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중앙에 몇개의 상가가 있다.
썩 활발하진 않지만 산책로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왕래는 꾸준한 그런 곳 이었다.
여기에 작은 동네 슈퍼마켓이 있었고 나도 몇번 이용을 했던 터라 주인 아저씨와 안면도 있었다.
한동안 이용이 뜸했다가 한참만에 가보니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곳에 또 하나의 슈퍼마켓이 이었다.
그런데 새로 개점을 한 슈퍼에 예전의 주인 아저씨가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장사가 잘되서 슈퍼를 두 개 모두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안면이 있는 주인 아저씨를 보고 새로 개점한 슈퍼에 들어가서 몇가지 물건을 사면서,
'저 쪽에 있는 예전의 슈퍼는...' 슬쩍 물어보니,
주인 아저씨의 표정이 급속히 어두워지시며 '쳇, 나도 몰라요'라는 분노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다시 한참만에야 늦은 시각에 그 곳을 지나게 되었다.
슈퍼에 볼 일은 없었지만 지나치며 보니 그 주인 아저씨가 혼자서 슈퍼에 서 계신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져 인적이 뜸해진 거리,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무엇인가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처럼, 다소 경직되어 보이던 그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측은하게까지 보였다.
최근의 내 상황과 묘하게 교차되기도 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위층의 시도 때도 없는 쿵쿵거리는 발소리, 의자 끄는 소리, 깜짝 놀랄 정도의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 등이 순간순간마다 증오를 불러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소리 자체가 나의 귀를 괴롭히는 것 보다, 그로인해 생겨난 증오가 나를 더 괴롭히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모쪼록 그 주인 아저씨가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슈퍼에 대한 증오만 없애도 훨씬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지나친 절약의 문제
가계의 소득이 물가상승률을 미치지 못할 때,
그리고 가계 소비의 주체가 그것을 체감하게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불요불급한 소비를 하지않으려 하고, 반드시 필요한 소비에 대해서도 보다 저렴한 소비방법을 찾게된다.
너무도 당연하며, 어찌보면 거의 기계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본 소비 단위인 하나의 가계만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바람직한 행동양식이겠지만, 모든 소비 주체를 엮어 생각하고, 생산자와의 연관 관계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이 순환 시스템에서 자신의 소비 감소는 결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개인들의 소비에 의존하는 생산자들을 생각해 보자.
생상자들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소비 절감 행위에 맞추어 반응할 것이다.
생산자들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줄일거라 생각하는가?
생산자가 자신의 이익을 줄이는 행위는 자멸을 향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최후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생산자들은 먼저 자신들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저렴한 원료/부품을 사용하거나 인건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재화나 서비스의 질 하락을 가져오며, 동시에 근로자의 소득 하락을 가져온다.
재화나 서비스의 질 하락은 결국은 비용의 증가를 가져오고, 근로자의 소득하락은 다시 가계 소득의 하락으로 이어져서,
생산과 소비의 순환 시스템이 더욱 빠르게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상의 악순환에서 개인/가계의 소비자는 피해자이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보일 수 있다.
반면에 생산자는 가해자이며 착취하는 자본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생산자 또한 피해자가 된다.
결국의 소비자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게 되면 생산자의 이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이익률이 중요할까 절대 이익의 양(금액)이 중요할까?
이익의 양(금액)이다.
규모가 100일 때의 이익률이 20%라서 20의 이익을 올렸던 생산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100을 추가로 투자해서 규모를 200으로 늘렸을 때 이익률이 15%로 줄어든다면 이 생산자는 투자를 할까 말까?
10중 8,9는 투자를 할 것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이익률이 높으면 좋겠지만 이익률이 첫번째는 아닌 이유이다.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매출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소비의 감소는 매출의 규모 감소로 이어지고,
이익률은 올라갈지 몰라도 이익의 양(금액)은 줄어들어서 결국은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1997년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
한국의 원화 가치는 폭락하고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급락하면서,
기업들은 아주 당연한 행동양식을 보였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도입이 그것이었다.
조기에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외부로부터, 그리고 스스로 칭찬해 마지 않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자유로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비용을 줄여서 얻은 경쟁력을 해외로 까지 널혀가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의 회전반경을 넓혔던 것이다.
이젠 돌아올 부메랑을 받아야 할 시기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
기업들도 이걸 알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들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지나친 절약의 부메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달콤했던 이익의 감소를 포기할 용기가 있을지가 문제일 따름이다.
그리고 가계 소비의 주체가 그것을 체감하게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불요불급한 소비를 하지않으려 하고, 반드시 필요한 소비에 대해서도 보다 저렴한 소비방법을 찾게된다.
너무도 당연하며, 어찌보면 거의 기계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본 소비 단위인 하나의 가계만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바람직한 행동양식이겠지만, 모든 소비 주체를 엮어 생각하고, 생산자와의 연관 관계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이 순환 시스템에서 자신의 소비 감소는 결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개인들의 소비에 의존하는 생산자들을 생각해 보자.
생상자들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소비 절감 행위에 맞추어 반응할 것이다.
생산자들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줄일거라 생각하는가?
생산자가 자신의 이익을 줄이는 행위는 자멸을 향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최후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생산자들은 먼저 자신들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저렴한 원료/부품을 사용하거나 인건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재화나 서비스의 질 하락을 가져오며, 동시에 근로자의 소득 하락을 가져온다.
재화나 서비스의 질 하락은 결국은 비용의 증가를 가져오고, 근로자의 소득하락은 다시 가계 소득의 하락으로 이어져서,
생산과 소비의 순환 시스템이 더욱 빠르게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상의 악순환에서 개인/가계의 소비자는 피해자이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보일 수 있다.
반면에 생산자는 가해자이며 착취하는 자본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생산자 또한 피해자가 된다.
결국의 소비자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게 되면 생산자의 이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이익률이 중요할까 절대 이익의 양(금액)이 중요할까?
이익의 양(금액)이다.
규모가 100일 때의 이익률이 20%라서 20의 이익을 올렸던 생산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100을 추가로 투자해서 규모를 200으로 늘렸을 때 이익률이 15%로 줄어든다면 이 생산자는 투자를 할까 말까?
10중 8,9는 투자를 할 것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이익률이 높으면 좋겠지만 이익률이 첫번째는 아닌 이유이다.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매출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소비의 감소는 매출의 규모 감소로 이어지고,
이익률은 올라갈지 몰라도 이익의 양(금액)은 줄어들어서 결국은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1997년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
한국의 원화 가치는 폭락하고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급락하면서,
기업들은 아주 당연한 행동양식을 보였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도입이 그것이었다.
조기에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외부로부터, 그리고 스스로 칭찬해 마지 않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자유로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비용을 줄여서 얻은 경쟁력을 해외로 까지 널혀가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의 회전반경을 넓혔던 것이다.
이젠 돌아올 부메랑을 받아야 할 시기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
기업들도 이걸 알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들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지나친 절약의 부메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달콤했던 이익의 감소를 포기할 용기가 있을지가 문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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