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영화 - 넷플릭스 - 유튜브

언젠가부터 영화를 덜 보게 되었다.

내 삶에서 TV를 빼 버려서 더 가속화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영화 한편을 진득하니 감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금전의 문제도 아니고, 음향 화질의 문제도 아니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이의 문제도 아닌 듯 하였다.

그냥... 영화 한편을 보려고 생각하면, 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대단한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참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물질적인 준비 보다는 심리적인 준비)


대체 왜 이리 된 것일까?


그러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건, 너무나 번거롭고 많은 댓가를 치뤄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영화를 본 후에 내가 얻을 것에 대해 더 많은 기대를 하고,

그래서 또 다시 더 큰 실망을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듯 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한동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이나 대사들을 따라가지 못하니 자꾸 앞에 놓친 장면들이 맘에 걸려서, 뒤의 내용을 감상하지 못하나 보다.

눈이 어두워져서 시각적인 자극이 둔감해져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아주 일부일 뿐이 아니었나 싶었다.


과연 영화가 우리에게 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린 영화에서 무얼 기대했던 것일까?

정말 볼거리 즐길거리 없던 시절에 영화가 채워주었던, 사람들 마음 속의 무언가...

그걸 영화가 채워주었다 싶은데, 그 실체는 모르겠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같은 어떤 욕망이 있었고, 그게 영화로 채워졌나 보다 생각할 뿐이다.


아마도 그 욕망은, 멀리로는 연극이나 오페라로 채워졌을 지도 모르고, 더 멀리로는 책이나 이야기로 채워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직도 연극 오페라 책 따위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위상이나 지위는 오래전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영화는, 사람들 마음 속의 그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 왔고, 영화로 채워진 그 욕망들은, 연극 오페라 책에 대한 갈망을 그 만큼 감소시키지 않았을까?


이제 영화는 그 욕망의 해소 지위를 가정용 VOD와 유튜브에 넘겨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와 같은 컨텐츠 사업자는 영화라는 컨텐츠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극장을 집으로 옮겨놓는 역할을 했지만, 이건 장소만 잠시 바꿔주는 역할을 할 뿐,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고 극장과 비슷한 운명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이제 영상 컨텐츠는 장소/시간/주제의 제약이 없는 유튜브로의 전환을 맞이한 듯이 보인다.


그 욕망이라는 것이 무제한의 욕구를 가진 것은 아니라서, 일정 정도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이상은 시들해지는 듯 하다.

그래서 이제 유튜브로 그 욕망을 채운 이후에는, 영화에 대한 욕구가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영화 보기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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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최근 영화에 대해 시들해진 나의 마음에 대한 분석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변화는 다른 쪽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동향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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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에 대한 욕망의 해소를 위해 포르노 동영상이 담당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그 외의 성욕 해소를 위한 행위의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성매매, 성폭행과 같은 네거티브한 사회적 요소의 감소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결혼(출산) 적령기 남녀의 연애나 결혼과 같은 포지티브한 사회적 요소 또한 감소하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까?

물론 이에 대한 대규모 통계적 조사가 존재하는 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아니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도,

충분히 고려해보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적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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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연극 오페라 책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튜브와 같은 짧고 간결하고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나와도 영화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포르노 산업이 커진다 해도 여전히 성매매와 성폭력은 남아 있을 것이며,

결혼과 출산이라는 행위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2020년 8월 22일 토요일

2020년 8월 의사 집단 파업

COVID19로 인해 발생한 판데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에서는 이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내년(2021년) 말까지 계속되리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 예측이 빌 게이츠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00819/102560796/1 )


이로 인해서 정부에서는 의료 인력의 확충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현재 의대 정원의 10%를 향후 10년에 걸쳐 증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발표와 함께 의사회는 즉각적인 반발을 하였고, 강경한 정부의 의지에 대응하여 결국 집단 파업(휴진)을 1차례 실행하였고, 앞으로도 자신들의 의지가 관철될 때까지 추가적인 집단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현재 의대에 재학중인 전공의들까지 파업에 가세하여 그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일반인인 나로써야 이런 갈등과 대치에 대해서 뭐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당사자인 정부와 의사회가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여 원만하게 사태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스러운 점, 아니 두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다.

  1. 아직까지 일부의 몇몇 사례를 제외한다면, 대한민국에서의 일반적인 의료 체계는 꽤 안정적인 듯 하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 상당히 높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번의 갈등과 강대강 대치로 인해서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들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있으며, 이걸 알게된 국민들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들에 대해서 두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이후에 국민들이 한 사람의 환자로 의사를 대면하게 될 때에 일정한 정도의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됨을 의미한다.

  2. 두번째는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의사회가 내보인 그들의 깊숙한 속마음의 본질 때문이다.
    늘어나는 의대 정원이 결국은 자신의 경쟁자가 되어 개별 의사들의 소득을 끌어내릴 것이라는 본심은, 결국 졸업을 앞둔 전공의들에게 보여주는 발톱과 같은 것이며, 이웃에 개원한 동료 의사에게 내보인 이빨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의 본질은, 정부에서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공공 의료진을 확보하고자 하지만, 의사들은 개인 사업자로써 생존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에 자본주의적인 욕망의 추구는 당연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공공으로써의 의무와 개인의 자유와 욕망의 추구라는, 함께 하기 어려운 두가지 측면을 하나의 의사에게, 그것도 다수의 의사에게 기대하기에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 보자면, 향후에 의과 대학은 이분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공공 의료기관에서 공무원처럼 정부의 월급의 받고 정부의 공공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 공무원과 개별적으로 영리추구를 하며 의료 행위를 하는 민간 의료원으로.
공공 의료는 건강 보험료의 적용을 받으며 운영되고, 민간 의료는 건강 보험료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식으로.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시간에 관하여....시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2]

최근에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유튜브를 자주 보고 있다.
유튜브의 컨텐츠들이 금전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어서인지, 재미있고 흥미를 유발하는 컨테츠가 많아지고 있어 자연스레 유튜브를 보는 시간은 늘어가고 있다.

어떻게 이 채널이 나에게 추천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처음 이 채널의 이 영상을 보고, "허...참... 신기하다"는 작은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아 그랬구나, 내가 이랬구나, 그걸 참 잘 설명하네, 나이도 많지 않고 젊어 보이는데 참 기특하네 했던 기억.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 개인적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 영상을 기회로 나탐(나 탐구 생활)의 채널을 구독하고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채널에서는 초창기에 주로 다루던 주제가 "유체이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젊은 시절에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냥 하는 상상의 얘기려니 했던 정도의 주제인데, 이 똘똘하고 젊은 사람이 유체이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스레 이 채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애써 유체이탈은 무시하고 다른 일상적인 부분과 관련된 칸텐츠만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주제가 묘하게 겹치는 컨텐츠(윤회 전생)가 있다보니 결국은 유체이탈 부분까지 조금씩 보게 되었다.

문제는, 이 채널에서 유체이탈이 아닌 일상적인 콘텐츠에서도 사용하는 "단어"가 나를 거슬리게 만들었는데, 그건 바로 "현실 창조"라는 것이었다.
내가 받아 들이기로는, 내가 마음을 먹으면 같은 현상(대상)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하는 데, 왜 그걸 "현실 창조"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걸까하는 껄끄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앞서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 잠깐 빠트린 것이 있는데,
[신과 나눈 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즉, 무언가 간절하게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약간은 황당하기까지 한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너희가 진실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는 성경적인 문구와 함께 나왔던 것인데, 인간의 마음 혹은 생각이 바로 창조의 힘이 되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시크릿]이라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만 책으로 출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신이 말한 이 내용은 어딘지 나탐의 "현실 창조"라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다시 나탐의 채널로 돌아와 보자.
채널의 다른 영상을 보던 중에, 여기에서도 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들었다.
그게 어떤 영상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이게 아닐까 한다.

이 영상에서 또 다시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무시하기 보다는 고민을 했다.
정말, 대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걸까?



여기에 영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추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컨택트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컨택트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고, 언어나 소통의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

시간에 관하여....시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1]

최근에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다가 굉장히 충격적인 동영상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이 채널은 주로 물리학의 이론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컨텐츠를 다루는 곳으로,
평소에 관심이 있던 양자역학과 초끈이론에 관한 영상을 먼저 접했다.

그러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동영상으로 위의 영상이 올라왔는데, 제목부터가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통해서 한가지 나만의 가설(?)이라고 해야 할 지, 나만의 추론이나 직관에 의한 상상이라고 해야 할 지, 아무튼 이 가설은 그 동안 내가 풀지 못하고 있던 많은 장벽을 일시에 무너뜨려 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아직은 이 영상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지 않으므로, 섣불리 요약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상을 통해 내가 얻은 가설 또한 아직은 더 많이 보충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므로 다음으로 미룰 것이다.


이제 부터는 내가 개인적으로 시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경위와 거기서 발생했던 의문점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2010년 즈음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마이클 뉴턴이라는 사람이 쓴 [영혼의 여행]을 읽었다. 불교나 흰두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와 같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기술한 책인데, 나름대로 윤회에 관한 여러 의문점들을 잘 설명하고 있었고(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 하지만), 그 주장들 사이의 모순도 없어 보이고, 우리가 익히 알던(들어왔던) 여러가지 사실(?)들과도 잘 연결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것이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는 경우였을지 모른다.(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의 어떤 부분에선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언급을 봤었다.
당시에 이 부분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무엇이고, 앞으로 올 미래는 무엇이란 말이지?
아마도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고 약간은 의심해 보기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 이후에 읽었던 책들은, 옴넥 오넥의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이 있었고,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가 있었다.
이 두개의 책에서도 역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시간의 개념에 대해 꽤 비판적인 입장을 표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지구인들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거기에 시분초 나 년월일 같은 단위를 마음대로 붙여서 사용한다는 것을 마치 굉장히 미개한 것처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2년이 가까워 오자 지구 대종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 당시에 읽었던 책은 김재수의 [2012 지구 대전환], 김인자의 [하늘이 전해준 빛세상 이야기], 김재훈의 [5차원 우주과학의 비밀] 등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따라왔던 이 영적인 존재에 대한 탐구의 여정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스티븐 그리어의 [은폐된 진실, 금지된 지식:UFO와 그림자 정부, 그리고 지구의 운명]도 읽었지만, 이후 부터는 이런 잡히지도 않는 헛된 것을 쫓는 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했던 듯 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 책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다른 책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던 누이에게 더 이상 이런 책들에는 관심이 없다며 짜증 비슷하게 냈을 정도였으니까...

이후 한동안은 명상이나 종교철학, 일반철학, 물리학 따위로 관심을 돌렸다.


앞서서 읽었던 책 가운데, [영혼의 여행] [나는 금성에서 왔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정말 이해도 안되고, 오히려 책과 저자에 대한 신뢰도만 떨어뜨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혹은 이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은 머리속의 고민에서도 점점 잊혀져 갔던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

2020년 7월 2일 목요일

뒷산을 오르며...2

예전에 열심히 다닐 땐, 하루 걸러 한번씩 오르기도 했던 산이지만,
이젠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허벅지에 만들어진 근육이 좀 말랑말랑 해지는 듯 해서 다녀온지 4일만에 또 올랐다.
이번에 평일 이른 아침. 6시 30분쯤.


  • 지난 번에 오를 때도 봤지만, 여기 저기에 매미 나방이 많이 보인다.
    큰 나무에 몇마리가 모여서 딱 붙어 있고, 그 몇마리 틈새로는 갈색의 알이 보인다.
    그땐 몰랐고,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게 매미 나방과 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해충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특히 등산로 중간에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서어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워낙에 나무가 매끈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 일부는 반질거리기까지 한다.(경사로에 있어 사람들이 그 나무를 이용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지탱하곤 한다.)
    그 나무에도 매미 나방이 여러마리 붙어 있어서, 이번엔 떼어 줘야지 생각했다.
  • 깔딱고개를 오르고 나서 좀 쉬려고 벤치가 있는 곳에 앉았다.
    마침 먼저 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운동을 하고 계신다.
    Y자 모양으로 갈라져 뻗은 나무에 양손을 지지하고 몸을 당겼다 밀었다 하시는 중.
    그런데 그 나무가 경사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르신의 반대편은 뿌리가 반쯤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작지 않은 나무니 당장은 문제가 없어도, 저런 일이 반복되면 나무가 쓰러지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시고 난 후에,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주관하는 여가/취미 과정에 참석을 많이 하시는 데,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 지원을 받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실 때면, 가끔 눈에 보이는 '진상'들이 있는데,
    양에 넘치는 음식을 가져와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가 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받아와서 일부를 따로 싸서 가져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런 분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무료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임에도 그런다고.
    뭐 싸가지고 저녁에 또 드시려나보다 했지만, 어머니 보시기엔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 자주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에 유난히 불편해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좀 쉽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던 사람에게, 오랫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상대방의 반응이 조금은 시큰둥함을 느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얘기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었음을 알고 속으로 꽤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 그리고 오늘 이 산에서, 난 또 그런 나의 성향으로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떨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런 행동은 이렇게 좋지 않습니다 말을 한들, 그걸 바로 수긍하며 들어 줄 사람도 적을 뿐더러, 내가 항시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감시하며 참견하지 않는 이상은 그 나무를 지켜 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는 사람들이 두 손으로 지탱하기 좋은 모습을 가지고, 그런 경사에 있었다는 이유로, 종종 사람들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버티다가, 이내 뿌리를 노출되고 약해져서 쓰러지거나 말라 죽기 쉬운 운명으로 태어난 듯이 보인다.
    아마 내가 오지랖을 부렸어도 그 나무의 운명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겠다 싶었다.
  • 계속해서 산을 오르다보니 매미 나방이 더 많이 보였다.
    처음에 가졌던 생각처럼 이 매미 나방을을 죽이고 알을 최대한 없애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이 나방은 날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나무에 착 붙어 있는데, 크기는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이고, 몇마리가 겹치다시피 뭉쳐 있다.
    사실 저걸 어떻게 죽이나, 나무로 건드리면 갑자기 날아가지 않을까, 낮은 곳은 발로 밟을까, 독이 있다는데 무슨 해를 입지 않을까, 갖가지 생각으로 망설여지기도 했다.
  • 하지만 그 보다는, 그 나무의 운명과 같이, 내가 어떤 생명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인간에게는 해충이라고 하지만, 어떤 생명에게는 익충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다람쥐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고, 새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보이는 몇몇 매미 나방을 죽인다 해도 이 산의 매미 나방 숫자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못할 뿐이고,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비록 자기 합리화일 뿐일 수도 있지만)

2020년 6월 24일 수요일

뒷산을 오르며

날씨가 더워지니 집안에 지내기가 답답하다.
주말 오후에 뒷산에 올랐다.

제법 힘이 드는 산행이고,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객도 많았고, 가족들이 함께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1. 깔딱 고개를 힘겹게 헉헉거리며 오르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젊은이가 있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많은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다.
    산에는 저런 젊은이는 잘 오지 않는다. 약간 숨은 차지만 거뜬하다는 표정.
    오르다 말고 뒤를 내려다 보더니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경사로 계단에 앉았다.
    (지자체에서 방부목과 삼베로 엮은 가마니 같은 것으로 경사로의 계단을 만들었다)
    학생에게 거기 앉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만약 경사로 위에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굴러 떨어지면 다칠 위험이 있다고...
  2. 산 정상에 올라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까의 그 남학생과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올라 왔다.
    정상의 표시석을 보고 아버지는 학생에게 여기 서보라며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하지만,
    남학생은 쭈뼛거리고 손사래를 친다.
    아버지가 함께 찍자고 표시석 옆에 서서 셀카 자세를 취하자 그제서야 마지 못해서 옆에 선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말을 건네자 흔쾌히 스맛폰을 건네 주신다.
    사진을 찍어 드리고 학생에게 한마디 또 건넨다.
    아버지가 찍자고 하면 찍는 거야. 이것도 얼마 안남았어.
    나중에 생각하니 공연히 꼰대짓 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 학생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 거였고,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던 거였다.
  3. 이제 슬슬 하산을 하고 있는데, 저기 아래쪽에 두명의 아이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5살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아버지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지나가며 보니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큰 아들은 뭔가 삐쳐 있어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었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약간 눈치를 보는 듯한 상황. 아버지도 뭔가에 화가 난건지 근엄한 표정.
  4. 큰 아들은 아버지와 거리를 두며 먼저 내려 갔다가,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리지면 좀 기다리고, 다시 거리가 좁혀지면 먼저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이 큰 아들과 몇번 눈이 마주 쳤는데, 얼굴을 보니 만만해 보이는 성격이 아닐 듯 했다. 앙 다문 입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눈매의 날카로움은 불같은 성격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봤는데, 이 아버지도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보였다. 어쩐지 아들과 닮은 듯 하면서도 조금은 달라 보였다.
    아마도 아들들이 어머니를 더 닮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꽤나 자주 충돌하겠다 싶었다.
  5. 그 아버지와 아들의 불편한 사이는 보는 나로 하여금 꽤 불편함을 일으켰다.
    그냥 싸워서 분위기 안좋네, 얼른 화해하지 이런 정도의 불편함이 아니라,
    굉장히 우울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그것이 이번 한번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었을 거라는 예감, 온 집안에 감도는 긴장감,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하는 가족들...
  6. 산을 다 내려와서 보니, 공원의 공터에서 한무리의 소년들이 공차기를 하며 뛰어 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총 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급수대 아래쪽에 물이 홍건히 고여 있었다.
    한 남자 아이가 급수대에서 물병에 물을 담고 있었는데, 그게 물을 담는건지, 물 장난을 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옆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마침 공차기를 하던 무리의 공이 급수대 쪽으로 굴러왔고, 고여있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일부가 당황하는 듯 하더니, 그 중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기서 물장난 하지 말라고!
    뭐 물장난이 물을 좀 보탰을 지언정, 물장난 때문에 물이 고인건 아닌거 같고, 물이 고여 있으니 언젠가 공이 물에 빠지는게 당연해 보이는데도 물을 받던 소년에게 화를 낸 것이다... 사실 소년이 물장난을 안해도 물은 빠지지 않고 고여 있었다.
    옆에서 이걸 보다가, 왜 화를 내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소년이 참 어이가 없었다.
    아까 산에서 보았던 부자의 모습이 또 다시 떠올라 조금은 더 우울해졌다.

2020년 6월 5일 금요일

[영화] 기생충

너무나 유명해진 영화
드디어 봤다.

헐리우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오스카 상 수상에 불만을 표한 이유도 알만 했다.

아시아 특별 전형이라거나 지역 균형 수상이라는 표현도 가능은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영화는, 일단 재미는 있다.

마치 영화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처럼 잘 짜여진 사기극을 벌여가는 일가족의 능수능란함.

그리고 이들의 사기극이 탄로나지 않을까 계속 마음 졸이며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이런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사기꾼 가족을 불안하게 만든 건 "냄새".


중반 이후에 영화의 반전이 시작되고 이후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막장으로 치닫는 몰락.

그 몰락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들.


신분 상승과 몰락

희망의 차오름과 절망의 차오름

짜릿한 오름과 아찔한 추락

감정의 오름과 내림이 현란한 영화다.


냄새, 햇빛, 물
중요한 요소들


많은 평론가들의 해설과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렇게 들으니 참 오묘하기도 하며, 잘 짜여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세심하게 관찰해서 나온 분석적 결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관심을 받으면 더 놀랄만한 작품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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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어느 평론가의 분석은,
가난하지만 웃고 있는 기택의 가족 vs 부유하지만 웃는 표정이 적은 박사장의 가족
개개인이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가족 vs 별 능력 없는 박사장의 가족
법을 어기고 사기를 밥 먹듯 치는 가난한 가족 vs 법을 지키는 부유한 가족
이렇게 기존의 선악, 빈부, 서민과 특권층의 프레임의 특징을 꼬아버려서 참신함과 불편함을 유발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꽤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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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니 종종 평론가들의 분석과 평가에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너무 영화에 눈이 멀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반 관중은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본것만을 생각하고 느낀 것만을 얘기하는데, 평론가나 영화 관계자들은 그것 이전의 과정, 즉 제작의 단계부터 공감을 하는 듯 하다.
대체 이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했으며, 이런 얘기를 이렇게 풀어나가는 것이나, 이 상황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를 감탄하는 듯 하다.
음악으로 치자면, 일반인은 음악을 듣고 오 마음에 든다, 좋다, 혹은 별론데, 그냥 그렇군 이런 생각에서 머물지만, 같은 음악인 입장에서는 이런 멜로디 진행은 무엇과 비슷하니 평범하고 박자만 약간 변형을 준 것이네, 혹은 이런 멜로디 조합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 낸 것이냐, 이런 음의 조합이 이런 느낌을 주는 걸 어떻게 알고 만들었을까 이런 식으로 평하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이런 걸 보고 아는 만큼 보이네, 일반인 눈에는 안보이는 거야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중문화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런지.
만약 그들이 말하는 그 경지에 이르렀을 때, 단순히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희열의 요소가 있다면 그 경지가 대중에게도 필요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