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3일 목요일

시간에 관하여....시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2]

최근에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유튜브를 자주 보고 있다.
유튜브의 컨텐츠들이 금전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어서인지, 재미있고 흥미를 유발하는 컨테츠가 많아지고 있어 자연스레 유튜브를 보는 시간은 늘어가고 있다.

어떻게 이 채널이 나에게 추천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처음 이 채널의 이 영상을 보고, "허...참... 신기하다"는 작은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아 그랬구나, 내가 이랬구나, 그걸 참 잘 설명하네, 나이도 많지 않고 젊어 보이는데 참 기특하네 했던 기억.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 개인적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 영상을 기회로 나탐(나 탐구 생활)의 채널을 구독하고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채널에서는 초창기에 주로 다루던 주제가 "유체이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젊은 시절에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냥 하는 상상의 얘기려니 했던 정도의 주제인데, 이 똘똘하고 젊은 사람이 유체이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스레 이 채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애써 유체이탈은 무시하고 다른 일상적인 부분과 관련된 칸텐츠만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주제가 묘하게 겹치는 컨텐츠(윤회 전생)가 있다보니 결국은 유체이탈 부분까지 조금씩 보게 되었다.

문제는, 이 채널에서 유체이탈이 아닌 일상적인 콘텐츠에서도 사용하는 "단어"가 나를 거슬리게 만들었는데, 그건 바로 "현실 창조"라는 것이었다.
내가 받아 들이기로는, 내가 마음을 먹으면 같은 현상(대상)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하는 데, 왜 그걸 "현실 창조"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걸까하는 껄끄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앞서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 잠깐 빠트린 것이 있는데,
[신과 나눈 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즉, 무언가 간절하게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약간은 황당하기까지 한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너희가 진실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는 성경적인 문구와 함께 나왔던 것인데, 인간의 마음 혹은 생각이 바로 창조의 힘이 되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시크릿]이라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만 책으로 출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신이 말한 이 내용은 어딘지 나탐의 "현실 창조"라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다시 나탐의 채널로 돌아와 보자.
채널의 다른 영상을 보던 중에, 여기에서도 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들었다.
그게 어떤 영상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이게 아닐까 한다.

이 영상에서 또 다시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무시하기 보다는 고민을 했다.
정말, 대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걸까?



여기에 영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추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컨택트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컨택트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고, 언어나 소통의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

시간에 관하여....시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1]

최근에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다가 굉장히 충격적인 동영상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이 채널은 주로 물리학의 이론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컨텐츠를 다루는 곳으로,
평소에 관심이 있던 양자역학과 초끈이론에 관한 영상을 먼저 접했다.

그러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동영상으로 위의 영상이 올라왔는데, 제목부터가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통해서 한가지 나만의 가설(?)이라고 해야 할 지, 나만의 추론이나 직관에 의한 상상이라고 해야 할 지, 아무튼 이 가설은 그 동안 내가 풀지 못하고 있던 많은 장벽을 일시에 무너뜨려 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아직은 이 영상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지 않으므로, 섣불리 요약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상을 통해 내가 얻은 가설 또한 아직은 더 많이 보충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므로 다음으로 미룰 것이다.


이제 부터는 내가 개인적으로 시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경위와 거기서 발생했던 의문점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2010년 즈음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마이클 뉴턴이라는 사람이 쓴 [영혼의 여행]을 읽었다. 불교나 흰두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와 같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기술한 책인데, 나름대로 윤회에 관한 여러 의문점들을 잘 설명하고 있었고(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 하지만), 그 주장들 사이의 모순도 없어 보이고, 우리가 익히 알던(들어왔던) 여러가지 사실(?)들과도 잘 연결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것이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는 경우였을지 모른다.(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의 어떤 부분에선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언급을 봤었다.
당시에 이 부분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무엇이고, 앞으로 올 미래는 무엇이란 말이지?
아마도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고 약간은 의심해 보기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 이후에 읽었던 책들은, 옴넥 오넥의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이 있었고,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가 있었다.
이 두개의 책에서도 역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시간의 개념에 대해 꽤 비판적인 입장을 표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지구인들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거기에 시분초 나 년월일 같은 단위를 마음대로 붙여서 사용한다는 것을 마치 굉장히 미개한 것처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2년이 가까워 오자 지구 대종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 당시에 읽었던 책은 김재수의 [2012 지구 대전환], 김인자의 [하늘이 전해준 빛세상 이야기], 김재훈의 [5차원 우주과학의 비밀] 등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따라왔던 이 영적인 존재에 대한 탐구의 여정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스티븐 그리어의 [은폐된 진실, 금지된 지식:UFO와 그림자 정부, 그리고 지구의 운명]도 읽었지만, 이후 부터는 이런 잡히지도 않는 헛된 것을 쫓는 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했던 듯 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 책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다른 책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던 누이에게 더 이상 이런 책들에는 관심이 없다며 짜증 비슷하게 냈을 정도였으니까...

이후 한동안은 명상이나 종교철학, 일반철학, 물리학 따위로 관심을 돌렸다.


앞서서 읽었던 책 가운데, [영혼의 여행] [나는 금성에서 왔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정말 이해도 안되고, 오히려 책과 저자에 대한 신뢰도만 떨어뜨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혹은 이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은 머리속의 고민에서도 점점 잊혀져 갔던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

2020년 7월 2일 목요일

뒷산을 오르며...2

예전에 열심히 다닐 땐, 하루 걸러 한번씩 오르기도 했던 산이지만,
이젠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허벅지에 만들어진 근육이 좀 말랑말랑 해지는 듯 해서 다녀온지 4일만에 또 올랐다.
이번에 평일 이른 아침. 6시 30분쯤.


  • 지난 번에 오를 때도 봤지만, 여기 저기에 매미 나방이 많이 보인다.
    큰 나무에 몇마리가 모여서 딱 붙어 있고, 그 몇마리 틈새로는 갈색의 알이 보인다.
    그땐 몰랐고,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그게 매미 나방과 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해충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특히 등산로 중간에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서어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워낙에 나무가 매끈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 일부는 반질거리기까지 한다.(경사로에 있어 사람들이 그 나무를 이용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지탱하곤 한다.)
    그 나무에도 매미 나방이 여러마리 붙어 있어서, 이번엔 떼어 줘야지 생각했다.
  • 깔딱고개를 오르고 나서 좀 쉬려고 벤치가 있는 곳에 앉았다.
    마침 먼저 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운동을 하고 계신다.
    Y자 모양으로 갈라져 뻗은 나무에 양손을 지지하고 몸을 당겼다 밀었다 하시는 중.
    그런데 그 나무가 경사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르신의 반대편은 뿌리가 반쯤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작지 않은 나무니 당장은 문제가 없어도, 저런 일이 반복되면 나무가 쓰러지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시고 난 후에,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주관하는 여가/취미 과정에 참석을 많이 하시는 데,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 지원을 받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실 때면, 가끔 눈에 보이는 '진상'들이 있는데,
    양에 넘치는 음식을 가져와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가 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받아와서 일부를 따로 싸서 가져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런 분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무료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임에도 그런다고.
    뭐 싸가지고 저녁에 또 드시려나보다 했지만, 어머니 보시기엔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 자주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에 유난히 불편해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좀 쉽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던 사람에게, 오랫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상대방의 반응이 조금은 시큰둥함을 느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얘기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었음을 알고 속으로 꽤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 그리고 오늘 이 산에서, 난 또 그런 나의 성향으로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떨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런 행동은 이렇게 좋지 않습니다 말을 한들, 그걸 바로 수긍하며 들어 줄 사람도 적을 뿐더러, 내가 항시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감시하며 참견하지 않는 이상은 그 나무를 지켜 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는 사람들이 두 손으로 지탱하기 좋은 모습을 가지고, 그런 경사에 있었다는 이유로, 종종 사람들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버티다가, 이내 뿌리를 노출되고 약해져서 쓰러지거나 말라 죽기 쉬운 운명으로 태어난 듯이 보인다.
    아마 내가 오지랖을 부렸어도 그 나무의 운명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겠다 싶었다.
  • 계속해서 산을 오르다보니 매미 나방이 더 많이 보였다.
    처음에 가졌던 생각처럼 이 매미 나방을을 죽이고 알을 최대한 없애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이 나방은 날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나무에 착 붙어 있는데, 크기는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이고, 몇마리가 겹치다시피 뭉쳐 있다.
    사실 저걸 어떻게 죽이나, 나무로 건드리면 갑자기 날아가지 않을까, 낮은 곳은 발로 밟을까, 독이 있다는데 무슨 해를 입지 않을까, 갖가지 생각으로 망설여지기도 했다.
  • 하지만 그 보다는, 그 나무의 운명과 같이, 내가 어떤 생명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인간에게는 해충이라고 하지만, 어떤 생명에게는 익충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다람쥐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고, 새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보이는 몇몇 매미 나방을 죽인다 해도 이 산의 매미 나방 숫자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못할 뿐이고,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비록 자기 합리화일 뿐일 수도 있지만)

2020년 6월 24일 수요일

뒷산을 오르며

날씨가 더워지니 집안에 지내기가 답답하다.
주말 오후에 뒷산에 올랐다.

제법 힘이 드는 산행이고,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객도 많았고, 가족들이 함께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1. 깔딱 고개를 힘겹게 헉헉거리며 오르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젊은이가 있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많은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다.
    산에는 저런 젊은이는 잘 오지 않는다. 약간 숨은 차지만 거뜬하다는 표정.
    오르다 말고 뒤를 내려다 보더니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경사로 계단에 앉았다.
    (지자체에서 방부목과 삼베로 엮은 가마니 같은 것으로 경사로의 계단을 만들었다)
    학생에게 거기 앉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만약 경사로 위에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굴러 떨어지면 다칠 위험이 있다고...
  2. 산 정상에 올라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까의 그 남학생과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올라 왔다.
    정상의 표시석을 보고 아버지는 학생에게 여기 서보라며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하지만,
    남학생은 쭈뼛거리고 손사래를 친다.
    아버지가 함께 찍자고 표시석 옆에 서서 셀카 자세를 취하자 그제서야 마지 못해서 옆에 선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말을 건네자 흔쾌히 스맛폰을 건네 주신다.
    사진을 찍어 드리고 학생에게 한마디 또 건넨다.
    아버지가 찍자고 하면 찍는 거야. 이것도 얼마 안남았어.
    나중에 생각하니 공연히 꼰대짓 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 학생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 거였고,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던 거였다.
  3. 이제 슬슬 하산을 하고 있는데, 저기 아래쪽에 두명의 아이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5살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아버지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지나가며 보니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큰 아들은 뭔가 삐쳐 있어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었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약간 눈치를 보는 듯한 상황. 아버지도 뭔가에 화가 난건지 근엄한 표정.
  4. 큰 아들은 아버지와 거리를 두며 먼저 내려 갔다가,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리지면 좀 기다리고, 다시 거리가 좁혀지면 먼저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이 큰 아들과 몇번 눈이 마주 쳤는데, 얼굴을 보니 만만해 보이는 성격이 아닐 듯 했다. 앙 다문 입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눈매의 날카로움은 불같은 성격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봤는데, 이 아버지도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보였다. 어쩐지 아들과 닮은 듯 하면서도 조금은 달라 보였다.
    아마도 아들들이 어머니를 더 닮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꽤나 자주 충돌하겠다 싶었다.
  5. 그 아버지와 아들의 불편한 사이는 보는 나로 하여금 꽤 불편함을 일으켰다.
    그냥 싸워서 분위기 안좋네, 얼른 화해하지 이런 정도의 불편함이 아니라,
    굉장히 우울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그것이 이번 한번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었을 거라는 예감, 온 집안에 감도는 긴장감,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하는 가족들...
  6. 산을 다 내려와서 보니, 공원의 공터에서 한무리의 소년들이 공차기를 하며 뛰어 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총 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급수대 아래쪽에 물이 홍건히 고여 있었다.
    한 남자 아이가 급수대에서 물병에 물을 담고 있었는데, 그게 물을 담는건지, 물 장난을 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옆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마침 공차기를 하던 무리의 공이 급수대 쪽으로 굴러왔고, 고여있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일부가 당황하는 듯 하더니, 그 중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기서 물장난 하지 말라고!
    뭐 물장난이 물을 좀 보탰을 지언정, 물장난 때문에 물이 고인건 아닌거 같고, 물이 고여 있으니 언젠가 공이 물에 빠지는게 당연해 보이는데도 물을 받던 소년에게 화를 낸 것이다... 사실 소년이 물장난을 안해도 물은 빠지지 않고 고여 있었다.
    옆에서 이걸 보다가, 왜 화를 내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소년이 참 어이가 없었다.
    아까 산에서 보았던 부자의 모습이 또 다시 떠올라 조금은 더 우울해졌다.

2020년 6월 5일 금요일

[영화] 기생충

너무나 유명해진 영화
드디어 봤다.

헐리우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오스카 상 수상에 불만을 표한 이유도 알만 했다.

아시아 특별 전형이라거나 지역 균형 수상이라는 표현도 가능은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영화는, 일단 재미는 있다.

마치 영화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처럼 잘 짜여진 사기극을 벌여가는 일가족의 능수능란함.

그리고 이들의 사기극이 탄로나지 않을까 계속 마음 졸이며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이런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사기꾼 가족을 불안하게 만든 건 "냄새".


중반 이후에 영화의 반전이 시작되고 이후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막장으로 치닫는 몰락.

그 몰락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들.


신분 상승과 몰락

희망의 차오름과 절망의 차오름

짜릿한 오름과 아찔한 추락

감정의 오름과 내림이 현란한 영화다.


냄새, 햇빛, 물
중요한 요소들


많은 평론가들의 해설과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렇게 들으니 참 오묘하기도 하며, 잘 짜여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세심하게 관찰해서 나온 분석적 결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관심을 받으면 더 놀랄만한 작품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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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어느 평론가의 분석은,
가난하지만 웃고 있는 기택의 가족 vs 부유하지만 웃는 표정이 적은 박사장의 가족
개개인이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가족 vs 별 능력 없는 박사장의 가족
법을 어기고 사기를 밥 먹듯 치는 가난한 가족 vs 법을 지키는 부유한 가족
이렇게 기존의 선악, 빈부, 서민과 특권층의 프레임의 특징을 꼬아버려서 참신함과 불편함을 유발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꽤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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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니 종종 평론가들의 분석과 평가에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너무 영화에 눈이 멀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반 관중은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본것만을 생각하고 느낀 것만을 얘기하는데, 평론가나 영화 관계자들은 그것 이전의 과정, 즉 제작의 단계부터 공감을 하는 듯 하다.
대체 이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했으며, 이런 얘기를 이렇게 풀어나가는 것이나, 이 상황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를 감탄하는 듯 하다.
음악으로 치자면, 일반인은 음악을 듣고 오 마음에 든다, 좋다, 혹은 별론데, 그냥 그렇군 이런 생각에서 머물지만, 같은 음악인 입장에서는 이런 멜로디 진행은 무엇과 비슷하니 평범하고 박자만 약간 변형을 준 것이네, 혹은 이런 멜로디 조합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 낸 것이냐, 이런 음의 조합이 이런 느낌을 주는 걸 어떻게 알고 만들었을까 이런 식으로 평하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이런 걸 보고 아는 만큼 보이네, 일반인 눈에는 안보이는 거야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중문화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런지.
만약 그들이 말하는 그 경지에 이르렀을 때, 단순히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희열의 요소가 있다면 그 경지가 대중에게도 필요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겠지만...

[영화] 컨택트 (원제 Arrival) 2016

원제가 Arrival인데,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

1997년에 개봉했던 조디 포스터 주연의 명작의 제목은 콘택트.

한글자만 바꾸어서... (콘 → 컨)


유명한 감독의 명작이라며 칭찬이 자자하지만, 당시에도 보지 않았다.

대충 귀동냥으로 들어 보니, 언어가 달라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표현도 다른 외계인과의 소통, 특히나 외계인의 언어가 시간에 대한 인식 체계가 달라서, 그들이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본다는...식의 설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에 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환상일 뿐이다,...

대체 시간의 흐름이 없다는 이런 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고,
지금까지는 그냥 그들끼리만의 ~인 척 하는 방식이라고도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자꾸만 들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시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봤다.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아마 그러고 나면, 누군가를 비난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없어보이고, 못나고, 덜 떨어진 인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겠다.

어쩌면 내가 잘 못 이해한 것일 수 있을테고,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사실은 그 이유 때문에 이 포스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어떻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본 바로는, 이 영황의 이야기는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 이고, 인생에서의 선택에 관한 영화이며, 인생에서의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진정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끝이 어떨지 알고 있다해도,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바꿀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어찌보면, 이미 결정된 것과 다르지 않은 행로를 밟아 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딸을 낳을 것이고, 어떻게 기를 것이며, 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미리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그 선택을 바꾸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보았던 그 미래를 향해 따라 간다. (아니 가게 될 것이다?)

외계인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루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루이스가 미래를 본다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만약에 그냥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거든. 그래서 말야... 이렇게 시작하면 스토리는 그냥 막 지어낸 뇌내 망상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어렵고 드문 일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위해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인식이 가능한 언어와 그걸 사용하는 외계인이라는 도구(!)를 가져 온 것 뿐이었다.

사실 영화 상에서는 그들의 언어 체계를 매우 분석적으로 다루는 듯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혹은 핵심적인 이론이나 실마리는 없다.
그냥 열심히 하나씩 분석하다 보니 알아 듣게 되었음. 이게 전부다.
칠판에 영어 쓰고 실물을 보여주거나 행위로 보여주는 식으로, 외계인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결과는 영어를 쓰는 외계인을 보는 게 아니라, 외계인을 쓰는 인간이 되었더라는...
그러니 그들의 언어가 대체 어떻길래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인식이 가능한지 설명을 바라는 건.... 상상만으로라도 좀 힌트를 줬으면 싶었지만 역시나 없었다.

시간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 영화를 본 내게는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누군가 스크립트를 써 준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평론을 베껴서 나눠 가지기라도 했는지, 어째서 영화 평론가들의 평은 하나같이 외계인, 소통, 언어, 시간만을 다루고 있는 것인지...


예전에 이 영화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될지 안다면, 과연 내 선택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였는데, 머리로는 확신이 들지도 않고 이쪽도 저쪽도 일장 일단이 있어 망설이고는 있지만,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 혹은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한 결과가 결코 좋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어쩐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아직 미혼인데도 독립해서 나가 살겠다고 했던 선택이나, 대기업 직장을 그만 둔 일이나, 공동으로 창업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던 일이나,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들...
아무리 평행 우주와 다중 우주를 들먹이고, 다른 선택을 한 나와 세계의 또 다른 미래가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주장을 믿는다 해도, 몇몇 중요한 선택에서 다른 선택을 한 나를 상상하는 건 아주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결과가 이리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고, 그건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한계일 수도 있으며 또한 나의 변하지 않는 아이덴티티일지도 모른다고....

이 영화가 이런 생각을 그럴 듯한 상황으로 꾸며서 그럴듯 하게 설명한거라고 보인다.

아마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드 창의 원작을 읽어 봐야하겠지만 말이다.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행복 사랑 자유

아름다운 말들이다.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생각만 해도 푹신하고 안락한 기분이 드는 단어들 아닌가?

그리고... 치명적인 독과 같은 단어들이기도 하다.

과연 저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떤 말로도 완벽하게 기술할 수는 없을테고,
누군가 그것을 시도해서 표현하고 나면 즉각적으로 그 표현의 허술함과 부족함에 허탈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저 단어들을 어떻게 배웠으며, 어떻게 익혔고,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고, 온갖 미사여구로 잔뜩 부풀려진 기대감이 가득하다 못해 터질지경이며, 어느새 인생의 목표가 되어 모든 것을 바칠 대상이 되며, 그것을 위해 현재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이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조금 오랜 시간을 그것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한번쯤은 그걸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는 실망을 하고, 낙심하지만 또 다시 '진짜'를 찾아 떠나게 되곤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몇번을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곧 의심을 하게 된다.

'정말 존재하는 걸까?'
'행복이란, 사랑이란, 자유란 것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어떤 상황을 맞았을 때, 그것이 행복인지, 사랑인지, 자유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행복이, 사랑이,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외부적인 조건이나 대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외부적인 대상, 즉 물질적인 것들은 대부분 소멸하거나 변하기 마련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닌 우리의 인식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그 대상의 변화보다는 나 자신의 인식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더 지대하다.

행복이라 생각했던 상태가 유지될 수 없는 것 또한 상태나 조건의 변화보다는 자신의 인식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것들을 위해 우리가 바쳐야할 노력과 정열의 방향은 외부적인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식을 바꾸는 것임은 명백하다.


결국 꿈속에서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틸틸(치르치르)과 미틸(미치르)은 파랑새를 찾는 것에 실패하고 꿈에서 깨어서야, 항상 기르던 그 새가 파랑새였음을 깨닳았던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새가 파랑새였음을 깨닳아 안도하고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파랑새'라는 것에 덧씌워져 있던 부풀리고 왜곡되어 있던 기대감의 상실을 슬퍼할 수도 있으며,
결국은 세상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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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사실은 저 단어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공허함 그 자체라는 것에 있다.

이 단어들은 비어있기에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정의로 그 공허함을 채워 놓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사랑이라 믿으며 자유라 믿는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채워 놓은 그 정의들은 사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결핍과 욕망, 두려움에 대한 투영의 결과이다. 혹은 누구로부터 주입당한 타인의 정의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스스로가 정의한 행복과 사랑과 자유를 이루었을 때, 잠시나마 만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이나 결핍을 채우고 두려움을 해소할 테니까.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것이 '진짜'가 아닌 '가짜'임을 알게 될 것이다.

비어있는 것을 위한 헛된 노력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 단어들이 우리 인생에서 '독약'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독약'만 마시지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