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9일 토요일

[도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저자 :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
역자 : 임재서
출판사 : 사피엔스21


국내에서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원작의 소설.

나도 영화를 먼저 본 후, 한참이 지나서 원작이 있음을 알았고, 또 한참이 지나서 책으로 읽게 되었다.

원작은 2005년 발표, 영화는 2008년 개봉.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영화 개봉 당시에는 매우 잘 만든 영화라는 호평이 자자했는데, 생각보다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또한 수입 배급사의 과장 홍보 때문이었을까?
하비에르 바르뎀, 토미 리 존스 등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좋았다.
감독은 코엔 형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간의 긴장감, 그리고 이들의 뒤를 한 발 늦게 따라가며 수사하는 보안관의 절망감.
안톤 쉬거의 냉혈함이 주는 섬뜩함.
모스의 능숙함과 영리함, 그러나 쪽기는 자로서의 긴장감.
벨 보안관의 절망감.


소설을 읽어 보면, 코엔 형제가 왜 뛰어난 감독인지를 알 수 있다.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지, 영화를 소설로 펴 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작품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작품의 배경과 소재가 우리에겐 그다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가치는 세밀한 묘사에 있다.
하지만 나로써는 글자만으로 상상해내기 어려운 장면의 묘사들이 많았기에, 코엔 형제의 재현에 감탄을 했으며, 원작만을 보았다면 많은 부분이 어렵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벨 보안관의 독백과 같은 생각들은, 이 책이 단순한 액션 스릴러가 아님을 보여준다.


책의 일부를 스캔해서 올려 두는 것이 저작권법에 위배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느낌을 활자화된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생각했다.
매우 제한된 양이기에 양해를 구하는 바이며, 문제가 될 시에는 바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틀,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제목의 유래가 된 싯구의 소개.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中.


첫 페이지. 이 부분은 벨 보안관의 얘기이며 이 책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초반부, 이 책의 재미있는 주석. 핏자국 주석.


노쇠한 보안관 벨은 점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을 버거워하며 한탄을 한다.
그리고 전쟁 영웅으로 훈장을 받았던 일의 뒤에 숨겨진 진실로 자책을 한다.

책의 말미는 조금 의아한데, 영화화 되지 않은 부분들이 벨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책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당혹하게 만들며, 구체적 설명이 없었던 모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을 하는 부분 등이 나온다.
연작 소설의 한 부분만을 떼어낸 듯이 참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며, 역자의 주석이 없었다면 내내 궁금했을 것이어서 아쉬움도 있다.

흔히들 노인들이 젊은 세대를 보며 한탄하는 일은 로마시대부터 줄곧 이어진 일이라고 치부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은 결국 돌고 도는 것이라며, 지금 일어난 일이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라며 위안으로 삼는다.
과연 노인들의 경고는 그저 꼰대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벨 보안관의 한탄처럼 세상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세태무상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연일 급락하고 있으며, 지리멸렬해 보이던 야당과 야당의 대선주자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드러난 것만으로도 불법적인 것이 명확해 보이고, 드러나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정황은 명약관화하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2차례 있었지만 모두 미흡했던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때마다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를 지시한 듯이 보이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미루어, 두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검찰의 수사와 특검까지도 수용하겠다'는 말은 특검까지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로까지 의심될 지경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말이라면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3년의 모든 것마저 의심스러우며, 대통령이 배신자였다는 분노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이러한 감정적인 격정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적으로 큰 변화가 있는 경우에, 이성적인 판단은 그만큼 약해지기 마련이고, 또 그래서 쉬이 잊혀지기도 하는 법이다.

약해지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몇가지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 보려 한다.


불과 1,2개월 전만 해도 '종북좌파'라는 단어는 낙인처럼 사용되었다.
주로 보수 여당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아주던 꼬리표 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이런 짓들이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정부가 꾸준히 북한의 위험함을 강조했고, 북한은 미사일과 핵으로 여기에 힘을 실어 주었고,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하고 정부의 프라퍼갠다를 그냥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젠 누구도 섣불리 '종북좌파'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어려워졌다.
임기 내내 북한에 의한 위협을 앞세우고,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들 겁주기에 힘을 쓴 대통령과 그 정부의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점과 의혹들은 모두 '정치공세'로 치부하거나 '팩트'만을 요구하고, '법과 원칙'만을 부르짖었기에,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는 말도 꺼내선 안되는 것이었고, 법과 원칙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잣대는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마음대로 적용되었기에 양지와 음지의 온도 차이는 극대화 되었으리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친이계 의원들은 호가호위하며 실세인 듯 행동했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고행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친박계 의원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과연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얼마나 알고 줄을 섰던 것인지, 잘 모르면서 줄을 섰다면 그 무책임함과 무능함으로 지탄을 받을 것이며, 알면서도 줄을 섣다면 그 비열함으로 지탄을 받을 처지다.


언론.
아마도 이번 사태에 대한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언론이 아니었나 싶다.
전통적인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 대한민국 내에서의 상대적인 보수와 진보일 뿐이다 -은 이전까지 자신의 역할을 잘 지켜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주필을 청와대가 공격하면서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정부의 반대편에 서게 되면서 여론을 들끓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만약 보수 언론들이 정부를 호위하고,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정부의 편에서 나팔수 역할을 했더라면 과연 이 사태가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정권 뿐 아니라 이전의 여러 정권들에서 제기되었던 의혹들처럼 단지 의혹으로만 끝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밝혀지지 않은 그 수많은 의혹 가운데 일부는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사건들이 없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의혹을 밝힐 수 있는지의 여부가 언론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누구보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보수 논객들.
그들이야말로 악랄하게 종북좌파 낙인 찍기에 앞장 선 인물들이었고, 그 어느 때 보다 국민들을 갈라 놓는데 적극적이었던 인물들 이었다. 그랬던 인물들이 어떻게 변했는가? 이들이 아직도 대통령을 옹호한다면 그 명분이 없음으로 비난 받을 것이며, 대통령을 등진다면 그 가벼움으로 비난 받을 것이다.


나라가 어지럽다.
나라가 시끄럽다.
나라가 혼란스럽다.
마치 안개 속에 들어 앉은 듯, 모두가 지척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떠들어 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안개가 걷히고 난 후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 모두가 그래야 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개가 걷히고 난 후에, 안개 속에서 떠들고 부르짖었던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대한민국이 바뀐다.

더 나아가서, 종북좌파라는 낙인을 씌우고 수구꼴통이라는 비난을 일삼았던 것도 더 큰 시야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뜻을 같이한다고 모인 당파 내부에서 다시 세력을 나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이 지켜야할 유일한 자존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세에 아부하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무거운 가치를 무겁게 지켜나가는 이가 없는 이 세태가 참으로 무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