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4일 화요일

타고난 것에 대한 집착

아직까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고,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에 대한 특검의 조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처음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던 촛불 집회의 열기가 뜨겁더니, 탄핵안이 통과하면서 촛불 집회는 서서히 열기가 가라앚은 반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태극기 집회가 다시 열기를 뿜어 내고 있는 듯 하다.

반대편은 일명 박사모라고 불리우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의 모임이 주축이 되어서 대통령 탄핵안 등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탄핵을 찬성하는 쪽이 더 우세하다 보이기도 하고, 언론에서의 보도도 다분히 대통령의 반대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에게 알려지는 사실들이라는 것이 주로 언론에 크게 의지하는 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들로만 판단해 보면 대통령의 잘못이 많아 보이며, 일반 정치인이라면 유죄 선고가 가능할 것이라 보이지만, 대통령이라는 지위의 특수성으로 이를 모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실이 정말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자신이 믿는 것에 따라 받아 들이는 것과 버리는 것이 달라지니, 어진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진실을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해 인정을 하고 수용한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나 싶다.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들의 말이, 행동이, 생각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불확실한 자신의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틀림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우리 보통 인간들의 행태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른 생각, 말,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를 증오하고 파괴하려 하면 안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종북좌파'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인신공격성의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도저히 상대방이 제기한 나의 오류를 변론할 수 없을 때 내뱉게 되는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것이다.
이건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너의 존재는 글러 먹었으니, 네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이 다 글러 먹었다"는 독선적인 선언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논리적인 설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찌된 일인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의 회로는 작동을 중지해 버리고, <선과 악>이라는 경직된 이분법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이다.
이게 진짜 인간들인가 싶을 정도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단어 하나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있다.


참 많이 고민해 보았다.
왜 그런 것일까?
안그래야겠다고 다짐하고 냉정해지려고 하지만, 나와 반대되는 정치적인 의견을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스트레스가 상승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라도 정치와 관련된 방송이나 인터넷 사이트는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이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모순된 것들에 대해서 나의 사고 회로는 작동을 멈춘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소와 돼지는 도살해서 먹어야 하는 모순에 대해서 눈을 가리고 침묵한다.
남자로 태어났기에 남자로써 누리는 권리는 당연하다 여기면서, 그 권리를 위해 여성이 희생해야 하는 것에는 외면한다.
동양인으로 태어났기에, 서구 문화 중심의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해 본능적인 반감 혹은 무비판적인 호감도 존재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났기에, 일본은 미워해야 할 국가이고,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이다.
모씨(某氏) 집안에 태어났기에, 나의 조상님은 훌륭한 분이시고 조상님을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하고, 명절마다 성묘와 차례를 지내야 한다.
누구의 아들 혹은 딸로 태어났기에,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며, 효도해야 하며, 평생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야 한다.

나의 선택과는 무관한 것들,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주어지는 것들,
그것이 부드럽고 따뜻한 담요인지 혹은 습하고 차가우며 거친 거적떼기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에 의지해 살아났으며, 그것이 전부인 세상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확실한, 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버팀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벗어나야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판단을 멈추어버린 세계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단단한 껍질의 알이지만,
우리의 세계를 제한하는 장벽이기도 한 것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알을 깨뜨려야 한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들은 참 많은 알껍질 속에 살고 있는 듯 하다.
유교라는 관습의 알
반공이라는 이념의 알
적어도 이 두개의 알을 깨기 전에는 대한민국의 발전은 요원해 보인다.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야만과 문명의 사이 -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준

아직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최순실, 정유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특별검사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특별검사 이전에 진행되었던 검찰의 수사 결과로 기소된 사건들은 현재 재판 중이다.


지난 두달여 시간 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국민, 시민, 이웃들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러했다.
나 자신의 내적인 변화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변화와도 잇닿아 있을지 모르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개개인의 내적 변화들이 어떤 공통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 사회가 변화해가지 않나 싶다.


그러면 나의 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처음엔 많은 놀라움, 분노, 증오와 같은 것 들이었다.
새로이 알려진 것들에 대한 놀라움이고, 그들의 편향적이고 치졸하며 사리사욕에 눈 먼것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생겼다.

다음엔 자기 반성이었다.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반성, 그것을 미리 알아채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었다는 반성.

그리고는 두려움.
이렇게까지 왔는데, 그 무거운 죄를 지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가끔의 의심.
법정에선 피의자들, 헌번재판소에 출석한 증인들의 반박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자, 어쩌면 저들은 정말 죄가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번에도 언론에 속아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또 다시 허무함.
과연 나라는 하나의 개인이 알 수 있는 진실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며, 아는 만큼에 따라 진실과 거젓이 바뀌며, 선악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과연 우리가 진실을 논하는 것, 선악을 판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허무함.

그리고 다시 의문점들
어째서 자연계와는 대치되는 <정의> <평등>과 같은 가치를 인간이 추구하는 것인지, 그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그것이 자연계의 흐름이라면,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들이 애초에 "가치"로써 추구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힘들여 추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자연스럽지 못한 가치를 힘 들여가며 추구하는 인간.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기에 그 가치는 자꾸 스러져가고,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각성하고 힘쓰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리라.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주 원초적인 시원으로부터 출발하면 명확하게 보이는 듯 하다.

태초에 별 경쟁력이 없던 하나의 종족으로써의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수를 늘려야 했던 것이고, 보다 많은 수의 개체들이 어울려서 살아나가며 그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등>과 <정의>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을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존에 필연적인 가치마저도, 자연스러운 본능적 욕구에 의해서 자꾸만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를 가장 영리한 종족이라 칭하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지켜줄 가치를 허물어 버리는 우매한 짓을 반복하는 것이다.
과연 이게 가장 영리한 종족이 하는 짓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다양한 종교와 믿음을 통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영혼, 자아를 얘기하고 윤회와 해탈을 말하며, 진화와 각성을 믿는다.
스스로가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소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자기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닥들인 이 사건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바, 인간은 아직도 야만의 때를 벗어나지 못한 원숭이에 가까운 존재일 때름이다.
지금까지 이룬 문명의 업적을 증거로 내민다 한들, 딱 그만큼만 야만에서 벗어난 정도일 뿐이다.

인간이 과연 야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감은 자기 자신의 발판을 딛지 못함과 같기에, 자신에 대한 인식의 불가함과 발전의 불가함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