서 책으로 읽게 되었다.

원작은 2005년 발표, 영화는 2008년 개봉.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영화 개봉 당시에는 매우 잘 만든 영화라는 호평이 자자했는데, 생각보다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또한 수입 배급사의 과장 홍보 때문이었을까?
하비에르 바르뎀, 토미 리 존스 등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좋았다.
감독은 코엔 형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간의 긴장감, 그리고 이들의 뒤를 한 발 늦게 따라가며 수사하는 보안관의 절망감.
안톤 쉬거의 냉혈함이 주는 섬뜩함.
모스의 능숙함과 영리함, 그러나 쪽기는 자로서의 긴장감.
벨 보안관의 절망감.


소설을 읽어 보면, 코엔 형제가 왜 뛰어난 감독인지를 알 수 있다.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지, 영화를 소설로 펴 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작품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작품의 배경과 소재가 우리에겐 그다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가치는 세밀한 묘사에 있다.
하지만 나로써는 글자만으로 상상해내기 어려운 장면의 묘사들이 많았기에, 코엔 형제의 재현에 감탄을 했으며, 원작만을 보았다면 많은 부분이 어렵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벨 보안관의 독백과 같은 생각들은, 이 책이 단순한 액션 스릴러가 아님을 보여준다.


책의 일부를 스캔해서 올려 두는 것이 저작권법에 위배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느낌을 활자화된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생각했다.
매우 제한된 양이기에 양해를 구하는 바이며, 문제가 될 시에는 바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틀,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제목의 유래가 된 싯구의 소개.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中.


첫 페이지. 이 부분은 벨 보안관의 얘기이며 이 책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초반부, 이 책의 재미있는 주석. 핏자국 주석.


노쇠한 보안관 벨은 점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을 버거워하며 한탄을 한다.
그리고 전쟁 영웅으로 훈장을 받았던 일의 뒤에 숨겨진 진실로 자책을 한다.

책의 말미는 조금 의아한데, 영화화 되지 않은 부분들이 벨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책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당혹하게 만들며, 구체적 설명이 없었던 모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을 하는 부분 등이 나온다.
연작 소설의 한 부분만을 떼어낸 듯이 참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며, 역자의 주석이 없었다면 내내 궁금했을 것이어서 아쉬움도 있다.

흔히들 노인들이 젊은 세대를 보며 한탄하는 일은 로마시대부터 줄곧 이어진 일이라고 치부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은 결국 돌고 도는 것이라며, 지금 일어난 일이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라며 위안으로 삼는다.
과연 노인들의 경고는 그저 꼰대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벨 보안관의 한탄처럼 세상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도서]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분당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인데, 책의 제목에 크고 작은 글씨로 부가된 제목들이 꽤 많다.

서명은..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알프레드 아들러,

편역자 신진철

출판사는 소울메이트


아래는 이 책의 간략한 사진들

좌측이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우측은 움베르토 에코의 <전설의 땅>

저자와 편역자 소개

출판 정보

목차

목차

처음에는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라는 책을 찾다가, 그 책은 찾지 못한 대신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책에 대해서는 매우 실망스럽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한 철저한 역서라면 어렵고 지겨워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겠지만, 너무나 간략화한 내용과 아주 단편적인 소(小)주제들의 나열 같은 논리적인 흐름의 부재가 마치 요점 정리를 해 둔 암기 노트 같다고나 할까?

중간 중간에 빠진 내용들이 무엇인지 작성자만이 알고 있기에 작성자에게 유용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난삽해 보이기 쉬운 그런 암기노트 말이다.

심지어 이렇게 내용을 간략화하다보니 책의 부피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때문인지, 별 관련 없는 사진들과 널찍 널찍한 여백들이 거반이다.


그래도 내용은 많이 쉽게 풀어서 씌어져 있기에 가볍게 읽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부분들은 한번쯤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이 의미를 가지지 않나 싶다.

몇가지 단락이나 문자 가운데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여기에 추려 보았다.
(물론 순전히 주관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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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 열등감을 겪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는 무엇인가?中
 "이렇게 하면 좋았을 텐데." "그 직업을 택할 걸." "그 남자와 싸울 걸."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모두 그 사람이 상당한 열등감을 겪고 있음을 알려 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열등감의 관점에서 그들의 말을 해석하면 의구심과 같은 감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의구심에 한번 빠진 사람은 언제나 의심하는 상태로 남게 되며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그는 아마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p.77 우월성을 향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中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공상에 만족하는 존재다. 특히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공상 세계에 상당히 만족한다. 그들은 스스로 약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우회로를 선택한다. 이 싸움을 피하고 도피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실제의 모습보다 더 힘세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거짓 위안을 얻는다.

p.84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과시적이라면 이는 열등감 때문이다.中
  만약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과시적이라면 이는 열등감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은 유용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경쟁을 펼칠 만큼 스스로 충분히 강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그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며, 자신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모른다.

p.135 분노 역시 열등감 콤플렉스의 중요한 행동 표현 양식이다.中
  어려움에 맞서 표현되는 가정 철저한 형태의 퇴보는 자살이다. 자살을 택한 사람은 삶의 모든 문제에 백기를 든 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한 신념을 표현한다. 자살이 언제나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복수라는 점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살도 우월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자살을 택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린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극도로 잔인하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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