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버지께서 여든번째, 팔순 생신을 맞게 되십니다.
가족끼리지만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선물 대신에 생신축하금을 드리자고 형제간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처음엔 각자 5만원권을 새것으로 10장씩 준비해서 모아 드리자고 했는데,
5명의 형제가 각자 빳빳한 신권을 구하는 것도 인력 낭비요,
그렇게 모으면 제각각이라 신권의 맛도 나지 않을 것 같아 제가 대표로 5만원권 50장을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한 것이 목요일 저녁...생신 축하는 일요일...
여유는 금요일 하루 뿐이었고 이건 의외로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
금요일 오전에 동네에 자주 거래하던 우리은행을 찾아 갔습니다.
250만원을 5만원짜리 신권으로 교환해 달라하자 선선히 처리를 해주던 텔러분을 보면서,
전일 밤에 공연히 이런저런 고민을 했구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5만원권이 처음 발행 시에 문제가 있어 이를 보완하여 다시 나온 것이 있었고, 이를 구권과 신권으로 구별하여 불렀던 것입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빳빳한 새 돈을 구하려면, [미사용 신권] 혹은 [일련번호가 이어진 신권] 등으로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용어의 오해를 풀고 다시 살펴보니, 그나마 새것에 속하는 것들을 모아봐야 30~40장이 전부였고 일련번호 따위는 맞을 턱이 없었습니다.
텔러분께서 근방의 같은 은행 지점에 연락해 보았으나 주변 은행도 마찬가지로 미사용 신권을 구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옆 건물에 KB은행이 있으니 그곳에 한 번 가보시라는 조언을 따라 KB은행으로 가 보았습니다.
2)
KB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신권은 손님들이 맡긴 돈 가운데 새 것의 뭉치가 있으면 그것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이것도 40장이 전부였고, 일련번호 따위는....
전날 밤에 고민한대로 여기서제일 가까운 한국은행 강남본부를 가아겠다 생각하고, 텔러 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은행에 가면 일반인에게 신권 교환을 해 주느냐고.....그런데 잘 모르시더군요.
암튼 강남으로 출발.
3)
한국은행 강남본부는 역삼역에 인접해 있는데, 주차장이 있으나 요일제를 신청한 차량만이 주차가 가능하다더군요. 그래서 인근의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거대하고 시커먼 자동 유리문이 가로 막고 서 있습니다.
내부를 보여 주지 않으려는 듯 한 위압감,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고, 주차장도 지하에 있어선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이 땅의 절반은 그냥 화강암으로 심플하게 깔아놓은 차도와 휴식공간 그리고 매우 절제된 조경수...
정말 사람 없습니다. 감히 접근하기 무서울 정도...
그런데 자동문에 열리지 않습니다. 문의 옆에 마그네틱 센서가 있고, 출입증을 갖다대야 열린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입구로 돌아가 거기에 서 계시던 경비원게 여쭤보니, 신분증을 맞기면 출입증을 준다고 합니다.
출입증 받아서 자동문 통과하고 알려주신 대로 1층으로 이동하니(제가 들어온 곳은 3층), 거기에 다시 경비원 분이 계시고 신권 교환하러 왔다고 하자 바로 안내 해주시더군요.
아..이제 다 된거다...의기양양하게 들어가서 보니 일반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직원분들도 식사하러 가셨는지 자리가 많이 비어있더군요.
일단 신청서의 5만원권 란에 \2,500,000을 적고 하단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창구에 제출하니 1인 교환 한도가 있답니다. 뜨어~~억
5만원권은 100만원, 1만원권 100만원, 5천원권 50만원 이런 식으로...
결국 제가 교환 가능한 것은 5만원권 20장이 다라는 말씀.
직원분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완강하시더군요.
그곳은 강남 한복판...은행들도 모여 있고, 기업들도 모여있고, 사람들도 많으니 신권을 구비한 은행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저는, 일련번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은행을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저는 3층에서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왔는데, 신권교환소가 있는 1층에 바로 출입문이 또 있었고 그곳으로 출입하는 일반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좀 있다가 다시...
4)
한국은행을 나와 테헤란로를 지나면서 보니 신한은행, KB은행, 우리은행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이곳에 들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 은행들도 큰 건물에 입주해 있을 뿐, 사정은 동네에 있던 은행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은행, KB은행, 신한은행을 모두 들러보고 빈손으로 나오며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5)
빳빳한 신권은 오히려 명절에나 구하기가 쉽지, 그렇지 않은 시기엔 일반은행에서 신권을 구하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처럼 운에 따른 일이다.
한편으론 돈이란 것이 얼마나 그럴 듯해 보이지 않고 얼마나 천박해 보였으면, 빳빳한 신권이라는 것으로 포장을 해야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겠냐...
6)
다시 한국은행 강남본부로 갔습니다.
일반은행에서 미사용 신권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으며,
아버지의 팔순이라는 사정을 해 보거나, 다른 형제의 명의를 함께 사용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이도 저도 안되면 한도금액이라도 교환을 하고, 경기도에 있는 한국은행에도 가서 또 교환을 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까 보았던 1층의 출입문은 어떤가를 보니, 역삼역의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것이 그 출입문이었고, 이곳은 경비원 두명이 있으며 신권 교환인은 바로 교환소로 안내를 해 주기에 신분증, 출입증 다위의 절차가 없었습니다.
교환소에 다시 가 보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분들로 자리는 많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교환신청서에 형제 3명의 이름으로 각각 5만원권 100만원, 100만원, 50만원을 적어서 창구에 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단호하시더군요.
역시나 제 능력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5만원권 20장, 1만원권 50장을 교환하고 나왔습니다.
7)
신권 교환의 액수에 제한을 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아버지의 팔순 생신 축하금이거나, 자식의 결혼식 축의금이거나, 등등 많은 사연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이걸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단호하게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제한액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이 그저 담당자의 임의판단에 맡긴 듯한 처사는 잘못된 것 입니다.
제한액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고요?
5만원권 100만원? 이 제한이 하루 동안의 제한인가요? 한 번 방문시의 제한인가요?
1분만에 다시 방문해서 교환을 하는 것과 1시간 후 다시 방문하는 것, 5시간 후 다시 방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교환신청서에 제출하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신분을 명확하게 밝힐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중복 방문을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구분할 명확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고 다시 신청하는 건 어떤가요?
혹은, 옷을 바꿘 입거나 안경 모자 등을 이용해 담당자의 눈만 속일 수 있다면 어떤가요?
이 모든 것이 신권 교환을 담당하는 분의 임의 판단에 맡겨진 것입니다.
이런 헛점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며, 헛점을 이용했을 때 제재할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
제한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하는 수요(욕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욕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욕구를 압도하는 강함이 필요합니다.
저 허접하고 빈틈이 많은, 그저 임시규칙과 같은 것으로 욕구를 압도할 수 있나요?
평생 처음으로 한국은행에 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올 일이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단호한 규정의 적용이 타당한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기계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겠더군요.
오늘 그 담당자 분을 보면서, 규정을 지키는 것이 본인에게는 제일 편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구요, 규정대로니 업무상 과실도 없을 거구요, 공연한 자기 딜레마에 빠지지도 않을 거구요....
8)
한국은행 경기본점으로 향했습니다.
수원의 장안문 근처에 있는데,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출발한지라...
대충 아는 곳 까지 와서 근처의 파출소에 들어가 길을 물었습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순경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쉽게 찾아갔습니다.
한국은행 경기본점은 입구가 하나뿐이고, 요일제 차량이 아니어도 주차가 가능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려 하자 차단기를 올리며 경비원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는지 묻습니다.
신권교환하러 왔다고 하자, 주차하고 와서 출입증 받아서 들어가라고 합니다.
출입증 받아서 들어가자 건물 안에 경비원께서 또 안내해주시고...
나머지 5만원권 20장 신권으로 교환했습니다.
9)
암튼 한국은행에서 신권 교환하기의 결론입니다.
- 한국은행강남본점
: 역삼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이 젤 좋다.
신권교환의 제한이 있다. 5만원권 100만원, 1만원권 100만원, 5천원권 50만원...
(5만원권* 20장 + 1만원권* 100장 + 5천원권 * 100장 = 250만원과 같이 교환도 가능하다.)
교환해야 할 금액이 더 많으면 동반자를 데리고 가라.
여의치 않으면 아침 일찍 한번 가고 오후 늦게 또 한번 가라. (9:00 ~ 16:00)
만약 차가 있다면 옆에 우리은행에서 볼 일을 하나 만들어서 무료 주차를 해도 좋다.
- 한국은행경기본점
: 주차 용이함.
교환 권면수 제한은 위와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