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월요일

절망해야 희망이 생긴다.

이문열 <사람의 아들>
"이제 너는 신앙할 수 있다, 절망했으므로. 살 수 있다. 죽었으므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마저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내 기준에는 참 나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도 많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도 많지만, 많이 다르고, 이해할 수 없고, 껄끄럽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과연 이런 사람들 모두와 함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많았다.

아직도 많이 두렵다.


하지만 내가 많이 절망할 수록 희망이 보일거라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겪을 수 있는 만큼의 한계까지 절망하고 나면, 비로소 그 자리에서 딛고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


간혹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그 사람은 애초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있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고, 나는 두려움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불운아라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내가 사람을 그만큼 잘 몰랐다는 증거일 것이다.

모르면 두렵운 법.

부딛혀 알아갈 수록 상상이 만들어낸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며, 실망할 만큼 알고, 절망할 만큼 알았다면 충분히 알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무지로 인한 상상의 두려움도 없을 것이기에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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