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만 모여 있는 집안에서, 이웃들과 마주칠 수 있는 집 앞의 동네,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큰 길거리와 공공 장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적절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적절하다는 모호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바꾸어 말하자면 최소한 가려서 남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사람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서로간에 노출이 가능한 정도가 묵시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듯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친밀도에 의해 가능한 노출의 정도가 결정되곤 한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의 노출 정도 또한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사실(?)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는, 누구도 명시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가르쳐 주거나 선언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 본 바로는 그렇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즐거움은 비교적 넓게 노출이 허용되는 감정이긴 하지만, 이 역시 제한되는 관계가 있다.
슬픔과 분노는 훨씬 더 노출이 제한되는 감정임에 틀림없다.
서로간에 묵시적으로 합의된 감정의 노출제한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의 당혹감은 마치...
꽤나 격식을 차리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웃통을 벗어 제치고 바지를 내린다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중요하고 숨기고 싶어할만한 부분을 보여준다면?
마찬가지로 사무적인 관계, 공적인 관계의 사람이 지극히 내밀한 감정을 보여준다면?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우호적이어야 하는 관계를 가져야 하는 관계에서 분노가 표출된다면?
허용된 노출은 쉽게 무마되고 복구된다.
하지만 제한을 넘긴 감정의 노출은 관계의 재설정을 요구한다.
상호간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감정 노출의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얘 관계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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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출의 제한이 비대칭 적일 수 있다.
즉, 특정 쌍방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도 감정 표현의 제한이 방향에 따라 다르게 설정된다는 것.
종종 부모와 자식간에 이런 경우가 많으며, 상하 종속적인 관계에서도 흔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간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노출 제한은 다른 경우가 많다.
매우 엄한 선생님과 순종적인 학생과 같은 전통적인 스승-제자의 관계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애착과 분노를 보일 수 있지만 슬픔과 기쁨을 보여주는 것은 제한될 수 있고, 제자는 스승에게 기쁨과 슬픔은 허용되지만 분노는 제한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감정의 노출 제한이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두고 상하관계, 지배-종속의 관계라고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한 것 같다.
하지만 지배-종속관계에서는 감정의 노출 제한이 비대칭적이 된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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