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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논고 by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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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논고 목차 |
-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 세계는 사실들로 이루어진다.
- 일어나는 것,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 사태는 대상들(실물들, 사물들)의 결합이다.
- 대상은 단순하다.
- 사태 속에서 대상들은 사슬의 고리들처럼 서로 걸려 있다.
- 존립하는 사태들의 총체가 세계이다.
- 존립하는 사태들의 총체는 어떤 사태들이 존립하지 않는가를 또한 확정한다.
- 사태들의 존립과 비존립이 현실이다. (우리는 사태들의 존립을 긍정적 사실, 비존립을 부정적 사실이라 부르기도 한다.)
- 우리는 사실들의 그림을 그린다.
- 그림은 모사된 것과 모사의 논리적 형식을 공유한다.
-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이다.
- "어떤 한 사태가 생각될 수 있다"가 뜻하는 것은, 우리가 그 사태에 관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참된 사고들의 총체는 세계의 그림이다.
- 사고는 그것이 생각하는 상황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생각될 수 있는 것은 또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 우리는 비논리적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비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 선천적으로 올바른 사고는 그것의 가능성이 그것의 참을 조건부로 하는 사고일 것이다.
- 하나의 사고가 참이라는 것을 우리가 선천적으로 알 수 있을 경우는 그 사고 자체로부터 (비교 대상 없이) 그 사고의 참됨이 인식될 수 있을 때 뿐이다.
- 명제에서 사고는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게 표현된다.
- 명제 속에서 사고는 명제 기호의 요소들이 사고의 대상들과 대응하도록 표현될 수 있다.
- 오직 명제만이 뜻을 가진다; 오직 명제 연관 속에서만 이름은 의미를 가진다.
- 명제는 논리적 공간 속의 어떤 한 장소를 확정한다. 이 논리적 장소의 존재는 구성 요소들만의 존재에 의해서, 즉 뜻이 있는 명제의 존재에 의해서 보증된다.
- 적용된, 생각된 명제 기호가 사고이다.
- 사고는 뜻이 있는 명제이다.
- 명제들의 총체가 언어이다.
- 인간은 각의 낱말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이 각각의 뜻이 모두 표현될 수 있게 하는 언어들을 구성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우리들이 개별적인 소리들이 어떻게 산출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말을 하듯이 말이다.
일상 언어는 인간 유기체의 일부이며, 그에 못지 않게 복잡하다. 일상 언어로부터 그 언어의 논리를 직접 끄집어 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언어는 사고를 위장한다. 더욱이 그 복장의 외부적 형태로부터 그 옷 입혀진 사고의 형태를 추론할 수 없도록 그렇게 위장한다; 왜냐하면 복장의 외부적 형태는 신체의 형태를 인식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 철학적인 것들에 관해 씌어진 대부분의 명제들과 물음들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런 종류의 물음들에 대해 결코 대답할 수 없고, 다만 그것들의 무의미성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자들의 물음들이나 명제들은 대부분 우리가 우리의 언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것들은 선(善)이 미(美)보다 다소 동일한가 하는 물과 같은 종류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문제들이 실제로는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명제는 현실의 그림이다.
- 이것을 우리는 명제 기호의 뜻이 우리에게 설명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뜻을 이해한다는 점으로부터 안다.
- 명제는 낡은 표현들을 가지고 새로운 뜻을 전달해야 한다.
명제는 우리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상황과 연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연관은 바로, 명제가 상황의 논리적 그림이라는 것이다.
명제는 그림인 한에서만 무엇인가를 진술한다.
- 명제는 그것이 묘사하는 상황에서 구별될 수 있는 바로 그 만큼 구별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양자(兩者)는 동일한 논리적(수학적) 다수성을 소유해야 한다.(동력학적 모형들에 관한 헤르츠의 역학 이론을 참조하라.)
- 현실은 명제와 비교된다.
- 명제는 오직 현실의 그림임으로 인해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다.
- 명제는 사태의 존립과 비존립을 묘사한다.
- 명제의 뜻은 사태들의 존립 및 비존립 가능성들과 명제와의 일치와 불일치이다.
- 요소 명제들의 진리 가능성들은 사태들의 존립과 비존립의 가능성들을 의미한다.
- 명제는 요소 명제들의 진리 가능성과의 일치 및 불일치의 표현이다.
- 이제는 가장 일반적인 명제 형식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 어떠한 기호 언어의 명제들에 대해서건 하나의 기술(記述)을 주어서, 모든 가능한 뜻이 그 기술에 걸맞은 상징에 의해 표현될 수 있고, 또 이름들의 의미들이 알맞게 선정된다면, 그 기술에 걸맞은 모든 상징이 각각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인다.
가장 일반적인 명제 형식을 기술할 적에는 오직 그 본질적인 것만이 기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일반적 명제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형식이 예견(즉 구성)될 수 없었을 명제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 의해서 증명된다. 명제의 일반적 형식은 다음과 같다: 사정이 이러이러하다.
- 명제는 요소 명제들의 진리 함수이다. (요소 명제는 자기 자신의 진리 함수이다.)
- 요소 명제들은 명제의 진리 독리 변수들이다.
- 함수의 독립 변수들은 이름의 지표들과 혼동되기 쉽다. 왜냐하면 지표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립변수에서도 그것을 포함하는 기호의 의미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러셀의 "+c"에서 "c"는 그 기호 전체가 기수(基數)에 대한 더하기 기호임을 지시하는 지표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칭은 단순히 자의적인 약정에 의거하고 있고, 우리들은 "+c" 대신에 하나의 단순한 기호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p"에서 "p"는 지표가 아니라 독립변수이다: "~p"의 뜻은 "p"의 뜻이 미리 이해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에서 "율리우스"는 하나의 지표이다. 우리가 대상의 이름에 붙이는 지표는 언제나 그 대상 기술의 일부이다. 예컨대, 율리우스 가(家)의 그 카이사르.)
내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명제와 함수의 의미에 관한 프레게의 이론 밑바닥에는 독립 변수와 지표에 대한 혼동이 놓여 있다.프레게에게는 논리학의 명제들은 이름들이었고, 그것들의 독립변수들은 이러한 이름들의 지표들이었다.
- 진리 함수들은 계열을 이루도록 배열 될 수 있다.
그것이 확률론의 기초이다.
- 명제들의 구조는 서로 내적인 관계가 있다.
- 모든 명제들은 요소 명제들에 대한 진리 연산의 결과들이다.
진리 연산은 요소 명제들로부터 진리 함수가 생겨나는 방식이다.
진리 연산의 본질에 따르면, 요소 명제들로부터 그 진리 함수가 생겨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리 함수들로부터는 새로운 진리 함수가 생겨난다. 모든 진리 연산은 각각 요소 명제들의 진리 함수들로부터 다시 요소 명제들의 진리 함수를, 즉 명제를, 산출한다. 요소 명제들에 대한 진리 연산의 결과들을 가지고 행한 모든 진리 연산의 결과는 또 다시, 요소 명제들에 대한 하나의 진리 연산의 결과이다.
모든 명제는 요소 명제들에 대한 진리 연산들의 결과이다.
- 여기서 (프레게와 러셀의 뜻에서의)"논리적 대상들"이나 "논리적 상항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 모든 진리 함수는 (-----T)(ξ,....)라는 연산을 요소 명제들에다 계속적으로 적용한 결과이다.
이 연산은 오른편 괄호 속에 있는 명제들 전체를 부정하며, 나는 이 연산을 이 명제들의 부정이라고 부른다.
-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
- 진리 함수의 일반적 형식은 [ρ, ξ, Ν(ξ)]이다.
- 논리학의 명제들은 동어 반복들이다.
- 수학은 하나의 논리적 방법이다.
수학의 명제들은 등식들이며, 따라서 사이비 명제들이다.
- 논리의 탐구는 모든 법칙성의 탐구이다. 그리고 논리 밖에서는 모든 것이 우연이다.
- 모든 명제들은 가치가 같다.
- 언표될 수 없는 대답에 대해서는 물음표도 언표될 수 없다.
수수께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면, 그 물음은 또한 대답될 수도 있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